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 오후 5시 정각. 서울 여의도 앞을 가득 메운 200만 명의 시민이 숨 죽이고 대형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스크린 속 우원식 국회의장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시민들은 초조한 듯 두 손을 꽉 잡았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총 투표 수 300표 중 가 204표…"
우 의장의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가 204표"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이미 여의도는 어마어마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겼다!", "국민이 승리했다!", "대한민국 만세!"
시민들은 서로를 부둥켜 끌어안고 소리 질렀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그때 광장에서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가사를 따라부르는 일부 시민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표결 결과 발표 전까지만 해도 사뭇 비장함이 흘렀던 광장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시민들은 '다시 만난 세계'에 이어 나온 지드래곤의 노래 '삐딱하게'도 함께 따라 불렀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집회 진행자가 "국민이 승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44년 전으로 돌리려 했지만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켜냈다"고 선언했다. 시민들은 일제히 "와" 하며 함성을 지르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가결 되자마자 '맛집' 찾고 귀갓길 검색…탄핵안 가결로 되찾은 일상
거리를 가득 메운 200만 명의 시민들은 우 의장이 가결을 선포하자마자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려는 모습이었다. 큰 소리로 "아 탄핵이다! 발 뻗고 자자!", "이제 집에 가자"며 귀갓길을 재촉했다. 우 의장이 "국민 여러분의 연말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취소했던 송년회, 재개하시기를 당부드린다"고 하자, "송년회 하러 가자!"고 하는 이도 있었다.
국회 정문 앞에 있던 20대 연인은 광장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영등포구청 근처 맛집을 검색했다. 이들은 "맛집 찾아다니는 낙으로 사는 사람들인데, 집회 오느라 주말마다 김밥으로 저녁 떼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이제 주말에 다시 맛집을 다닐 수 있게 돼 좋다"고 했다.
윤석열 탄핵 집회의 상징인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을 찾은 20대 여성들은 서로 '셀카'를 찍어주며 승리의 순간을 저장했다. 이들은 "오늘 가결되리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되니 너무 신난다"며 "좀 더 즐기다 집에 갈 것"이라고 했다. 이들 중 한 명은 "계엄 선포 이후 공부가 손에 안 잡혔는데 그나마 좀 집중하게 될 것 같다. 그래도 헌법재판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계속 뉴스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예비군 군복을 입고 집회에 참석한 수십 명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서로 얼싸안고 "고생했다", "이제 끝났다"고 말하며 기쁨을 누렸다.
해병대 출신 60대 김모 씨는 감격에 겨운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우리가 이 정부 들어서 채상병 사건 때도 그렇고 용산이랑 국회를 얼마나 많이 갔는지 아나. 인정받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고생이라면 고생인데 보상받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병대 예비역 연대 소속 진기춘 씨는 "기쁘다"면서도 "다 끝난 게 아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국민의힘이 처단 대상이 될 때"라며 향후 국민의힘 해산을 위해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윤석열 탄핵 집회의 최고 히트송이었던 에스파 '위플래시'의 맞춤 구호는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에서 어느새 "승리 승리 우리가 승리"로 바뀌어 있었다.
윤석열 탄핵 만들어 낸 200만 시민의 힘
이날 집회에 모인 인원은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이었다.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었던 지난 7일보다 2배가량 많은 인원이 몰린 셈이다.
시민들은 오후 3시로 예정된 집회가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여의도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오후부터는 여의도·국회 앞에 몰린 인파를 감당할 수 없어 서울교통공사는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 무정차 통과 조치를 내렸고, 이에 국민들은 신길역·영등포구청 역 등 여의도 인근 역에서 내려 국회 앞까지 줄지어 걸어갔다.
날은 추웠지만 서로를 챙기는 시민들의 온기가 광장을 녹였다. 광주·전남에서 찾아온 국민 200여 명은 국회 앞으로 행진하는 길에 마주친 집회 참가자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기장떡을 돌렸다. 이외에도 기업·단체·개인 등은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무상으로 도시락과 핫팩을 돌리며 한파를 뚫고 나온 서로를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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