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여론의 결집세가 뚜렷하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 윤석열 대통령 수사 및 탄핵심판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1월, 각 기관 여론조사의 동향은 명백한 보수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단발성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린 결과가 확인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나,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되는 조사들뿐 아니라 전국지표조사(NBS)·한국갤럽·리얼미터 등 정례 조사에서도 국민의힘 상승세와 민주당의 하락세는 뚜렷하다.
1월 1주차와 3주차에 걸쳐 2차례 시행된 NBS 조사 결과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은 62%에서 59%로 하락, 탄핵 반대 및 직무복귀 여론은 33%에서 36%로 상승했다. 대통령 탄핵 시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 또한 53%에서 48%로 하락했고, 정권재창출을 원하는 여론은 37%에서 41%로 상승했다. 정당 지지율의 경우 민주당이 2차례 모두 36%로 1위를 유지했지만, 국민의힘 또한 32%에서 33%로 소폭 상승률을 보였다.
갤럽에선 1월 2주차에 민주당(36%)이 국민의힘(34%)을 접전 구도 내에서 앞섰지만, 1월 3주차에는 국민의힘(39%)이 민주당(36%)에 역전하는 양상이 기록됐다.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 또한 64%(1월 2주차)에서 57%(3주차)로 줄었고, 탄핵 반대 여론은 32%(1월 2주차)에서 36%(3주차)로 상승한 것이 확인됐다.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이후 치러진 1월 4주차 조사에선 민주당의 지지율(40%)과 탄핵 찬성 여론(59%)이 모두 상승했으나, 국민의힘 지지율(38%)과 탄핵 반대 여론(36%)도 그 낙폭이 크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 와중에 리얼미터의 20일 발표에선 다소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기관이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16~17일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유무선전화 ARS 100%) 결과, 차기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에서 현 집권세력의 정권 연장을 선호한다는 의견이 48.6%로 정권교체 의견(46.2%)보다 높게 나왔다.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국민의힘이 46.5%를 기록, 민주당의 39.0%를 크게 앞섰다.
같은 기관의 전주차 조사에선 민주당 지지도 42.2%, 국민의힘은 40.8%로 집계됐는데, 이는 직전 조사 대비 국민의힘이 6.4%포인트(p) 상승하고 민주당은 3.0%p 하락한 결과였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양당 간 지지도 차이는 "지난해 9월 3주 이후 16주 만에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탄핵 국면에서의 보수 상승세가 결국 지지율 역전현상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단건의 조사 결과가 아닌 보수 상승의 '경향성'이 뚜렷이 확인된 셈이다.
양당의 최근 움직임에는 이 같은 여론조사 동향이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 '친윤' 지도부부터 일제히 윤 대통령 엄호에 나선 국민의힘에선 당 대표인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한 전한길 한국사 강사에 대해 "선관위와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23일 비상대책위원회의)이라고 옹호 발언을 내놓는 등, 강성 지지층을 강하게 의식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여론조사 검증 특별위원회를 신설한 민주당을 겨냥 "자기한테 원인이 있는데 왜 여론조사업체의 팔목을 비틀고 있다. 다이어트에 실패해 놓고 체중계를 때려 부수는 꼴"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지지율 상승 국면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신동욱 수석대변인)는 원칙적 답변을 내놓고는 있지만, 여론조사 경향 자체에 고무된 분위기는 윤 대통령 관련 사법절차를 두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지도부 메시지를 통해 여실히 확인된다.
'탄핵 드라이브'에 여념이 없던 민주당도 최근 여론조사를 강력하게 의식하고 있다. 당내 여론조사 대응 기구인 '여론조사 검증 및 제도 개선 특별위원회'가 지난 21일 활동을 시작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본인의 정책 브랜드인 '기본사회'를 전면 재검토하고 성장 위주로의 기조변화를 시사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여론조사상의 부진을 의식해 중도층 확보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총선만 해도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달랐던 부분도 있었고, 일부 보수 과표집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여론 흐름에 대해 일방적으로 도외시하고 무시하진 않고 원인을 면밀히 판단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 상임고문단에선 "점령군 같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겸허한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하다"는 주문을 이 대표에게 건넸다고도 전해진다. 근래의 여론조사를 단순한 '보수 과표집' 현상으로만 보고 넘겨선 안 된다는 위기 의식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최근 여론조사 동향을 두고, 강한 보수결집에 따른 '과표집'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민주당에 대한 중도층의 민심이반을 지적하고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과 보수우파 지지자들이 강한 결속력을 갖고 여론조사 응답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중도층에서도 분명히 변화의 여론이 있다"며 "민주당과 이 대표에 대한 '저 사람들이 집권하면 좋은 나라가 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 두려움, 그런 것들이 중도의 표심도 좀 움직인 것이 아니냐"고 진단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 또한 같은 방송 22일 인터뷰에서 최근의 여론조사 동향을 두고 "확실히 보수가 결집하고 있다"며 여론조사상의 '보수 과표집'을 지적하면서도 "이 사태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서 '이 대표와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그리고 '압도적인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의 결합을 우리는 그게 두렵다', '그러면 법안이나 예산이나 탄핵이나 심지어 계엄 같은 것도 견제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게 하나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민주당의 위기 상황과는 별개로, 국민의힘이 이 같은 경향성을 '과신'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부에서 나온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21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숫자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이기는 걸로 나오고, 또 정권연장(론)이 정권교체(론)를 이기는 여론조사들을 보고 우리 의원들이나 당원들이 더 고무돼서 전광훈 집회 더 열심히 나가고, 극우 유튜브 더 열심히 보고, 윤석열 대통령하고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더 열심히 한다"며 "이 방향으로 가면 다음 대선이고 지방선거고 총선이고 못 이긴다"고 경고했다.
유 전 의원은 특히 "여론조사 안에는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한 보수진영의 혐오, 두려움, '저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게 깔려 있는데 그건 이해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지금 국민의힘이 가고 있는 길이 보수 정당이 가는 옳은 길이냐에 대해 좀 차분하게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이렇게 가면 보수정당이 앞으로 국민들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게 너무나 분명하다"고 했다.
23일 열린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오찬 회의에서는 당 원로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윤 대통령 탄핵 건은 헌재에 맡기고 우리는 중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치하길 바란다"는 등 당이 중도확장이라는 방향성을 견지해야 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승리 조건은 "오직 중도로 이념을 확장하는 것과 2040 세대의 확장성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정작 이날 지도부인 권 원내대표는 "의회가 입법권을 남용하고 독주하고 독선적으로 준용되다 보니 반작용으로 대통령이 계엄이란 권한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등 계엄 옹호성 발언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의 이 대표가 노선을 뒤집고 기업·성장 위주 정책의 '우클릭' 행보를 보이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강성지지층 잡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여론조사 동향의 핵심인 중도민심의 향방이 어디로 흐를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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