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법부도 국민 위에 있지 않다. 사법부도 국민 생각을 따라가야 한다."
지난 20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 결과브리핑에서 기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등 사법·수사기관의 작용 일체를 부정해온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강경기조가 1.19 서부지법 폭동사태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취지의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졌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에 "저희는 사법체계를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그 결과에 이른 과정이 납득하기 어렵단 것"이라며 위와 같은 답변을 내놨다.
'윤 대통령 구속은 불법'이라는 의견이 과연 주류 여론인지도 불명확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것은 마땅치 않은 얘기다. 당장 유권자 과반수 지지로 '슈퍼 야당'이 된 민주당이 '민의'를 명분으로 입법을 강행할 때 '떼법', '입법독재'라며 이를 비판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사법체계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국민의힘 입장과 다르게, 국민의힘은 실제론 윤 대통령 수사·사법 절차 전반에서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발을 맞춰 '불법', '원천무효', '위헌'이라는 등의 입장을 견지해왔다. 지난해 12월 16일 한동훈 전 대표의 사퇴 직후부터 권성동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친윤·중진 체제로 재편된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위한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에 반대하며 적극적인 '윤석열 지키기'에 나섰고, 윤 대통령 '내란수괴' 혐의의 수사를 맡은 고위공직자수사처에 수사권 논쟁을 제기하며 본격적인 '사법 부정'의 길을 걸었다.
공수처법상 공수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 수사권을 갖는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또한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한 '관련 범죄'라는 것이 공수처의 설명이지만, 국민의힘은 명시적인 '내란죄'가 아닐 경우 현직 대통령에 대한 소추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이를 전면 부정했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내란죄 수사를 두고 법령 해석 공방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조사 자체가 불법'이라며 3차례 조사에 불응한 윤 대통령의 태도 또한 피의자 권리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12월 31일, 법원이 윤 대통령 체포·수색을 위한 영장을 공수처에 정식 발부하면서 정국은 법치주의 자체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대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이 발부된 직후인 지난 3일, 권성동 원내대표는 "통상 공수처의 영장은 서울중앙지법에서 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유독 서부지법에 (영장을) 신청했다"며 "편의적인 '판사 쇼핑'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서부지법의 영장발부 자체를 겨냥해서도 "헌정질서 훼손"이라는 평가를 내놨고, 이는 곧 윤 대통령 체포에 반대하며 관저로 집합한 40여 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의 입으로 번져 체포영장 자체가 "원천무효"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사법부가 정식으로 발부한 영장에 대한 '불법성' 주장과 그에 기반한 '저항권' 주장이 법치주의 내에서 허용될 수 있을까. 대법관인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윤 대통령 측의 영장집행 거부와 이에 대한 여당의 옹호에 대해 "적법하게 절차를 따라 이루어진 재판에 대해서는 일단은 그것을 존중하고, 그에 대한 다툼은 절차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 법치주의의 핵심"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영장 발부 등 사법절차 자체가 '불법'이며 '무효'라고 주장하는 대통령과 여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 측은 영장 발부처인 서부지법에 이의신청을 제기해 '절차 내의 다툼'을 시도했지만, 이 또한 5일 기각된 바 있다. 천 처장은 "(영장발부와 이의신청 기각이) 이러한 재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면 일단 그것은 제도권 내에서, 즉 절차 내에서 이의신청이라든지 기타 체포적부심이라든지 여러 가지 절차를 통해서 다투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설명한다.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통상 영장을 청구하던 중앙지법이 아닌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영장발부 자체가 "불법", "무효", "짝퉁"이라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에 대해 영장 청구 당시부터 "용산구 관할법원인 서부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는 반박을 내놨다. "중앙법원에도 창설적인 관할권이 있지만 원래 형사소송법에 의한 (서부지법의) 관할권도 그대로 존치된다"는 설명이다. 천 처장 또한 관련한 법사위 여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당시 (영장전담) 판사는 주도적인 견해를 따른 것"이라고 영장발부 행위를 옹호한 바 있다.
여당 내에서도 같은 취지의 지적이 나왔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17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불법'이라 부정하고 있는 대통령 체포 과정에 대해 "(대통령 체포는) 결국은 이것이 불법이 아니라 잘 보면 편법"이라며 "법을 어긴 것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서부지법에 대한 영장 청구를 '편법'이라고 사후 비판할 수 있을지언정, 체포 자체를 거부하는 '불법' 논리는 적절치 않다는 취지다.
검찰·법무행정 관련 법령 유권해석을 담당하는 법무부 또한 같은 입장이다. 법사위에서 서부지법의 영장 발부 과정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 김석우 법무장관 직무대행(법무차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서 발부받은 이상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기본적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해서 발부받은 이상, 그 영장 자체는 적법한 것으로 법원에서 판단한 것으로 생각한다"(10일 법사위 현안질의)라고 체포영장 집행의 적법성을 인정했다.
윤 대통령은 15일 공수처에 체포된 직후 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법이 아닌 중앙지법에, 본인들의 논리로는 '판사 쇼핑'을 하듯 체포적부심사를 신청했지만 중앙지법마저 16일 이를 기각했다. '정당한 영장 발부처는 중앙지법'이라는 논리로 공수처·서부지법·대법원·법무부 등 모든 국가기관의 권위를 부정해오던 국민의힘은, 정작 중앙지법이 윤 대통령 측의 체포적부심을 기각하자 일제히 침묵했다.
국민의힘은 17일 김동원 대변인 논평에서 유일하게 윤 대통령 체포적부심 기각 사안을 언급했지만, 해당 논평의 취지는 "이재명 재판도 법대로 2월15일까지 선거법 위반 2심 판결해야 한다"는 것으로 체포적부심 기각에 대한 가치평가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당일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체포적부심 기각에 대한 당의 입장이 뭔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장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최초에 대통령 체포에 대해 불법적이고 반헌법적인 부분을 이미 다 말했다"고 했다. 법원의 체포적부심 기각에 대해 낼 입장은 없지만, 윤 대통령 체포가 불법이라는 본인들의 입장은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즉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수사 △서부지법의 영장 발부 △영장 이의신청 기각 △2차 영장 발부 △중앙지법의 체포적부심 기각과 △이에 동반된 사법 및 유권해석 기관의 적법성 해석을 모두 부정한 셈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윤 대통령 체포를 두고 "사법 쿠데타", "명백한 법치농단"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수사·사법기관을 향해서는 "민주당의 사병집단", "이재명 세력의 찬탈도구"이라고 말해 '야당결탁설'을 공공연히 제기하기도 했다. (☞ 관련기사 : 윤석열 체포가 "사법 쿠데타", "법치 붕괴"라는 국민의힘)
이처럼 당 지도부가 사법결과를 부정하는 사이,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판결이 "무효"이며 "불법"이라 주장하는 일부 극성 지지자들에 의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까지 발생했음에도 국민의힘은 수사기관·사법부를 겨냥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장본인들"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선 탄핵심판 주체인 헌법재판소를 향해서도 "국정혼란을 부추긴 책임이 있다", "왜 이렇게 불공정한가", "헌재와 민주당의 짬짜미"라는 등 사실상 '탄핵불복'을 시사하는 발언도 나왔다. (☞ 관련기사 : 국힘 "헌재소장 대행이 이재명 절친"…'사법부 테러'에도 또 헌재 때리기)
야권과 시민사회 등지에선 '헌법재판소를 겨냥한 2차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윤 대통령의) '극우여 봉기해서 나를 지켜라' 그런 선동과 그런 선동을 이용하려는 정치집단들이 겹치면서 사회 갈등이 올라와버린 것"(김상욱 의원, 20일 MBC 라디오 인터뷰), "대통령이 '싸우자'는 표현을 쓰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다"(조경태 의원, 같은날 SBS 라디오 인터뷰)는 등 대통령과 여당의 태도가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취지의 평가가 나온 바 있다.
공수처·경찰(국수본)·법원·헌재 등 윤 대통령 수사·탄핵 절차와 관계된 모든 국가기관의 권위를 부정하면서도 당에선 "법치의 깃발 높이 들고 앞장서서 싸우겠다"(권영세 비대위원장, 20일 비대위), "국민과 함께 반드시 이재명 세력의 폭주를 막아내겠다"(권성동 원내대표, 같은 날 비대위)는 등의 발언이 이어진다.
이같이 '법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는 국민의힘이지만, 그 '함께'하는 국민은 극우 지지층으로만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1.19 사법부 테러 이후 당에선 비대위원장이 폭동을 옹호하고 있는 극우유튜버들에게 설 선물을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는가 하면, 당 원내대표는 해당 행위에 대한 지적을 오히려 비판하며 "유튜버도 대안언론"이라고 주장한다.
당내 소장파 김상욱 의원은 22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장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거짓말도 괜찮다', '선동도 괜찮다', '강성지지층과 극우 다 안아야 된다'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보수의 가치가 무너지고, 당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중도층이 이탈하고, 강성지지층만 남게 되는 결과가 돼서 당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 최근 당 분위기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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