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투표장서 사라진 민주당 지지자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민주당의 대선 패배 부른 경제정책 우경화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은 민주당 지지자들

여러 여론조사기관의 예상과 달리 이번 미국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의 압승, 해리스의 참패로 끝났다. AFP 통신은 99% 개표가 완료된 시점에서 전체 선거인단 538명 가운데 트럼프는 312명, 카라 해리스는 226명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국적인 득표수에서는 트럼프가 7464만 표(50.5%), 해리스는 7091만 표(48.0%)를 얻을 것으로 이 통신사는 예상했다(AFP, 2024.11.10.). 이전 대선에 비해 트럼프는 42만 표를 더 얻었고 해리스는 바이든이 얻은 표에서 약 1,040만 표를 잃었다.

언론들은 대선의 투표 결과를 분석한 기사들을 바삐 내놓았는데, 투표장에 나온 유권자의 수가 이전 대선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그 줄어든 유권자가 주로 민주당 성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첫째, 4년 전 대선에 비해 이번 대선의 투표자 수가 줄어들었다. 2020년에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 수는 1억 5800만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거기에서 1250만 명쯤 모자란 1억 4550만 명이었다. 미국 플로리다대학 조사에 따르면 투표율로는 2020년의 66.4%에서 이번에는 64.5%로 낮아졌다. 이와 달리 선거 등록을 아예 포기한 유권자 수는 크게 늘었다. 미국에서는 유권자들이 대선 투표를 하기 위해서 사전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를 포기한 숫자가 2020년에는 1200만 명이었고 이번에는 1900만 명이었다.

둘째, 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선 후보들의 득표수를 지역 특성, 인구사회학적 특성과 결합해 2020년 대선과 비교하여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 매체는 개표를 99% 이상 마친 2240개의 카운티(미국의 전체 카운티는 3244개)를 분석했는데, 이에 따르면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의 우세가 강했던 지역일수록 투표자 수의 감소 폭이 컸다. 거꾸로 트럼프가 우세했던 지역에서는 투표자 수가 거의 감소하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났다. 정치 전문 언론매체인 폴리티코도 카운티 별 투표율을 이전 대선과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 이와 유사한 결과를 제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득 수준이나 노동조합 가입 비율을 통해서도 선거 결과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평균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노동조합 가입 비율이 높은, 따라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카운티일수록 투표자 수의 감소 폭이 컸다. 거꾸로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백인 비율이 높은, 따라서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카운티에서는 오히려 투표자 수가 늘어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러한 분석 결과가 민주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해설했다.

투표장에 나간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 열의도 떨어졌음이 여러 조사에서 확인된다. 소수 민족, 여성, 젊은이, 도시 거주자, 노동조합 가입자 등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으로 꼽힌다. 이번 대선에서 흑인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77%였는데, 이는 이전 대선의 92%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여성 지지율은 지난 대선의 57%에서 이번에는 54%로 낮아졌다. 민주당 성향의 언론매체인 뉴리퍼블릭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의 57%가 노동계급인데, 그 가운데 44% 만이 해리스에게, 54%는 트럼프에게 표를 주었다. 2020년에는 노동계급의 47%가 민주당에, 51%가 트럼프에 투표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노동계급 득표율 차이가 4%p에서 10%p로 늘어난 셈이다. 물론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직 노동자들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더 많은 표를 주었지만, 그 정도는 이전에 비해 약해졌다. 30세 미만 젊은이들의 민주당 투표율도 크게 떨어졌다. 이 연령대에서 해리스는 트럼프보다 6%p를 더 얻었는데, 2020년에는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25%p를 더 얻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왜 민주당에 심드렁한 모습을 보였을까?

▲ 6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 센터에서 승리연설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대통령이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와 손을 잡고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경제 지표는 좋다는데 시민의 삶은 팍팍하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꼽은 이번 선거의 핵심 이슈는 경제와 고용이었다. 대선 직전 AP 통신이 유권자 1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현재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열 명 가운데 네 명이 경제와 고용을, 두 명은 이민을, 그리고 한 명은 낙태권을 들었다. 이민 문제도 넓은 의미에서 고용 문제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국인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경제와 고용을 당면한 중요 문제로 든 것이다. 다른 조사기관들의 조사 결과도 대체로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비추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라고 점치는 분위기도 있었다. 왜냐하면 드러난 수치만으로는 미국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건실하고 활기찬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다우지수는 2021년 초 3만에서 대선 무렵에는 4만3000으로 사상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나스닥도 같은 기간에 1만3000에서 1만9000 수준까지 올라갔다. 틀림없이 미국 주식시장은 주요 나라들에 비해 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IMF에 따르면 미국의 2023년 GDP 실질 성장률(잠정)은 2.1%로, 일본 1.5%, 유로 0.1%, 우리나라 1.4%에 비해 좋은 편이었다. 미국의 실업률은 4% 수준으로 완전고용에 가까웠고 물가도 점차 안정세를 보였다. 민주당은 미국 경제의 실적을 자랑하던 터였고, 수치로만 본다면 그럴만한 근거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은 드러난 수치와는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AP통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은 현재의 경제가 좋지 않다고 답변했다. 역시 대선 직전에 실시한 로이터 통신의 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로이터 통신의 조사에서 미국 경제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답변한 유권자 비율은 미국인 열 명 가운데 여섯 명 꼴이었다. 생활비가 너무 높다고 답변한 유권자 비율도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나 되었다. 공표 지표와 유권자의 체감 경제는 전혀 달랐다.

공표 지표와 체감 경제에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GDP 성장률이 과장되었을 가능성이다. 미국 경제가 유로권이나 일본 등 주요 나라들에 비해 더 나은 성적을 기록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GDP 계산 방식이 성장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무기 제조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의 처리 방식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비용은 GDP 계산에 포함된다. 곧, 전쟁 비용이 늘어날수록 GDP도 커진다. 그렇지만 이렇게 늘어난 GDP가 일반 시민의 생활 수준 개선을 나타낼 리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쟁 비용 지출이 증가하면서 GDP 성장률은 지표상으로는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다수 시민의 삶은 오히려 나빠졌을 수 있다.

둘째, 자산가격의 상승은 다수 시민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 재무부 장관인 옐런(Jarnet L. Yellen)은 2014년, 연준 의장일 당시 연준의 연구원을 동원하여 미국의 불평등 정도를 조사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전체 부 가운데 상위 1%는 35%를, 상위 5%는 63%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하위 50%는 1%만을 차지했고 최하위 20%는 자산을 전혀 보유하지 못했다. 주식, 채권, 뮤추얼펀드, 개인연금과 같은 금융자산을 분리해서 봐도 전체 자산의 분포와 별로 차이가 없었다.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상위 5%는 3분의 2를, 그다음 45%는 3분의 1을, 그리고 하위 50%는 2%만을 차지했다. 이러한 자산 보유 구조에서 예를 들어 주가가 상승한들, 그것이 소수 부유층을 제외한 다수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셋째, 실질 물가 상승률도 공표 수치보다 더 높을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 상품과 서비스의 평균 가격은 공식적으로는 대략 20% 정도 올랐다. 그런데 공식 물가 상승률을 계산할 때 들어가지 않는 의료 보험료나 모기지 이자 지급액 등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 4년 동안 가계의 실질 소득은 지표상으로는 11% 정도 늘어났지만 세금, 의료 보험료, 주택 담보대출 지급이자 증가액을 빼면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의 실질 소득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주택 가격은 지난 4년 동안 45% 상승했는데, 이 때문에 임차인들이 지급해야 하는 임대료 부담까지 덩달아 커다.

넷째, 낮은 실업률도 안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실속이 없다. 지난 4년 동안의 일자리 증가 대부분은 파트타임 고용이나 공공부문 서비스 부문에서 생겨났다. 임금이 높고 안정성이 있는 생산 부문의 정규직 일자리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표상의 낮은 실업률과 달리 노동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고용 불안감은 여전히 크다. 많은 노동자들은 이민의 증가가 자기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이러한 믿음에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느끼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은 트럼프 쪽의 반이민 캠페인이 먹히는 토대를 제공했다.

다섯째, 기업들의 실적도 신통치 않다. 경제가 좋다는 얘기는 기업들이 충분하게 돈을 벌면서 투자와 고용도 늘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 가운데 ‘매그니피슨트 7’, 무기 제조회사, 곡물과 에너지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비금융 기업들의 수익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주식시장에서도 ‘매그니피슨트 7’ 기업을 제외하면 2021년 이후 주가가 전혀 오르지 않았다. ‘매그니피슨트 7’이란 미국의 빅테크 기업 일곱 개를 말하는 신조어인데, 우리나라에서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으로 개봉된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를 포함하는 ‘매그니피슨트 7’은 전체 주식시장 시가 총액의 30%를 차지한다. 현재 이 종목들이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결국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좋은 경제 지표는 월스리트, 거대 하이테크 기업, 전쟁 기업, 곡물 대기업, 기리고 이들 기업의 주식을 가진 소수 부유층의 얘기인 셈이다. 다수 시민은 그러한 경제 지표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표와 체감 경제의 괴리는 당연히 대선 투표 결과에도 반영되었다. 이번 대선의 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경제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유권자 69%는 트럼프에 투표했다. 그런데 경제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다수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 쪽일 가능성이 크다.

다수 시민의 삶을 힘들게 한 민주당의 경제정책 보수화

지표로 나타나는 현실과 시민들의 체감 경제가 다른 이유는 민주당이 겉으로 표방하는 정책과 달리 실질적으로는 보수적인 정책을 펴왔던 데서 찾을 수 있다.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민주당도 스스로 노동조합 강화,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 상향, 사회 서비스 확대, 불평등 축소와 같은 좀 더 진보적인 이슈를 지속적으로 던져왔다. 바이든은 노동조합 친화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 행진을 할 때 거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노동조합 조직화를 장려했고, 무역 정책을 수립할 때는 노동조합의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들었으며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인물을 연방 노동 위원에 임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 시기에 실질임금은 증가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민주당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민주당의 실제 경제 정책은 당이 내건 슬로건과 달리 보수적이었다. 민주당의 많은 경제정책들은 사회의 소수자, 약자, 빈곤층, 노동자보다 대기업, 자산가, 특히 금융자본에 혜택이 가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민주당은 시대 과제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별로 성공하지 못했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편 것도 아니었다. 민주당의 경제정책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측면은 아마 물가를 다루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가 문제는 최근의 경제 문제 가운데서도 핵심을 이룰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기도 하다. 당연하겠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물가 문제는 시민들의 관심사였고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바이든 정부에서 물가 문제가 떠오른 이유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전례 없이 높은 상승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물가 상승은 어쩔 수 없이 생긴 현상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정책적인 노력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변수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2023년 초에 열린 전미경제학회(AEA)에서 바이든 정부에서 물가가 상승한 이유를 분석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바이든 정부에서 나타난 물가 상승이 수요가 아니라 공급 때문에 생겼다고 주장했다. 물가가 수요 때문에 오른다는 주장에는 노동자들의 씀씀이가 크다는, 따라서 노동자들의 과소비를 탓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스티글리츠는 수요가 아니라 공급망의 붕괴 때문에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서 평균적인 물가가 올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공급망이 붕괴한 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놓여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과 나토의 전진 배치라는 배경 속에서 일어났다. 미국은 전쟁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시켰고, 이 전쟁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곡물회사나 에너지 기업은 가격 상승에 따른 큰 이익을 얻었다. 셰일 가스 과잉 투자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은 전쟁으로 단숨에 반전을 이뤘다. 이들 기업이 얻는 이익이 너무 커서 횡재세가 얘기될 정도였다. 기업의 이익 증가는 주가 상승으로 이어져 주주들도 큰 이익을 얻었다. 물론 무기 제조회사들과 그 주주들도 전쟁이 길어지면서 큰 이익을 얻었다.

무기회사 인수를 늘려나간 사모펀드(PEF)들도 전쟁에 따른 이익 배당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금융시장에 좋은 뉴스였다. 과거에는 전쟁이 금융시장에서 악재로 받아들여졌는데, 전쟁이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월스트리트는 전쟁을 싫어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사모펀드 등을 통해 무기회사들마저 금융시장에 편입되면서 이제 전쟁은 오히려 금융투자자들에게 호재로 받아들여졌다. 우크라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1000조 원가량의 재건 시장이 건설회사나 사모펀드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젤렌스키는 지난해 9월, 뉴욕을 찾아가서 블랙록 등 사모펀드들에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에서 계층별 분배에 미치는 효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정리할 수 있다. 곧, 우크라이나 전쟁은 곡물과 에너지 기업, 무기 제조 기업, 재건 기업 등과 그 주주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나아가 사모펀드 등을 통해 금융시장 전체에도 좋은 소식을 전달한다. 그러나 다수 시민들은 물가 상승에 따른 고통을 겪어야 한다. 거기에다 전쟁 비용에 따른 재정 지출의 증가는 교육, 교통, 사회 복지 등 공공 지출에 대한 양보 요구로 이어진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수 시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월스트리트와 극소수의 부유층을 살찌우는 분배정책이라 할 수 있다. 바이든은 그런 보수 정책을 지금까지 이어 왔고, 역설적이지만 트럼프는 전쟁 중단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미국 연준은 물가 상승에 대해 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앞서 스티글리츠가 얘기한 바와 같이 물가 상승의 원인이 공급 쪽에 있다면 그 해법은 금리 인상이나 신용 축소가 아니라 상품 공급을 확대하는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스티글리츠도 물가 상승 대책으로 재정 확대를 통해 공급 제약을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물론 물가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서둘러 전쟁을 끝내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준은 물가 문제의 해법을 물가 목표제를 내세우면서 금융시장을 옥죄는 방향에서 으려 했다. 그러한 방향의 정책은 고용을 축소시키고 불안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의 희생을 부른다. 연준은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금융시장 옥죄기를 통해 자본에 유리한 고용 환경을 만들려고 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칩스법(Chips Act)도 노동자보다는 자본의 이익에 치우쳐 있었다. 이 법의 목표는 기반시설 복구, 핵심산업 재건, 기후투자 확대, 기술 인력 양성 등을 통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삶을 개선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법으로 기후 투자, 핵심 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는 등 어느 정도의 목표하는 성과가 생겼다. 그러나 대규모로 투입된 자금이 기업에 대한 보조금 형태로 들어갔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는 별로 혜택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칩스법(Chips Act)의 혜택을 많이 받은 주에서 오히려 민주당이 표를 덜 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해리스의 경제 공약이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도 유의해서 짚어봐야 한다. 해리스는 공공의료보험 확대를 위한 금융거래세 도입, 법인세 인상, 식료품 가격 통제, 사회보장과 저소득층 지원 확대, 기회균등의 확대와 같은 다소 진보적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해리스 공약의 진보적인 색채가 엷어졌다, 해리스 캠프는 암호화폐를 규제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때문에 암호화폐 업계에서 후원금이 몰려들었다. 세금을 높이겠다는 약속이나 기업 규제 약속도 후퇴했다. 해리스 캠프 쪽은 진보적으로 보이는 의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뉴욕 타임스는 해리스 캠프가 월스트리트 친구들에게서 캠페인 전략과 정책 조언을 구한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리스가 노동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정책의 강조점을 미묘하게 옮겼다고 분석했다. 이는 해리스의 경제정책 공약이 보수 쪽으로 흐르는 것을 지적한 내용이다. 민주당은 온건하고 부유한 유권자에게 호소하여 얻는 표가 노동 계층에서 이탈하는 표보다 더 많을 것으로 계산했다. 이러한 전략은 사실 위험한 도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도박은 실패로 끝났다.

▲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하워드대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패배가 한국 민주당에 주는 교훈

2024년 미국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2022년 한국 민주당의 대선 패배와 닮은 점이 있다. 두 정당 모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내건 정책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내용의 것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정책은 내건 정책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고 보수 쪽으로 많이 기운 상태였다. 구호로 내건 정책과 실행 정책 사이의 괴리는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심드렁한 태도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대선 패배를 불렀다.

예컨대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정책, 물가 안정 목표에 기반한 연준의 금융정책 등은 보수적인 성격의 것이었고 기업 보조금을 중심으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칩스 법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정책들로 자산가, 금융자본가, 기업은 큰 이익을 얻었지만 다수 시민들의 삶은 힘들어졌다. 우리나라 민주당 집권 시기의 부동산 정책은 구호와 실질 내용이 다른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정부여당은 집값 안정 구호를 열심히 외쳤지만 실제 집행한 정책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예컨대 집값이 크게 오르던 무렵 당국은 부동산 담보대출 규제를 시행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담보대출 규모가 계속 증가했고 집값도 오름세를 지속했다. 낮은 금리는 산업 투자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산가격 상승만을 불러왔지만 중앙은행은 이를 바꾸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 민주당이든 한국 민주당이든 보수적인 정책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민주당 지지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정책이 펼쳐지면서 이들은 민주당에서 멀어져갔다. 미국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한국 대선에서도 집값 상승에 실망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언젠가 황운하 의원은 저학력, 저소득층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불평한 바 있다. 황 의원은 아마도 민주당이 열심히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 왜 그걸 몰라주느냐고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황 의원이 간과한 점은 집값 상승에서 보듯, 민주당의 정책이 저소득층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박지원 의원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경제 정책 면에서는 보수당과 민주당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게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민주당의 경제정책이 보수로 흐르면 대선 승리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편 캠페인 전략도 한국 민주당에 시사점을 준다. 이번 대선에서 해리스는 처음에는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중도 지향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미국판 중도층 확대 전략을 통해 해리스는 자기를 모든 계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후보로 내세우고자 했다. 해리스는 유대인 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에 입을 다물었지만 소수 민족 표를 의식해서 전쟁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얘기했다. 자본가, 자산가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기의 공약인 기업 규제를 말하지 않으면서도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회 보장의 확대를 주장했다. 모든 계층의 지지를 받겠다는 전략은 중도로 흐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전략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이번 대선은 보여주었다.

한국 민주당 내에도 '중도 견인론' 주장이 있다. 거대한 두 당의 지지자는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중도적인 캠페인을 벌여서 중도층을 끌어와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이 주장은 사실 과학적인 근거가 아니라 주먹구구에 기반한 것이다. 정말 중도 확장 전략이 유리한지 근거를 가지고 좀 더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미국 대선에 비춰보자면 ‘중도 견인론’은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오히려 자기 지지자들의 이익을 확실히 보장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튼튼하게 묶어 세우는 전략이 더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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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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