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폭군방벌'론 vs 윤석열의 '국민가붕개'론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민교협2.0(민주평등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이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프레시안>에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는 '민교협의 정치시평'(2012년 9월~2018년 3월), '민교협의 시선'(2018년 3월~2021년 12월)의 맥을 잇는 동시에 민교협2.0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번 연재를 위해 민교협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약 30명의 전문가들을 필진으로 모셨습니다. 기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더해지는 시대에, 민교협2.0은 학술적이고 심도 있는 글을 통해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2024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김대중)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금년 1월초에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개최되었다. 또한 작년에 개봉된 민환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을 이번 추석 연휴에서야 T.V.로 시청하게 되었다. 김대중 관련 논문을 몇 편 작성한 터라 주요 내용을 안다고 생각했다.

역시 영화는 영화다.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이유를 찾고 설명하려는 연구자적 접근에 비해 영화는 상상력과 감성을 건드린다. 최근 <노회찬6411>(2021) 영화는 관습화된 진보를 넘어 생생하게 그의 삶과 정신을 오롯이 그려내며 노회찬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을 대중화시켰다. '길 위에 있던 김대중'을 성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민환기 감독의 차기작으로 예고된 "대통령 김대중"도 기대를 낳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의 망언처럼 한국 대통령은 '살해되거나 체포'되는 대통령이 아닌, 김대중은 한국인들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존경하는 대통령, 언제든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는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현 대통령에 대해 세간에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다. 때로는 이미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얘기조차 나돈다. 학창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던, 2013년 국정감사 자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그 사람. 공정과 상식을 외쳤던 그 사람. 대통령 후보 시절의 윤석열은 어디에도 없다. 법조인 출신으로서 기대되었던 정의, 상식 등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본이 되고 있는 헌법적 가치마저 길을 잃고 있다는 말들이 많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일반 시민이라 할 수 있는 그 부인이 있다. 이쯤 되니 한국 사회에 내일이 있는가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아시아적 가치'를 극복한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나?

19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 무렵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1986, 88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둘러싼 칭송이 쏟아져 나왔다. 아시아 네 마리 용, 즉 싱가포르, 대만, 한국, 홍콩의 산업화의 성공에 대한 이론적 개념 중 하나인 하버드대 중국학 교수인 두웨이밍(杜維明)의 '유교자본주의'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어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1923~2015) 전 총리는 자신을 포함한 박정희, 장개석 등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없는 개발독재를 통한 성공적 산업화을 낳은 결정적 요인으로 "아시아 가치(Asian Values)"를 Foreign Affairs 1994년 3~4월호에서 피력했다. 즉 리콴유는 네 나라가 유교의 사유재산제도와 유교적 공동체주의, 이타적 인간상, 교육열 등을 원동력으로 하여 국가주도적으로 산업화에 성공하되,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리콴유의 주장에서 이론의 거품을 거둬내고 날언어로 본다면, 민주주의적 가치와 이념이 없는 아시아 민중은 통치가 민주건 독재건 무관하게 제 밥그릇만 채워주면 지도자에 순종하며 충성을 바친다고 인식하는 일종의 '국민개돼지론'과 다름이 아니다. 한국에서 그러한 국민개돼지론은 2016년 교육부 한 고위직 공무원에 의해서 널리 회자되었다. 그 공무원은 파면과 복직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밉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는 '국민개돼지론'을 넘어 '국민가붕게(가재·붕어·자개)론'을 날렸다.

돌아보면 서구의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유사 '개돼지론'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로 정의내렸다. 중우정치(ochlocracy)라는 폐단을 낳는 기저에는 포퓰리즘(populism)이 작동한다. 즉 민중들은 이념이나 철학, 원칙보다는 자신들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해주는 선동가라면 좌우에 상관없이 쏠리고, 최고지도자가 그런 민중에 의해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선동정치를 해야 하므로 사실상 민주주의는 중우정치의 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한 때 민주주의의 이념형으로 꼽혔던 미국에도 영국 식민지 시절 펜실베니아지역의 총독였던 윌리엄 펜은 "민중들로 하여금 그들이 통치한다고 생각하게 하라. 그러면 그들이 통치받을 것이다"라고 하여 개돼지론, 중우정치를 통치술로 활용했다.

리콴유는 아시아의 민주화 없는 산업화를 '아시아적 가치'라는 말로 미화했다. 그런데 이를 정면으로 논박한 것이 Foreign Affairs 1994년 11~12월에 게재된 김대중의 '문화란 운명인가(Is Culture Destiny)?' 기고문이었다. 김대중은 유교 속에 담긴 혁명사상과 동학 속의 인내천 평등사상을 토대로 한국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문화적 전통이 존재하였음을 역설했다. 그가 예를 든 유교의 혁명사상은 대표적으로 맹자의 폭군방벌론(放伐論)이다. 폭군방벌론은 중국 주나라의 초기 기록인 <서경> 강고(康誥)편의 '천명수수설(天命收受設)'로부터 시작된다. 천명이란 하늘이 유덕자(有德者)에게 왕위를 임명한다는 뜻이고, 유덕자는 덕을 숭상하고 백성을 보살피는(경덕보민, 敬德保民) 자이며, 하늘은 그러한 유덕자와 경덕보민의 계약을 맺어 왕권을 주었다는 뜻이다. 맹자는 <서경> 강고(康誥)편에 의거하여 경덕보민의 의무를 저버린 폭군에 대해 백성은 '방벌긍정론(放伐肯定論)', 즉 두들겨 패서 내쫓을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고대 아시아에는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없었을지라도 혁명의 주체로서 '백성' 즉 민중이 존재했다. 평소에는 천명에 순종하듯 백성들은 신하로서 민중으로서 군주를 따랐으나 천명을 저버린 폭군에 대해서는 내쫓는 것을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 보았다. 김대중은 '선정을 않는 임금을 백성이 추방'하는 것이야말로 주권재민사상이며, 민주주의적 전통이라고 이해했다. 또한 김대중은 동학의 인내천사상에서도 주권재민사상이 맞닿아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백성, 민중)이 곧 하늘이므로 제폭구민(除暴救民), 즉 포악한 권력을 물리쳐 백성 스스로를 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정치 현장의 경험과 독서와 사유의 과정에 주권재민사상을 서구의 민주주의 사상만이 아닌 동양의 사상과 인내천 전통 속에서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민중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주권재민의식에서 발로하였고, 그 원동력으로 인해 식민과 장기 독재를 겪었던 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국민의 마음은 안중에 없는 정부, 누가 반국가세력인가?

아직도 한국이 분단과 냉전 문화를 극복하고 있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과 분단·냉전, 정치·군사적 종속, 심각한 사회불평등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 낸 것은 자랑할 만하다. 미국의 원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의 원조를 받았던 모든 나라들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원천으로서 한국 사회의 아래로부터의 힘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위정자들은 '잘살아보세'라는 명목 하에 밥그릇만 챙겨주면 민중들은 개돼지 취급을 받아도 순종할 것이라고 여겼다. 1895년의 갑오농민전쟁으로부터 항일의병투쟁과 항일투쟁, 해방 후 새로운 사회를 향한 혁명적 열정, 1960년 4월혁명, 1980년 서울의 봄과 5.18민주항쟁, 1987년 6월민주항쟁 저변에는 인간답게 살겠다는 민중들의 의지와 결기가 서려 있었다. 한 때 민주항쟁의 배경으로 서구식 민주주의 교육 변수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서구식 민주주의 교육과 민주주의 제도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개발독재의 폭력적 구조와 문화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과 학생·지식인들의 연대정신이 없었다면 시대적 전환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운동과 탄핵의 심판대 위에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주권재민사상을 내면화시켜온 민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5년 대통령 재임기간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시간이다. 5년간 선정을 통해 IMF당시 실추된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음을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간에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재임 기간 반환점을 돌고 있고 있는 이즈음, 정의와 상식은 실종되었다. 최저점을 갈아치우고 있는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비상계엄령' 소문을 무성하게 만들어 국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내려앉은 국격, 내팽개쳐진 국민 자존심 다시 세우겠다"고 큰 소리를 쳤으나, '일본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하는 현 정부에 의해 국가존엄성이나 국민적 자존심을 도난당하게 되었다. 또한 코로나19 이래 경제가 살아나던 일본과 달리 오히려 고공의 인플레이션과 급증하는 가계부채 등으로 파탄지경으로 치닫는 서민경제, 서울 도심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마다 공실이 급증하여 자영업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체감케 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공공연하게 '술 취한 선장'이라는 말이 도는 일상생활, 처가의 비리 문제와 관저 공사 비리 등 집안 안팎의 범법 사실을 틀어막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 누가 대통령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돌고 있는 상황에 국민의 마음과 처지는 안중에도 없는 정권에 국민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국민의 마음은커녕 건강과 생명권조차도 지켜내고 있지 못하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목표를 절대적인 것인 양 설정한 채, 상세하고 절차적 계획도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여, 의대 당국, 교수, 학생, 의사, 인턴, 간호사 등 의료인들의 관계를 갈등으로 치닫게 하여 의료체계를 문란시키고 있다. 또한 세계적 저출생시대, 백년대계의 청사진 속에서 장기간, 단계적 절차를 통해서 차분하게 진행되어야 할 초·중등 교육과정을 일거에 바꾸겠다며,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2025년부터 시행하겠다는 정책 앞에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 당황하고 있다. 그러한 '졸속도입과 시행'은 현장 교사들과 교육단체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고 있지만, 교육 당국의 태도는 대통령과 다르지 않게 '문제점은 거의 없다'며 막가파를 자처하고 있다. 대통령실로부터 각 정부 부처에 이르기까지 전반적 국정운영에 국민의 마음은 찾을 길이 없다.

지난 8·15기념사에서 현 대통령은 자신에 맞서는 이들을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 자신의 가치관과 국정운영방식을 따르라, 따르지 않으면 반국가세력이라고 부르는 꼴이다. 국방의 의무에 충실히 따라 군 입대하여 수해복구에 참여했던 청년이 허망하게 죽었으나, 진상을 은폐하고 있는 정부에게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반국가적 행위이고, 그런 사람이 반국가세력인가? 한반도의 평화를 꿈꾸며 전쟁 없는 평화의 길로 가자고 요청하고 노력하는 자들이 반국가세력인가? 거부권 남발로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배하고, 인권 없는 인권위원장, 노동없는 노동부장관을 임명하는 것을 비판하는 행위를 반국가적 행위인가? 오히려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국가가 어찌되건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것이야말로 반국가적 행위이자, 그런 사람들이 반국가세력이 아닌가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반국가세력이 아니다. 또한 개돼지도 아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국가를 염려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지도자를 비판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고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고자 하는 민주시민일뿐이다. 민주주의와 민주시민을 사랑했던 김대중. 그의 탄생 100년이 되는 2024년에 국민 모두 인간답고, 안전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꿈꿨던 김대중이 제기했던 맹자의 폭군방벌론과 동학의 인내천, 제폭구민 정신과 실천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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