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가 지나고 2월로 접어들면서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조기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주모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심리가 본격 진행되는 가운데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직 윤 대통령 탄핵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일부 주자들이 지나치게 성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명계 "지금이라도 대선 평가·성찰", "문재인 폄훼 안돼"
임종석 전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은 3일 SNS에 쓴 글에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윤석열 심판이 완성되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지난 대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성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패배로 끝난 지난 대선에 대해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임 전 실장은 "민주당은 공식적인 대선 평가를 하지 못했다. (대선) 두 달 뒤에 이재명 후보가 인천 계양(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고 다시 두 달 뒤에 당대표가 되었기 때문"이라며 "이재명 후보가 부족했고 당의 전략이 부재했음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비로소 이기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이 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임 전 실장은 "패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떠넘겨졌고 지금까지도 문재인 정부 탓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율이 40%를 넘었고 역대 유일하게 레임덕이 없는 정부였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아버렸다"고 친명(親이재명) 진영에 날을 세우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지난달 하순에도 "이재명 대표 혼자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 "친명의 색깔만으로는 과반수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지난달 24일), "이재명 대표 한 사람만 바라보며 당내 민주주의가 숨을 죽인 지금의 민주당은 과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같은달 21일)라고 연이어 이 대표를 겨냥했다.
임 전 실장과 함께 옛 친문(親문재인) 진영 주자로 꼽히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지난 1일 SNS에 쓴 글에서 "민주당의 저력은 다양성과 포용성 속에서 발휘되는 통합의 힘"이라며 "내란세력에 대한 단죄는 헌재 판결이 끝이 아니다. 대선 승리만이 탄핵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지사는 "칼의 언어로 대응하고 조롱의 언어로 대처하는 것은 크게 하나되어 이기는 길이 아니다"라고 친명계를 간접 비판하며 "서로에게 고함치는 일을 멈추고, 사과하고 손을 내밀고 크게 하나가 되어야 이긴다"고 하기도 했다. 앞서 자신과 임 전 실장 등이 제기한 비판에 대한 친명계의 반발을 겨냥한 것으로 읽혔다.
김 전 지사는 지난달 29일 "2022년 대선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와 총선 과정에서 치욕스러워하며 당에서 멀어지거나 떠나신 분들이 많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기꺼이 돌아오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폄훼했던 언행들에 대해서는 발언 당사자의 반성과 사과는 물론 당 차원의 재발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박용진 전 의원은 이같은 비명계 주자들의 언행과 친명계 등 주류세력 양쪽에 모두 거리를 두며 "지난 20년 동안 민주당과 대한민국 정치에서 주도력을 행사해 왔었던 586 정치를 청산하고, 내로남불의 정치적 태도를 넘어서야 민주당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줄 수 있다"며 "이재명 일극 체제만 극복되면 대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일까"(1.31)라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 부동의 1위 주자인 이재명 대표는 이같은 당내 비판 여론 분출에 대해 이날 SNS에 올린 입장문에서 "다양성과 비판은 현대 정당의, 우리 민주당의 생명과도 같은 원칙"이라며 "한 목소리만 나오지 않도록 오히려 다른 목소리를 권장하면 좋겠다. 우리 안의 다른 의견을 배격하면서 내부 다툼이 격화되면 누가 가장 좋아하겠느냐"고 하면서도 "작은 차이로 싸우는 일은 멈추고 총구는 밖으로 향했으면 한다. 저 또한 여러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며 함께 이기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여야 중진·원로 '개헌론' 띄우기…김부겸·이낙연 "先개헌", 안철수 "2026년"
김부겸·이낙연·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김진표·박병석·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무성·서청원·손학규·황우여·정대철 전 여야 정당 대표 등으로 구성된 '나라를 사랑하는 원로 모임'은 이날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3차 오찬 간담회를 열고 개헌 논의에 나섰다.
이들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원 포인트' 권력구조 개편 개헌을 제안하며 이르면 대통령 탄핵심판 도중, 늦어도 차기 대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선(先)개헌 후(後)대선' 방안을 제안했다. 김·이 전 총리와 정 전 의장은 야권 대선주자 후보군으로도 꼽히는 이들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원로모임과는 별개로,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87년 헌법 체제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 분권형 정치체제로 혁신해야 한다"며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대통령 권한 분산 등과 함께 국민 기본권 조항 재설계까지 포괄하는 개헌 국민투표를 2026년 지방선거와 동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안 의원은 "조기 대선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개헌"이라며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생존을 위해 개헌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정치권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개헌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충남도지사도 이날 낸 입장문에서 "당장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개헌을 준비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차기 대선 전에 새로운 권력 시스템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 새로운 정부가 탄생해야 한다"며 "지금이 개헌의 적기다. 여야는 정치를 복원시키는데 힘을 모으고,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개헌 로드맵을 국민들께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선 분위기 부적절' 선 긋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통령 탄핵이 확정이나 된 것처럼 조기 대선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1.31)라고 공식적으로는 선을 긋고 있으나, 정작 지도부도 '이재명 때리기'에는 연일 적극 나서고 있다. (☞관련 기사 :국민의힘 지도부, 일제히 '이재명 때리기'…"조기대선 헛꿈" / "조기대선 분위기 조장 말라"는 국힘, 이재명엔 총력 견제?)
당 소속 개별 주자들은 대선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며 최근 존재감 부각에 나서고 있다. 최근 라디오 방송 출연 등 대중·언론 접촉면을 넓히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윤 대통령과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당 주류세력에 연일 날을 세우는 한편 "이재명 대표와 중도·중원에서 싸워서 누가 이기겠느냐"(2.3 MBC 라디오 인터뷰)고 중도 확장성을 자부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이날자 <세계일보>-한국갤럽 조사에서 실시한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공동 선두를 차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여당 주자만을 대상으로 전 응답층의 의견을 물은 결과 김문수·유승민 각 17%, 오세훈 13%, 한동훈 12%, 홍준표 11%, 안철수 8% 순으로 집계됐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1.31부터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4명 대상 무선전화 인터뷰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6796명 통화시도 1004명 응답완료로 14.8%. 기타 상세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에서 확인 가능)
역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윤 대통령과 선을 긋고 탄핵 찬성을 촉구했던 한동훈 전 대표는 정치 일선에 다시 나설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당 대표직 사퇴 후 잠행해왔지만 지난달 24일 진종오 전 최고위원과 만나 식사한 사진이 진 전 최고위원 SNS를 통해 공개됐고, 지난 1일 친한계 박상수 전 대변인은 "73년생 이하 젊은 소장파 정치인들과 경쾌하게 보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방송을 해보겠다"고 유튜브 채널 개설을 예고했다. 한 전 대표가 바로 1973년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대선 의제인 '미래 먹거리'에 대한 글을 설연휴 직후 SNS에 올렸다. 오 시장은 이른바 딥시크 충격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AI 3대 강국 진입의 희망을 본다", "'AI 인재 1만명 양성'을 서울시가 실현하겠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연일 SNS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12.3 비상계엄이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윤 대통령을 감싸고 있다. 한편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정치인인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올해 만 40세가 됐다며 "세대교체"를 내세우는 등 대선주자임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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