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 재정불안, 특고·플랫폼 노동자 때문? 진짜 원인 따로 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고용보험 재정위기와 보편적 출산·육아 지원

1995년 도입된 고용보험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30주년이니 이를 기념하여 고용보험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노동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조망할 만도 한데, 근래 주로 눈에 띄는 고용보험에 대한 언론보도는 주로 재정불안정을 우려하는 기사들이다. 30주년을 맞이한 고용보험이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기금이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그 원인으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 고용이 불안정한 계층의 가입, 지나치게 높은 실업급여 수준, 실업급여 반복수급 증가 등 도덕적 해이 등을 꼽고 있다.

현재 고용보험의 재정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고용보험기금은 지난 2020~2021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후 2022~2024년간은 흑자로 전환했다. 그러나 실업급여계정만을 놓고 보면 2020년 뿐 아니라 2022년과 2024년에도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했고, 고용보험 기금은 '실업급여계정'과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계정'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중 재정문제가 주로 지적되는 것은 실업급여계정이다.

그 결과 2024년 기준 적립배율(적립금/지출액)은 0.2배에 불과해 법정 적립배율(1.5~2배)을 크게 하회하고 있다. 이마저도 코로나19 시기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해 공공자금관리기금을 차입한 결과로, 향후 7.7조 원의 차입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재정 불안정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욱 크다.

그러나 주요 언론에서 지목하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의 가입, 실업급여의 지나친 관대함,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 등이 재정불안의 진정한 원인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지난 2021년부터 '전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하면서 '노무제공자' 지위로 가입하기 시작하여 현재 노무제공자인 고용보험 가입자는 약 80만~90만 명 사이로 파악된다. 그런데 이들의 실업급여 수급률(가입자 대비 급여수급자의 수)은 일반 근로자의 9분의 1~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즉 보험료를 내는 것에 비해 보험급여를 제대로 못 받고 있어 오히려 보험재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노무제공자 가입에 따른 재정불안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노무제공자에 대해 실업급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해야 할 형편이다.

급여체계의 관대함이나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 역시 진정한 원인인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실업급여가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은 주로 최저임금의 80%로 정해져 있는 급여 하한선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 근거한다. 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실업급여의 상한선 역시 다른 국가들 대비 낮고, 급여 지급기간을 짧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하한선이 높은 것이 근로의욕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는 논의 필요성이 있을지 몰라도 실업급여 체계전체로 볼 때 재정불안을 가져올 만큼 관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는 실업급여 반복수급이 늘어났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장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한 결과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의 불안정하면 실업급여 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일부 도덕적 해이는 나타날 수 있고 관리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보험재정 전체의 위협이라고 주장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고용보험 실업급여계정의 재정불안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출산전후휴가급여 및 육아휴직급여의 증가에 기인한다. 고용보험제도에서 '모성보호급여'로 불리는 이 급여들은 2002년 고용보험제도의 일부로 도입되었는데 별도의 계정을 가진 것이 아니라 실업급여계정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모성보호급여는 도입 당시 연간 257억 원 지출로 시작하여 2024년에는 2조 5700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올해는 약 4.2조 원가 지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이 고용보험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면서 일반회계의 지원도 시작됐지만 2011년까지 연간 102억 원 수준이었다가 점증하여 2025년에는 5500억 원에 이르렀지만 지출에 비해서는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고용보험계정을 추계한 연구들에서 모성보호계정의 분리가 실업급여재정 안정의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이 고용보험의 일부로 도입된 것은 그 자체로 논란거리였다. 고용보험은 자영업자를 그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임금근로자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비정규직, 임시직, 일용직이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 대응이나 일·가정 양립에 대한 지원이 고용이 안정된 임금근로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닌데 고용보험으로 이를 지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복지국가들은 출산·육아에 대한 급여를 일반조세로 조달하거나 별도의 부모보험 혹은 건강보험을 재원하고 있다.

고용보험의 모성보호지출이 급속하게 증가한 것은 저출산 대응이나 일·가정 양립지원을 강화해온 결과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기에 불가피하지만 그렇다면 재정적으로도 국가가 책무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노사가 기여하는 고용보험기금에 그 책임의 대부분이 떠맡겨진 상태이며, 결과적으로 고용보험 재정이 불안해졌을 뿐 아니라 보편적 출산·육아지원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실업급여 기급에서 모성보호급여를 독립하고 일반조세의 비중을 상당한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 만약 조세로 전체를 부담하기 어렵다면 출산·육아 지원을 위한 재정 구조를 어떻게 형성하고 운영할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도 출산·육아 급여를 별도의 재정으로 분리하여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고용보험 실업급여는 그 자체로 중요한 과제들을 안고 있다.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등 새로운 불안정 노동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고용보험이 보호하고 있는 것은 이들 중 일부 직종에 불과하다. 모든 일하는 사람의 소득을 파악하고 이들을 고용보험으로 보호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미 고용보험에 포괄되어 있는 노무제공자는 내는 보험료에 비해 받아가는 실업급여가 턱없이 적다. 이는 고용보험제도가 노무제공자들이 급여를 수급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이를 바로잡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과정은 고용보험 재정의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데 현재와 같이 고용보험 재정이 불안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실업급여와 출산·육아지원이 각자가 보호해야 할 사회적 위험에 대한 보편적 대응을 이루기 위해서 두 제도의 재정적 이별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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