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아낙들은 ‘시댁’이 싫어서 시금치까지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위사랑은 장모’라고 했는데, 이것도 벌써 옛말이 되어 버렸다.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라는 말도 생겼다. 시아버지는 서열이 6번이란다. 남편과 자식, 그리고 강아지 밑에 시아버지가 있다는 말이다. 강아지가 아프면 애지중지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서 비싼 약도 마다 않고 쓰지만 시아버지는 어디가 아픈지 관심도 없다.(이러다가 우리 며느리한테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의 일반적인 사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도 살아야지. 허허)
필자의 어머니는 시집사이를 지독히 심하게 겪으셨다. 한학을 한 집안에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것을 상상하면 된다. 이제 부모님께선 모두 돌아가시고 필자가 시아비가 되었다. 예쁜 며느리는 쌍둥이 손주까지 낳아 주었다. 사위가 방청소 하고 외손주의 똥 기저귀 갈아주면 착한 우리 사위지만, 아들이 그런 일을 하면 못난 놈이 된다. 그것이 부모의 심정인가 보다.
‘시아비’는 ‘시아버지를 가리키며, 남편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媤) 자이다. <두시언해> 초간본에 보면 “[싀아비(媤父), 싀어미(媤母) : 엇뎨 써곰 싀아비를 배알(拜謁)하리오]”라는 글이 있다. 여기서 ‘싀아비, 싀어미’는 요즘의 ‘시아비, 시어미’를 이른다. ‘싀’는 ‘스이’가 줄어서 된 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슫>슬>스이>싀’의 변화로 본다. 여기서 ‘싀’는 관형어로 쓰인 것으로 ‘남편 쪽’을 가리킨다.
‘사위’도 예전 문헌에는 ‘사회 서(婿)’<훈몽자회 32>라고 나타나 있다. ‘회’는 ‘호이’의 준말로 ‘홀>호리>호이>회’의 변화일 것이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에서 인용) 그러니까 ‘사회(사위)’의 ‘사’는 ‘싀’와 같은 어근이라고 볼 수 있다. 옛글에 ‘싀앗 : 처(妻) 남의 싀앗되야(<청구영언>, 117쪽)’라는 글이 있고, 같은 책(157쪽)에 “어느 개딸년이 싀앗새옴 하리오”라는 글이 있다. 여기서 ‘개딸년’은 요즘 시대에 말하는 ‘개딸’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과거에는 ‘개’라는 접두사는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아무튼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싀’는 부인 쪽에서 남편 쪽을 가리키는 말임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이해하기 쉬운데, ‘싀앗’이라는 말은 조금 어렵다. ‘시집, 시댁’이라고 할 때의 ‘시’와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앗’을 현대어로 하면 ‘시아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시앗 싸움에 석불도 돌아 선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시앗’은 ‘처첩’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그냥 ‘첩’이라는 의미도 있다. 예를 들면
그 양반은 세 명의 시앗을 거느리고 살았다.
시앗끼리는 하품도 옮지 않는다.
등의 예문에서는 ‘첩’이라는 말이다. 본래 한 사람이 하품을 하면 곁에 있는 사람도 따라서 하품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앗끼리는 옮지도 않는다는 말이니, 시앗끼리 서로 시기하고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아서 별것 아닌 것도 싫어한다는 뜻이다. 또한 경상남도 일대에서는 ‘씨앗(종자(種字)’을 ‘시앗’이라고 하기도 한다. 과거에 남아선호사상이 심하던 시절에는 아들을 얻기 위해 ‘씨받이’를 들이기도 했고, 첩을 얻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은 성경에도 나올 정도로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얻는 것은 비일비재하였다. 그래서 ‘시앗’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고 유추할 수도 있지만 아직 ‘시아버지’의 ‘시’와 ‘시앗’의 ‘시’가 동일한 어원임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냥 ‘시앗’은 남편이 아들을 두기 위해 부인 외에 따로 마음(?)을 두고 있는 여자다.
기본적으로 ‘시(媤)’는 남편의 가족에게 붙이는 접두사였음은 확실하다. 시누이와 올케가 자매처럼 지내고, 시어미와 며느리가 모녀처럼 사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며느리가 수시로 전화하면 시어미는 그냥 좋아한다. 아주 사소한 일로 수시로 전화하는 우리 집 며느리는 참 지혜롭다.(결국 며느리 자랑으로 끝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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