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교육에만 맡겨놓으면 딥페이크 사라질까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평소처럼 SNS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텔레그램 방을 통해 딥페이크 성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 22만 명이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22만 명'이라는 숫자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같은 단체의 동료 활동가는 '한국이 망한 날'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그 와중에 전국 지역·학교별 딥페이크 성범죄 제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피해 학교도 많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도 만들어졌는데, 전국에서 400곳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피해자일까 봐 불안에 떨었다. SNS에서 자신의 얼굴과 몸이 나온 사진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얼마 전 이 문제에 관해 단체 내에서 몇몇 활동가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사태를 겪으며 서로의 고민과 정부의 대책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중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 활동가도 참여했는데 이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한다. 그런데 대처방안이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기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저마다 다르더라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도 확실히 알 수 없고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임시방편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길을 다닐 때 주변을 스쳐가는 모르는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는 문장도 다시 떠올랐다.

성차별에 맞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만연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정부도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교육부는 지난 달 30일, 초·중·고에서 504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되었고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초·중·고 학생이 다수라고 밝혔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가담했다는 사실에 '촉법소년'의 기준을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학교 교육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크다. 성교육을 보완하고, 디지털 성범죄의 예방 등에 대해서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며 비슷한 디지털 성범죄가 반복되어왔다는 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거론하고 장관도 임명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 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및 성교육·디지털성범죄예방교육 예산을 삭감한 정부, 여성에 대한 폭력과 범죄에 관대하며 수사 의지도 처벌 의지도 약한 검경과 사법부, 페미니즘 교육과 성교육에 무관심한 교육당국은 오늘날 사태의 또 다른 원인 제공자이다. 이런 배경은 성찰하지 않고 청소년에 대한 형사 처벌이 약해서라거나 교육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식의 접근은 정말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그 의도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 맞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첫 번째로 교육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할 순 없더라도, 교육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떤 사회 문제가 불거지면 그것이 현재 사회에서 해결하기 버겁게 느껴질수록 그 해결을 교육에 맡기려 하며 특정한 교과목이나 교육을 학교에 밀어 넣는 경향이 있다. 정치와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생태환경교육을 하기를 바라는 식이다. 그러나 교육과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특정한 교육이 특정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인공지능에 관한 도덕이나 성범죄가 나쁘다는 식의 교육을 추가한다고 해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변화시키는 일은 필요하다. 교육이 범죄에 대한 즉각적 해결책은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무엇을 중시하는지 메시지를 전하고 문화를 바꾸어나가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치관을 합의해나간다는 데 교육의 의의가 있다. 성교육의 변화는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자 그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페미니즘·성평등의 가치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하다. 성교육이 생물학적 정보만이 아니라, 권리와 관계, 건강, 섹슈얼리티, 문화 등 성과 관련된 모든 경험과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오랜 요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사회 전반이 성차별적·반인권적일 때 교육만 바꾼다고 해서 차별과 폭력의 문제가 사라지거나 온전히 해결될 수도 없다.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보다 정치와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를 함께해야 하는 이유이다.

학교는 스쿨미투에서 무엇을 배웠나

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공간이고,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도 더 풍성해져야 한다. 학교는 많은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서 공적으로 문제를 다루고 피해자를 지원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인권침해나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그 문제제기에 구성원들이 연대할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공론화와 논의 또한 시작될 수 있다. 학교에서 신고·상담 창구를 운영해 피해자에 대한 법적·행정적·의료적 지원을 연결해야 하며, 피해자가 문제 해결 과정에 목소리 내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가 해결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도 같이 찾아갈 수 있을 때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응답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 이런 경험은 얼마나 가능한가? 정부가 N번방 사건 이후 배운 점이 없듯, 학교 역시 스쿨미투 이후 배운 점이 없어 보인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도 많은 학교가 이를 직면하고 같이 이야기하려 하기보다는, 묻어두고 조용히 넘어가기에 급급하며, 학생들이 문제제기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도 많은 학생이 자신이 겪은 부당한 상황을 참고 견디다 학교를 벗어나고서야, 자퇴를 하거나 졸업한 이후에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학교가 어떤 공간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문제와 어려움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 폭력과 차별에 문제제기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학교, 도움이 필요한 학교 구성원을 함께 지원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이 절실하다.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시작하자

이번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대처로는, 우선 가해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하고, 피해자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사람들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낼 수 있다는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소수의, 일부 가해자들의 범죄로만, 딥페이크 기술의 문제로만,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의 문제로만 다루면 안 된다. 이런 단편적인 접근은 그저 '악마화'된 한 개인만 도려내고 내쫓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뿌리 삼아, 여성혐오 및 성차별을 강화시키는 구조와 문화는 바뀌지 못한 채 또다시 다른 모습을 한 비슷한 사건이 반복될 것이다.

더구나 일각에서 이를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 등을 억압하고 성교육 도서를 검열하는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접근이다. 청소년들은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고, 사회적 문제나 폐단을 함께 겪는다. 청소년들과 학교를 따로 격리시키려고 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평등을, 인권을 지향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은 더 포괄적이고 총체적이어야 하며 우리는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비록 '딥페이크'가 우리 앞에 들이민 현실이 폐허 같을지라도, 산산조각이 나버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많은 것들이 무너진 곳에서 오히려 새로운 길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으며.

▲여성혐오폭력규탄공동행동은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앞 도로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엄벌 촉구' 시위 벌이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5천여명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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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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