'사흘', '금일'만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세상을 읽는 힘, 문해력

문해력이란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최소한의 능력(국립국어원)"이다. 문해력은 '기초적인 읽기 및 쓰기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는 '문맹'과는 다르다. 기초적인 읽기 및 쓰기를 넘어서서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여 사람들과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활용할 수 있어야 실질적 문해력을 갖추었다 할 수 있다. 즉 시민으로,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 한 몫을 하며 삶을 영유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역량의 문제다.

사회로 나아가는 청소년들이 문해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문제는 그래서 단순히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닌, 권리의 문제와 맞닿는다. 2020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학생의 문해력 교육에 대한 주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연방대법원은 미시간(Michigan) 주가 교육 제공 의무에 태만해 학생이 '시민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 역량'을 쌓기 위한 '문해력 교육'을 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이에 앞서 같은 해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 역시 문해력 교육 권리에 대한 소송에서 패소하며 약 5300만 달러(한화 약 648억 원)의 보상금을 75개의 저성과 초등학교에 배부한 사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관련 기사 : <뉴욕 타임즈> 2020년 5월 13일 자 'Detroit Students Have a Constitutional Right to Literacy, Court Rules')

유네스코는 "문해력은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개인이 목표를 달성하고, 지식을 발전시키며, 사회와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지속적인 학습 역량"으로 본다. 즉 문해력은 타인의 인권과 가치관을 존중하며, 세계시민으로 성장해 나가는 중요한 토대다. 유네스코는 따라서 문해력은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라 말한다. 우리 사회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현재 온라인상의 유머나 밈에서 논란이 되는 것처럼 단순히 '사흘', '금일'을 이해 못 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닌 셈이다. 우리 사회 많은 구성원이 인간이 가져야 할 오롯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것이 시급하다.

▲ 교육방송(EBS)가 지난 2021년 3월 방송한 <당신의 문해력> 화면 갈무리. ⓒEBS

젊은 세대만의 문제?: 모두의 문해력이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문해력 상황은 어느 정도로 심각할까. OECD에서 10년마다 실시하는 국제성인 역량 조사에 따르면 만 16~65세 한국 성인의 문해력은 500점 만점에 249점으로 OECD 평균인 260점 보다 낮고, 2012년 대비 23점이 하락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1월 29일 자 '한국 성인 문해력 10년 사이 20점 이상 하락…무슨 일이?')

청소년의 경우, 2022년 OECD 회원국 내 만 15세 학생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 학생들의 평균 문해력(읽기) 점수는 515점으로 전체 국가 중 대만과 함께 공동 4위, OECD 평균인 476점을 크게 웃도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2021년 5월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보고서'는 전혀 다른 상황을 드러낸다. 덴마크·캐나다·일본·네덜란드·영국 학생들은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한국은 멕시코·브라질·덴마크·콜롬비아·헝가리 등과 함께 최하위 집단으로 분류됐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 보고서는 '정보의 신뢰성을 식별하는 능력'을 평가한 결과를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유명 이동통신사 명의를 사칭한 피싱 메일을 보낸 후, 양식에 맞게 이용자 정보를 입력하면 스마트폰을 받을 수 있다는 링크에 반응한 태도를 조사하였다. 즉 단순히 읽고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가 사실인지, 신뢰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응답하는 실질적 문해력 역량을 판단했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정보 사실과 거짓 식별률은 최하위 25.6%를 기록하였으며, OECD 회원국 평균인 47%에도 한참을 못 미쳤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2021년 12월 18일 자 '[문해력 리포트] ② 한국 청소년 '디지털 문해력'마저…OECD 바닥권')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중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읽어내는 역량, 즉 디지털과 오프라인이 결합 된 현재의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역량이 위험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문해력, 디지털 문해력…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나 투자 사기는 우리 사회의 빈약한 경제·금융 문해력을, 딥페이크 범죄와 디지털 성폭력은 처참한 디지털 문해력을 보여준다. 떨어지는 문해력은 사람들이 가짜 뉴스나 온라인 상에서 진실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를 맹신하며 극단적인 차별이나 폭력 행위를 하는 구조적 요인 중 하나이다. 그래서 쏟아지는 정보 중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구분하여 선택, 학습하고 이를 통해 나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에서도 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현재 상황에서 나를 먼저 살펴보자. 내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 중 진실성과 신뢰성이 검증될 수 있는 정보를 판단하여 취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선택한 정보와 연계된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유사한 정보 속에서 한정된,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지 않는가. 사회적 문제의 명과 암을 구분할 줄 알고, 사회 발전 방향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어울려 살피며 종합적으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좀 더 나에게 편안하게 문제를 설명하는 정보에만 의존하고 있는가.

우리가 잃어버린 문해력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려는 원동력의 좌초를 의미한다. 사회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 사회구성원이 이를 위해 소통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연대할 수 있는 인권의 가장 핵심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

결국 문해력의 문제는 세상을 읽고 살아가는 역량의 문제인 동시에, 이를 통해 나의 삶을 실현하기 위한 자기결정권의 문제다. 따라서 문해력이라는 기본 역량의 약화 문제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정부 정책이 시급하다. 문해력이 약해진 세대에 디지털 기기를 기반으로 한 기본 학습이 적합할지 등 현재의 정책에 대해 권리로서의 문해력 역량 관점에서 신중한 판단과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잘못된 정보 맹신이 야기한 사회적 문제를 여러차례 경험해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넘쳐나는 온라인 상의 정보 통제나 검열이 아닌, 그 안에서 개별 구성원이 스스로 올바른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 통해 단순한 학습을 넘어 각 구성원이 사회를 배우고, 익히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통을 통해 해결해 나가며 올바른 가치관을 키우고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시민으로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다음 세대에게, 그리고 현재 사회의 주역인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사흘', '금일' 의미의 단순 이해를 넘어 사회를 바라보고 재구성할 수 있는 역량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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