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투표함 잇단 화재…부정 투표 주장한 트럼프 '음모론'에 빌미?

바이든 집권 중 물가 상승으로 트럼프 지지 높아져…미 언론 "트럼프 관세·이민 공약 이행 땐 물가 더 올라"

대선을 약 일주일 앞둔 미국에서 잇단 투표함 화재가 발생해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해 온 선거 음모론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미국인들이 현 정부 아래 물가 상승에 불만을 표시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및 이민 제한 공약이 실현될 경우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AP> 통신, <뉴욕타임스>(NYT) , 미 ABC 방송에 따르면 28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미국 북서부의 인접한 두 주인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우편 투표함에서 잇달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기표가 완료된 상태의 투표용지 일부가 불탔다.

오리건주 포틀랜드 경찰은 이날 오전 3시30분께 화재 신고를 받아 대응했으며 해당 투표함에 발화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고 밝혔다. 30분 뒤인 오전 4시께 워싱턴주 밴쿠버의 한 우편 투표함에 불이 붙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고 밴쿠버 경찰은 투표함 옆에서 "의심스러운 장치"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두 사건이 연관됐다고 보고 감시 카메라에 포착된 포틀랜드 투표함 화재 직전 해당 투표함 옆에 차를 세운 한 차량을 쫓고 있다. 밴쿠버에선 앞서 8일에도 투표함 화재가 발생했다.

오리건과 워싱턴은 전면 우편 투표를 실시하는 주로 모든 주민에게 우편 투표 용지가 발송돼 주민들은 우편을 통해 투표 용지를 보내거나 인근 관공서 외부 등에 설치된 우편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어 투표할 수 있다.

이번 화재로 투표용지 수백 장이 훼손됐다. 오리건주 멀트노마 카운티는 이날 성명을 통해 불이 난 투표함 내부의 소화제가 작동해 3장의 투표용지만 훼손돼 투표지 봉투의 식별자를 통해 훼손된 투표용지 주인들에게 대체 투표용지를 발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워싱턴주 클라크 카운티 감사관 그렉 킴지는 투표함 내 소화제가 설치돼 있었음에도 화재로 인해 투표용지 수백 장이 불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투표함을 마지막으로 수거한 지난 26일 오전 11시 이후 해당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은 유권자는 선거국에 연락해 대체 투표용지를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킴지 감사관은 투표함 화재가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때 근거 없는 선거 사기 주장을 펼친 뒤 우편 투표함은 음모론의 주요 표적 중 하나가 돼 왔다. 투표함에 대량의 부정 투표 용지가 투입돼 승패가 뒤집혔다는 식이다.

미 NPR 방송에 따르면 극단주의와 허위 정보를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 전략대화연구소(ISD)의 맥드 리드 선거 담당 수석연구관리자는 "우편 투표함 뿐 아니라 선거 개표와 인증 체계 전체에 어떤 보안 조치가 취해지는지에 대해 많은 오해, 솔직히 말하면 거짓말이 만연하다"며 "이번 (투표함) 방화와 같은 작은 사건들이 향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강화하는 데 이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 땐 대선에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 CNN 방송과 SSRS가 지난 20~23일 등록 유권자를 대상으로 수행해 2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0%만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 때 결과에 승복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미국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경제 분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보다 더 신뢰한다고 답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 공약이 이행될 경우 물가 상승세가 더 두드러질 것으로 우려한다.

지난 4~7일 실시된 로이터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미국 성인 대상 공동 여론조사를 보면 등록 유권자의 70%가 다음 대통령이 경제 분야에서 생활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답했고 생활비 측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44%)의 계획이 해리스 부통령(38%)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등록 유권자의 92%는 경제 및 그들의 개인적 경제 상황이 이번 선거의 투표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기엔 물가가 낮았다며 조 바이든 정부를 공격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두 시기에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 전세계적 요인이 판이하게 달랐음을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임기 땐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가 남아 수요 및 가격 압력이 약했던 반면 바이든 정부 땐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뒤 봉쇄가 풀리며 수요가 급증했고 재정적 부양책이 이에 힘을 더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연료값 상승으로 전세계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치솟았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관세를 올리고 이민을 제한하는 공약을 실행할 경우 물가 상승이 유발될 것으로 본다. 실제로 미국 최대 자동차 부품 소매업체 중 하나인 오토존의 필립 다니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관세가 부과되면 우리는 관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자를 추방하고 이민을 제한하면 노동력이 줄어 임금이 오르고 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뿐만 아니라 특히 식품 가공, 농업, 건설 등 특정 분야에선 이주 노동자를 추방하면 그 자리에 미국 출신 노동자가 채용되는 게 아니라 업체가 생산을 줄여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 경제가 강한 소비 지출이 지속되고 일자리와 임금이 증가하며 실업률은 낮은 상태를 유지해 "모든 선진국의 부러움"을 받았음에도 미국인들은 물가 상승 탓에 바이든 정부 아래 경제 상황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고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는 미시간주 플린트에 사는 대학생 데빈 존스(20)가 인플레이션이 치솟아 부모님이 더 싼 집을 찾아 이사해야 했고 계란과 쇠고기 가격 상승은 "말도 안 되고" 오랜 숙원이었던 18살 생일 맞이 독일 여행 계획도 연기됐다고 불평하며 "트럼프 정부 땐 상황이 괜찮았다. 너무 비싸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우편 투표함이 불탔다. 오리건주 멀트노마 카운티 선거국이 기자회견에서 훼손된 상자를 공개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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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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