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음 청년'의 해법이 경쟁 지원?

[인권으로 읽는 세상] 한국사회 불평등의 현 주소지

"국민의힘은 청년의 힘이 되고 싶다."

지난 9월 24일 정부와 국민의힘이 '청년 취업지원 대책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총출동한 자리에서 단연 화두는 '쉬었음 청년'이었다. '쉬었음'은 취업자와 실업자를 제외한 비경제활동인구 중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막연히 쉬고 싶은 상태에 있는 사람'(통계청)을 지칭한다. 60대 이상을 제외하면 전 연령대 중 청년(만 15세~29세)의 쉬었음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작년부터 크게 증가했다. 청년의 쉬었음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주목받자 당정이 이에 대한 지원에 앞장서겠다고 한 것이다.

당정은 예산 증액으로 다양한 청년 취업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취약청년지원법'(가) 제정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청년들의 쉬었음 상태를 '예방'하고 '탈출'시키는 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당정이 강조한 대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 청년 세대의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까.

'쉬었음', 청년만의 문제인가

쉬었음 청년은 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문제인가. 실제 한 사람의 삶이 경제적 빈곤 및 사회적 고립․은둔 상태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에서 쉬었음 상태의 증가와 장기화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타당하다. 하지만 사회학자 신진욱이 저서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날카롭게 짚고 있는 것처럼, 어떤 사회문제가 특정한 세대의 문제로 치환될 때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바로 그 사회문제를 둘러싼 근본적인 구조다. 정치권이 '청년'을 선택적으로 호명하고 쉬었음 상태를 우려할 때 어떤 구조적 문제가 사라지는가?

정치권이 '청년'에 주목하는 동안 쉬었음 인구가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했으며, 한 해만 24.5만 명이 늘어나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인 260만 명에 근접했다는 사실은 가려진다. 직장을 구하지도 않고 직장을 원하지 않은 사람들이 260만 명인데, 가사와 육아, 통학, 연로, 심신장애 등의 이유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그냥 쉬었음'이 가장 많이 증가했는지도 알기 어렵다. 쉬었음은 이른바 '경제 허리'로 불리지만 이른 퇴직을 경험하고 재취업 일자리의 질이 낮은 중년층에게도 위기다.

111만 명으로 압도적이고 가장 큰 폭으로 쉬었음 인구가 늘어난 6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60대 이상은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정부가 고령층의 저소득 단기임시직을 계속 확대하며 전체 고용률을 높여온 구조를 고려하면 지금 60대 이상의 쉬었음 증가는 고령층 빈곤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외면하고 "원하면 언제든 다시 취업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고령층'이 증가한 셈"이라거나, 쉬었음 인구 증가를 "고용시장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계기로 보는 전향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한 보수언론의 주장은 황당하다.

보다 더 힘든 세대가 있으니 쉬었음 청년이 큰 폭으로 증가한 현실 자체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청년정책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미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의 삶을 옥죄는 지금, 쉬었음 상태의 '청년'에게만 적용 가능한 노동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모두가 놓인 공통의 구조로서 불안정 노동시장의 영향력을 보지 않는 한, 일자리 구조 및 특성이 청년을 비롯한 각 연령계층에 따라 고착화되어 온 양상을 직시하지 않는 한 불안사회의 불안정성이 해소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세대 문제로 치환된 불안정노동의 구조 정치적 효과

그럼에도 정치권이 끊임없이 "노동 개혁으로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 목표를 내세우며 쉬었음과 고립․은둔 청년을 호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안정노동 구조를 개혁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시장의 관점에서 이른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고임금과 높은 고용안정성'을 보다 더 공격적으로 유연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청년정책'의 핵심에 청년 세대의 다층적인 불안, 고통, 절망, 체념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있지 않다. 그 핵심에는 '기성세대 VS 청년세대'의 갈등과 대립 구도 속에서 '청년'을 박탈당하는 피해자, 이전 세대를 수혜 입은 특권자의 위치로 과장․왜곡하면서 얻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박권일이 반복해 강조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라는 사회변동과 개인의 생애주기'가 교차적으로 구조화한 청년 노동 불안정과 불평등 문제를 세대 간 갈등과 대립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해 왔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지난 10여 년 이상 세대 간 대립, 세대 내 성별 대립 등 '피해자들 간의 정치'를 활용해왔다. 신자유주의 불안정노동의 확산이 자신의 삶에 가져온 파산에 격분하는 청년 일부 계층을 바로 이 경합의 장에 주체로 등장시키는 데까지 이른 것이 바로 또 다른 정치적 효과일 것이다.

게다가 쉬었음 청년이 다층적인 지위를 막론한 '청년 일반'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쉬었음 청년 인구는 24.9만 명이었던 2016년 이래 2020년 44.8만 명까지 실제로 계속 증가해 왔다. 2년 동안 감소세를 보이던 수치는 2023년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올해 5.6만 명이 증가한 46만 명을 찍었다. 일부 청년에게 쉬었음은 재충전과 미래도약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쉬었음 청년의 증가를 숙박․음식점업에서 임시일용직으로 일한 20대 후반 남성이 주도했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떠올려보자. 쉬었음 상태가 '청년 일반'이 아니라 불안정노동으로 진입하고 불안정노동을 전전하며 노동시장 진입과 이탈을 반복하는 '특정한 청년 계층'의 문제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쉬었음 청년이 일자리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근로시간과 보수 등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족이며, 구직활동을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노동조건을 보장하는 '원하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청년 불안정노동의 생생한 단면이다.

청년 노동은 이미 저임금․비정규 일자리로 구조화되어 있고, 노동시장 진입과 노동 지속이 실질적인 소득 증가와 삶의 안정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속에서 청년 노동은 임시적이고 단기적인 취업과 장기화된 학습‧훈련을 반복적으로 오고가는 '요요(yo-yo) 이행'으로 대표돼왔다. 또한 자발-비자발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이직을 경험하거나 '직장 이동'의 방식보다 일자리를 확대 혹은 축소하는 방식으로 일을 경험하고 있다. 청년들이 놓인 불안정노동의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노동시장 진입 자체를 중심으로 한 고용․취업 지원 정책이 바로 그 청년 불안정노동 구조를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또한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다. 당정협의에서 그토록 강조한 '취업 지원'이 불안정노동의 지표인 쉬었음 상태의 예방과 탈출의 경로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 없는 희망회로가 될 수밖에 없다.

'청년 세대'에 대한 관심은 무용한가

그렇다면 우리가 '청년 세대'에 주목하고 '청년 문제'로 가시화된 사회적 요구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무용한가. 2021년 서울연구원은 청년 불평등의 특성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현재 청년 세대가 마주한 사회를 자산 불평등이 계속 심화되는 '장벽 사회'로 규정했다. 장벽사회, 절벽사회, 세습 중산층 사회 등 무엇이라 칭하든 현재 한국 사회 현실을 진단하는 언어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편 이후 지난 30여 년간 가속화된 경쟁과 세습자본주의를 지목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은 바로 한국 사회의 누적된 불평등과 시대적 모순을 압축적으로 겪고 있는 계층이자, 현재 시대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계층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는 지금의 '청년 세대'가 겪는 질곡의 핵심적인 배경 조건이다.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중소기업 정규직이 감소하고 비정규직이 증가한 반면 대기업 정규직 고용률은 정체됐다(2010년대 후반 급격하게 상승한 비정규직 비율, 정규직과의 임금차 이는 올해 8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노동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과 동시에 가구소득이 대학 진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져 왔고, 이는 노동시장 진입에서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이후로 세대 간 사회 이동성, 세대 내 소득 이동성, 일자리 지위 상승 가능성도 크게 감소했다. 부모․가족 배경은 교육 격차, 노동시장 진입 전후의 격차, 독립의 가능성과 주거 안정성 격차, 부동산 취득과 자산․부채 격차, 생애 안정망의 격차 등 '청년 삶 전반'의 불평등을 심화․양극화하는 핵심 조건이 됐다. 과거 '소득' 중심의 불평등만으로 더이상 청년 세대의 문제를 규정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최근 청년 세대를 마치 '능력주의'에 경도된 집단의 상징처럼 여기지만, 대다수 청년들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직업, 소득, 재산, 부동산, 학력․학벌과 문화자본이 자녀에게 이전되는 현상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지 않는다. 서울 청년에 한정된 불평등 인식조사지만, 부모의 지위보다 자신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또한 청년 10명 중 9명은 부모-자식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현상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현실은 사회적 인식 혹은 규정과는 반대다.

청년의 삶은 2000년대 이후 불안정노동으로 구조화된 저성장 시대를 개인이 더욱 치열한 학벌 갖추기와 노동시장 진입 경쟁을 통해서 돌파할 수 있다는 환상에 갇혀 있다. 또한 교육-노동-주거-가족형성까지 삶의 전망에 얽힌 세습자본주의 하의 불평등을 개인의 사회경제적인 독립․자립․안착 노력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는 강요에 갇혀 있기도 하다. 쉬었음 청년의 증가는 이러한 시대적 모순에 대한 개별 대응의 집합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 앞에 놓인 좁은 문이 이미 특정한 사람들의 출입만을 허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개인을 둘러싼 배경의 격차를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개인의 대응이 멈춰 서게 된 결과가 청년의 쉬었음인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이 쉬었음 청년을 두고 구조적 변화보다 쉬었음 상태를 벗어날 수 있도록 더 유연화된 일자리를 제공하며 경쟁을 지원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한도 초과' 상태의 청년들에게 쉼, 관계, 힐링을 공급하면서 불가능한 경쟁으로 계속 내모는 것을 사회구조의 개혁이라고 말할 순 없다. 지금 '청년 세대'로 집약된 문제를 넘어서는 것은 한국사회가 지난 30여 년 간 착실하게 밟아온 시간을 넘어서려는 전망 없이는 불가능하다. 청년운동의 부상은 "기존 사회가 굴러오던 방식대로는 계속해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대를 문제제기하면서 "이것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는 세력"을 만들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분투이기도 했다. 이를 기억한다면 다른 전망을 함께 그릴 책임이 청년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 또한 명확하다.

시대를 넘어서는 전망,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청년'에 대한 사회적 주목과 함께 왜곡되어 범람하는 '청년 담론'의 문제 역시 늘 함께 제기되어 왔다. 청년을 일면화하고 청년에게만 존재하는 고유한 불평등이 있는 것처럼 '사각지대'로 내모는 정치적 힘은 강력하다. '청년'이라는 세대를 사회변화의 주역으로 치켜세우면서도 여전히 고학력‧고학벌‧정규직‧고임금만이 '살만한 삶'이라고 규정해 온 정치적 힘 또한 마찬가지다. 두 방향 모두 청년 세대계층의 불평등 차원을 경제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상흔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을 기존과 같은 방식의 경제성장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이것이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일 수 없다는 점에서, 시대와 주체를 해석하고 다른 전망과 질서를 만들어가야 할 사회운동 또한 벗어나지 못한 패착은 아닐지 돌아보게 된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버티는 삶'이 해답일 수 없다면, '더 잘 경쟁할 수 있는 사회' 혹은 '비교우위를 얻을 수 있는 사회' 또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청년 세대의 시대적 조건을 풍자하는 유행어가 아니라, '청년'의 이름과 요구로 등장하는 사회구조적 변동의 모순, 다층적인 불평등의 심화, 사회재생산의 실패에 대해 더 많은 사회적 해석이 필요하다. 청년 집단에게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에 왜 저항하지 않느냐는 핀잔이 아니라, 청년 집단이 속한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말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개혁을 요구할 수 있는 시대적 조건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처럼 '청년들이 개만 사랑하고 애를 안 낳는다'고 비난하면서도 청년을 위한 기본계획․추가대책․특별대책 등을 남발하는 정치에 전망이 있을 리 없다. '우리의 목소리를 공부하라'고 외쳐온 청소년들과 '체념만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청년들이 대상 아닌 주체로 설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 그것이 새로운 질서의 단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통계청이 '9월 고용동향'을 발표한 16일 서울의 한 고용센터에서 구직자가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지난달 취업자 수가 14만여명 늘며 석 달째 증가 폭이 10만명대에 머물렀다. 청년층 '쉬었음'은 44개월 만에 최대 폭 늘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는 2천884만2천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4만4천명 증가했다. 산업별로는 건설업 일자리가 10만명 줄었다. 10차 산업 분류로 개정된 2013년 이후 역대 최대 폭 감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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