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평가 기업' 명단에 현대차가
"세계 2위의 전기차 제조업체 BYD는 90점 만점에 11점을 기록하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 현대자동차와 미쓰비시자동차도 BYD와 비슷하게 의미 있는 인권 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를 수행했다는 정보를 거의 또는 전혀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 또한 오직 BYD, 현대자동차, 미쓰비시자동차만 국제앰네스티 조사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3가지 질문이 생겨난다.
➀ 도대체 어떤 자료에 실린 얘기일까?
➁ 현대차는 무슨 연유로 여기에 이름을 올렸을까?
➂ '인권 실사'라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오늘 <인사이드경제>는 이 3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풀어가 보도록 하겠다.
우선 첫 번째 질문부터 시작해본다. 답은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지난해 펴낸 <Recharge for Rights(권리를 충전하라)> 책자이다. 이 책자 전문은 PDF 파일로 앰네스티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으며(☞관련자료 바로가기), 위 그림은 서두에 실린 이미지이다.
대충만 살펴봐도 앰네스티가 뭔가 기준을 갖고 자동차산업 기업들을 평가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최악의 평가 기업(THE WORST PERFORMERS)' 명단에 BYD, 미쓰비시자동차와 함께 한국 자동차시장 최대 점유율을 가진 현대차가 포함되었다.
'공급망'에서 '인권 실사'
앰네스티 홈페이지에 나온 설명을 인용하면 "주요 전기차 제조업체 13개가 공개한 인권 실사 정책과 관행을 국제기준에 맞춰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점수표로 발표"한 자료이다. 단순히 문헌으로 기록된 정책만 살핀 것이 아니라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광물 채굴과정에서 실제로 인권 실사를 이행하고 있는지도 들여다본 것이다.
공급망에서 왜 인권 실사를 하는 것인지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자.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을 예전에 다룬 바 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공급망 협정에서 이 지역 기업들이 '노동권'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이다(☞관련 기사 : 'ILO협약 비준 불량국' 미국이 무역협정에서 노동권 꺼내든 이유).
IPEF 공급망 협정에서 '노동권'이 의미하는 것은 ILO 핵심협약 10개, 그리고 최저임금·노동시간 관련 권리를 의미했다. '인권 실사'에서 노동권은 '인권(human rights)' 중 핵심에 해당한다. '실사(due diligence)'는 말 그대로 세심하게 조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급망(supply chain)'은 대체 어디까지를 의미할까? 통상적으로 자동차산업과 같은 제조업에서 공급망이라 하면 부품을 만들고 납품하는 관계를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로는 원료를 채굴하고 제련하는 광업 단계까지를 포함한다. 간단히 말해 자동차 한 대 생산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과정이 공급망에 포섭된다고 할 수 있다.
배터리·모터 등 전기차 부품 원료 채굴도 포함
내연기관차의 핵심부품이 엔진이라면, 전기차의 핵심부품은 배터리라고 할 수 있다. 엔진과 주요 부품의 소재는 대부분 주철, 비철금속, 알루미늄합금이지만, 배터리의 경우 양극재에는 니켈·망간·코발트가 들어가고 음극재에는 흑연 등 소재가 사용된다. 리튬이온을 활용하기 때문에 리튬 자원도 상당히 필요하다.
즉, 내연기관차는 거의 사용하지 않던 소재·원료를 대규모로 채굴하기 때문에 전기차 공급망은 기존과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문제는 이들 소재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극악한 아동노동·강제노동이 활용되고 있으며, 채굴과정 또한 환경파괴를 수반한다는 보고가 국제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보고서를 발표한 국제 앰네스티는 2016년 코발트 채굴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조사한 자료 <목숨을 건 코발트 채굴>을 발표한 바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배터리 양극재에 들어가는 코발트, 문제는 이 자원이 희소하다는 점인데 가장 많은 코발트 원석이 채굴되는 곳은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DRC)이라는 나라이다.
배터리 원료 대부분이 중금속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광산은 대부분 영세한 광부들이 채굴에 나서고 있는데, 기업 소유 광산이 버려질 경우 그곳에서 버려진 돌무더기와 같은 부산물에서 코발트를 찾아내는 일이 진행된다. 원석을 씻고 고르는 과정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가 담당한다. 작은 굴에 들어가 코발트를 찾는 작업도 벌어지는데 여기에도 몸집이 작은 어린이들이 투입된다.
코발트가 포함된 먼지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중금속 폐질환'이라는 치명적인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코발트 입자를 흡입할 경우에도 폐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으며, 피부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운 주기율표에 따르면, 배터리에 사용되는 전자를 얻기 위해 활용되는 리튬(Li)은 원자번호 3번으로 매우 가벼운 물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양극재에 쓰이는 니켈(Ni), 망간(Mn), 코발트(Co) 모두 원자번호 20번대의 중금속에 해당한다.
채굴·생산과정이 인체에 미칠 영향은?
그동안 리튬이온배터리 하면 주로 휴대폰, 노트북에 사용되는 작은 용량의 것이었지만, 전기차 생산이 폭증하면서 대용량 배터리 생산이 폭증하고 있다. 코발트 채굴 단계에서도 심각한 폐질환이 유발되는데,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노동자 인체가 이들 중금속에 장기 노출될 경우 어떤 해악을 끼칠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경험이나 연구·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다.
또한 중금속은 아니지만 리튬 채굴과정은 엄청난 물을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차 생산을 위해 전세계 곳곳에서 리튬 광산 찾겠다고 난리인데,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차 만든다는 미명 아래 엄청난 환경파괴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이유 때문에 탄소배출 제로의 사회로 이행을 미뤄야 하는 것일까? 그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질문이다. 애초에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조건 속에서 원료 채굴과 배터리 생산 및 전기차 제조가 이뤄지도록 만들면 되는 일이다. 이윤에 눈이 먼 기업의 탐욕을 이유로 우리의 미래를 희생시킬 이유가 없다.
공급망 실사 원리의 등장
바로 이런 이유에서 '공급망 실사'라고 하는 원리가 전세계 산업·무역 질서에 도입되는 추세다. 원료 채굴 단계에서 최종 조립 과정까지, 그리고 제품이 소비되고 A/S 및 재활용이 이뤄지는 모든 과정, 즉 공급망에서 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리가 도입되면 응당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그렇다면 공급망 실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당연히 공급망의 우두머리, 즉 이 모든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이윤을 벌어들이는 당사자가 공급망 실사 의무를 떠안아야 한다.
전기차 공급망이라면 응당 최종 조립을 담당하는 완성차 제조사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국제 앰네스티의 공급망 실사 보고서가 13개의 전기차 제조사를 향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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