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내년도 예산 '감액만 반영' 상태로 예결위 강행처리

용산·檢·警 특활비 전액, 정부예비비 반액 삭감…정부·여당 강력 반발

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여당과의 협상안 도출에 실패하자, 대통령실·검찰 특활비 전액 삭감 등 감액심사 결과만 반영한 예산안을 예결특위에서 단독 처리했다. 협상 불발시 정부 제출 예산안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는 불리한 조건을, 감액예산안이 우선 부의되는 유리한 조건으로 바꿔 정부·여당을 압박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즉 현재로서는 12월 2일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앞둔 최종국면에서의 협상 전략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다만 여야 간 합의가 끝까지 불발되고 대립이 가팔라지면 사상 초유로 감액안만 반영된 예산안이 본회의에서 일방 처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주당은 29일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감액심사만 반영된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예산안이 야당 단독으로 예결위를 통과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국민의힘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표결 직전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예결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은 정부 원안(약 677.4조)에서 4.1조 원을 감액한 액수다. 대통령실 특수활동비(82.5억), 검찰 특정업무경비(506.9억) 및 특활비(80억), 감사원 특경비(45억) 및 특활비(15억), 경찰 특활비(31.6억) 등은 전액 삭감됐고, 4.8조 원 규모의 정부 예비비는 2.4조 원을 감액했다.

국회선진화법(국회법 85조의3)에 따르면, 법정 예결위 예산심사 기한인 매년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의가 끝나지 않을 경우에는 "그 다음 날에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치고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 즉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협상 결과를 내지 못하면 정부 원안이 저절로 관철된다는 면에서 유리한 게임인 셈이다.

민주당의 이날 예결특위 단독처리는 이 '게임의 조건'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 단독처리일지언정 법적으로는 절차상 예결위 심사를 마친 것이 되기 때문에 정부 원안이 아닌 야당 단독처리안이 본회의에 부의되게 된다. 거꾸로 협상이 불발되면 정부·여당이 다급해지게 된 것.

다만 이는 민주당으로서도 고육지책이다. 헌법상 국회가 특정 사업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운 사업 항목(비목)을 신설하려면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미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을 감액만 하는 것은 정부 동의 필요 없이 국회 의결만으로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정부에 요구해온 2조 원의 지역화폐 사업 증액을 포기했다.

국민의힘은 예결위원들은 예산소위 단독 통과 시점에서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 "민주당이 민생을 얘기하며 증액하겠다고 한 민생예산은 민주당의 단독처리 예산안에 단 1원도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민주당의 거짓선동에 국민들은 속았으며 17개 시도, 226개 기초단체와 사회적 약자는 차가운 동절기의 한파에 내몰리는 처지가 됐다"고 이 점을 파고들면서 "이재명 방탄용 예산안 단독처리가 가져올 피해와 국민 분노에 대한 책임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민주당의 책임"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특활비·예비비 등 삭감을 "이재명 방탄을 위한 분풀이식 삭감"으로 규정하며 "민생의 보루인 예산마저 이재명 아래에 있다는 것을 민주당 스스로 증명해준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예결특위 전체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야당이 감액 수정안을 단독 처리한 것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심히 유감"이라며 "국가 본질적 기능이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 예비비를 대폭 삭감해 재해재난 등 예상치 못한 일에 즉시 대응이 어렵고 밀려오는 대외적 불확실성 파도에 신속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 부총리는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귀결될 것"이라며 "야당은 단독처리를 철회해 주고, (여야가) 합의에 임해주신다면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단독처리 배경을 "구태와의 작별, 원칙의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야당 예결특위 간사인 허영 의원 등 민주당 위원들은 전체회의 후 발표한 입장에서 "원칙 없이는 협상도 이어갈 수 없다"며 "민주당의 진심과 국민 뜻은 끝내 거부당했다. 여당은 최소한의 민의 반영에도 반대했고, 국민 허리띠를 강제로 조이는 긴축재정을 강조하더니 2년간 굴욕외교, 불법 관저 이동 등 방만하게 운영해온 예비비를 줄이는 것도 거부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경기침체로 재정의 역할이 중대해진 상황에서 예산안을 조속히 처리해 국민께 희망을 드려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로 결단내렸다"며 "비록 여야 합의를 통해 예산안 처리를 못한 점은 아쉽지만 불요불급한 예산을 삭감하고 국민을 살리는 민생예산을 담아냈다는 사실은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허 의원은 '주말 동안 협상이 계속 진행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이 안이 본회의에 올라갈 것이고 법정기한 내 처리될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오늘 처리된 예산안이 2일 본회의에 처리되는 게 확실하냐'는 재질문에는 "지금 상황으로는 그렇다", "제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고 예결위의 권한은 끝났다"고 여지를 뒀다. 예결위 차원을 떠나 여야 원내지도부 간의 협상 가능성은 완전히 닫지 않은 것으로 풀이됐다.

그는 지역화폐 등 증액사업이 미반영된 채로 통과돼도 괜찮은 것이냐는 질문에 "그건 지도부 판단"이라고 하거나 "이제 우리(예결위)는 끝났다. 지도부로 역할이 넘어갔다"고 하기도 했다.

▲2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예결위는 이날 감액만 반영한 내년도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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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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