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산재 신청 취소하라고, 시X놈아!"

[인력 아닌 인간입니다 ⑤] 그라인딩 작업 노동자 로이 아지트 씨 이야기·下

방글라데시에서 나고 자라 수도 다카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다 지난 2011년 한국에 취업한 로이 아지트 씨. 처음 한국 땅을 밟을 때만 해도 그는 2년만 일한 뒤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전편 보기 : "'더스트' 천국서 10개월 일하니 폐가 60%만 남았어요")

"처음에 생각했어요. '2년만 한국에(서) 일하다 돈 벌고 그걸로 나라에 갔다가 공무원 할 거야.'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2년 일하면 돈 너무 많아요. 방글라데시에 집 만들(살) 수 있어요(있었어요). 시골에 집 만들 수 있어요."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뇌출혈로 쓰러져 10년 와병 생활 끝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그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몸살감기를 앓다 병원의 잘못된 처치로 갑자기 사망했다. 경찰과 군 당국의 조사가 있었지만, 의사는 인맥과 재력으로 어머니의 의료사고를 무마시켰다.

"아버지 아파서 나 많이많이 어려웠어요. 공부도 어려웠어요. 다른 사람 아이들 가르쳐줘서(주면서) 공부했어요. 거기서 먹고 살고,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어요(싶었어요). 돈 없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치료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죽은 다음에 충격 받아서 시험을 잘 못 봤어요. 대학은 영어 학원 선생님하면서 다녔어요. 영어를 우리 말(벵골어)보다 잘해요."

한국에서 번 돈으로 집을 사고 공무원이 되려던 아지트 씨의 꿈은 무참히 깨졌다. 이주노동자로 경기도의 ○○공업에서 그라인딩 작업을 하다 간질성 폐질환을 얻은 뒤로는 말하고 걷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 됐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요. 지금 이거 나 병, 절대 안 나가는(낫는) 거예요. 40% (폐) 기능이 없어졌어요. 다른 것도 천천히 천천히 없어지고 있어요. 마지막에 다 없어지면 그때 (폐를) 바꿔야 돼요. 바꿀 때 10억 필요해요(하데요). 빨리 안 죽고 싶어요. 조금 더 살고 싶어요."

아지트 씨는 두 번의 산업재해 요양신청이 모두 기각돼 현재 '산재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를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났다. (☞소셜 펀치 : '산재 이주노동자에게 힘을' https://www.socialfunch.org/chance)

▲ 이주노동자 로이 아지트 씨는 "빨리 안 죽고 싶어요. 조금 더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의사와 공무원을 꿈꿨던 그에게 이제 남은 소원은 '조금이라도 더 사는 일'이다. ⓒ프레시안(이명선)

▲ 아지트 씨 핸드폰의 바탕화면은 '어머니'다. ⓒ프레시안(이명선)

"산재 신청 취소하라고, 시X놈아!"

아지트 씨는 ○○공업에서 일은 힘들었지만 회사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겼다고 했다. 이전 일터에 비해 욕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일 하면서도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자, 회사의 태도가 바뀌었다.

"너무 제일 마음 아팠어요.(울컥) 병원에서 (수술 전에) 보호자 한 사람… (보내 달라고 했는데 안 보내줬어요.) 그것 때문에 많이많이 마음 아팠어요. 여기 나 가족이 없어요. 그리고… (흐느낌)… 수술할 때 꼭 죽을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우느라 말 못함) …병원에서 (회사에) '한 사람 꼭 와야 돼요. 보내세요'(라고 했는데), 회사에서 안 보내서 마음, 너무 많이많이 아팠어요. 회사 사람들, 가족 같은 거잖아요. 조금 더 책임 있어야 돼요(책임감 가져야 해요).

그때 죽고 싶었어요. 폐 수술하고 죽을 가능성이 너무너무 있어요. 그때 나 너무너무 많이많이 울었어요.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다 나에게 '죽어요. 너무 아파요. 왜 회사에서 한 사람도 안 보냈어요?' (하고 물었어요). 회사에 방글라데시 사람 7~8명 있었어요. (회사 눈치 보느라) 무서워서 안 왔어요(못 왔어요)."

아지트 씨는 지난 2021년 12월 9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폐 수술을 받은 뒤 "환경적 노출 요인 배제 및 약제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회사 기숙사가 아닌 친구 집에 머물렀다.

병원은 회사뿐 아니라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에도 보호자 지원 요청을 했었다. 대사관 측은 보호자 대신 직원을 보내 아지트 씨의 상태를 살핀 뒤 '산재 요양신청이 가능하다'며 방법을 안내했다.

아지트 씨는 폐 수술 한 달 뒤인 2022년 1월 13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대사관에서 나에게 산재 신청하라고 했어요. 대사관에서 이거(산재) 신청해 줬어요. 다 해줬어요(도와줬어요). 수술할 때 많이 아파서 병원에서 대사관에도 한 사람 보내 달라고 했어요. 그 다음에 대사관에서 병원에 몇 번 왔다 갔다 했어요. (입원해 있는 동안) 세 번 왔어요."

아지트 씨가 산재 신청을 하자, 회사 측은 아지트 씨에게 '산재 신청을 취소하라'고 윽박질렀다. 대사관에도 전화해 '우리가 직접 산재 신청하겠다'며 회유책을 쓰는 동시에 일종의 '압박'을 행사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회사는 대사관 측에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의 취업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대사관에 몇 번 전화했어요. 이사님, 대사관에 전화해서 나쁜 행동도 많이많이 했어요. 대사관 사람에게 압박도 했어요.

처음에는 대사관에서 (산재) 취소하지 말라고 했어요. 대사관에서도 많이 파이팅(fighting; 분투)했어요. (그런데) 회사랑 몇 번 전화한 다음에 3월 정도 액티비티(activity; 활동) 없었어요. 몇 번 대사관에 물어봤어요. 그냥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일 하나도 안 해요(했어요)."

▲ 아지트 씨는 인터뷰 도중 감정이 북받치는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잊지 못했다. ⓒ프레시안(이명선)

아지트 씨는 5개월간 친구 집에 머물며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간질성 폐질환은 '낫는' 병이 아니라 꾸준히 치료하고 관리해야 하는 병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2022년 5월 23일 "현재 호전되고 있으나 여전히 간헐적 호흡곤란 및 근력 저하가 있으며, 폐기능 저하가 동반되어 있다"며 "2개월 정도 추가 휴직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밝혔다.

그는 회사로 돌아갔지만, "추가 휴직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회사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별도의 숙소에서 생활했다. 주거비는 들지 않았지만 식사를 비롯한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다.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방 청소만으로도 호흡이 불편해지곤 했다.

"병원에 한 달 전에 조금 빨리 갈 수 있으면(갔으면), 나 지금 이런 병 안 생길 수도 있었어요. 인생(이) 여기까지(인가), 알아야 되잖아요. 어떤 것 때문에 그런지. 그것 때문에(이유가 알고 싶어서) 산재 신청했어요. 그런데 이사님이 '왜 이거 (취소) 안 해'(라며) 많이많이 안 좋은 말 했어요. '취소해라. 취소해라.' 이사님, 너무너무 나쁜 말 하면서 산재 (신청) 취소(하라고 했어요). '시X놈아!' 그거 들리면 무서워요. 너무 큰 소리.

공단에서도 전화해서 말했어요. '산재 취소해 줘라.' (그래서) 이렇게 말해요(말했어요). '일을 못해서 돈도 없어서(월급이 안 나오니까) 가불해 달라고 하는데 안 해줬어요.' 그 다음에 공단에서 말했어요. '그러면 사장이랑 합의해서 돈 받아요. 산재(는) 취소해 주세요.'"

아지트 씨가 기댈 곳은 없었다.

아지트 씨에 따르면, ○○공업은 그가 산재 신청을 한 그해 4월과 5월, 그라인딩 작업 설비를 모두 교체했다. 그곳에서 일하다 간질성 폐질환을 얻은 '아지트'라는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023년 7월 5일 ○○공업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이미 회사가 그라인딩 설비를 교체한 뒤였다. (아지트 씨 산재 신청 및 소송 대리인단 제공)

'산재 드림팀'이 꾸려졌지만…

"회사에 나 세 번 네 번 가불해 달라고 했어요. '돈 빌려주세요' (했어요). 그런 것도 없었어요(가불해 주지 않았어요). 김달성 목사님 만나기 전에(전까지) 생활 너무 많이 어려웠어요. 목사님이랑 센터에서 생활비 (지원해) 줬어요."

김 목사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며 경기 북부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그는 지난 2020년 12월 영하 20도(℃)의 한파에 포천의 한 농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눈 속헹 씨의 죽음을 널리 알리는 한편 이주노동자 기숙사 문제의 공론화를 주도했다.

김 목사는 아지트 씨를 지난 2022년 7월쯤 만났다고 했다. 센터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아지트 씨가 극도의 생활고 속에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팔을 걷어붙였다.

재정적 도움과 산재 지원이 당면 과제였다. 김 목사는 SNS를 통해 아지트 씨의 사연을 알렸고, 후원자들이 하나 둘 생기더니 익명으로 '산재 싸움이 끝날 때까지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도 왔다. 뿐만 아니라 산재 지원을 위한 전문가(권동희 노무사)도 기꺼이 나섰다. 그렇게 아지트 씨의 산재 승인을 위한 '드림팀'이 꾸려졌다.

권 노무사는 '액티비티'가 멈춘 대사관 측으로부터 아지트 씨의 산재 인정 절차를 위한 대리인 자격부터 넘겨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아지트 씨 산재 인정을 위한 자료 보완 및 증거 확보에 나섰다. 아지트 씨의 폐질환과 업무 연관성을 위한 직업환경 전문가의 소견을 확보하는 한편, 공단의 현장 조사에도 동참했다.

아지트 씨도 다시 분투했다.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주변에 알렸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숨이 가쁘고 기침이 나기 시작하면 등까지 아팠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버텼다. 통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날도 있었다. 잠을 못 자면 숨 쉬는 게 더 힘들었다. 병원 신세를 다시 져야 했다.

"목사님이 하루에 두 번 세 번 많이많이 전화해요(했어요). 몸 상태는 어떤지 물었어요. 아버지 같았어요. 노무사님도 너무 많이 도와줬어요. 공장 왔다 갔다 하고(하면서) 많이많이 도와줬어요."

하지만 회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설비를 교체하며 아지트 씨가 일하던 흔적을 지우더니 재해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업은 지난 2022년 3월 30일 공단에 제출한 '보험가입자 의견서'에서 "(아지트 씨의 폐질환은) 저희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건강관리의 소홀함은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 ○○공업이 지난 2022년 3월 30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보험가입자 의견서'. 아지트 씨의 근태와 관련해 출근은 오전 8시 30분, 퇴근은 오후 5시 30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아지트 씨는 평일에는 오후 9~10시까지도 일했다고 했다. 토요일에만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 30분에 퇴근했다고 했다.(아지트 씨 산재 신청 및 소송 대리인단 제공)

두 번의 불승인, 그럼에도…

한두 달이 한 해 두 해가 됐다. 시간은 무심하게도 흘렀다. 공단이 내놓은 산재 심사 결과도 무심했다. 공단은 지난 4월 15일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아지트 씨가 산재 신청을 한 지 2년이나 지나 나온 결과였다. 이에 아지트 씨는 지난 5월 13일 고용노동부에 재심사를 청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또 기각이었다.

고용노동부는 그러나 지난달 19일 아지트 씨의 산재 신청을 기각하면서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소수 의견으로 "업무와 상병 간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또 "(청구인이) 재해사업장에서 분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도 했다.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어요. 아지트 건은 정부가 자본과 기업의 편에 섰을 때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부가 자본의 편에 서는 한, 이주노동자 문제는 개선되지 않습니다. 개선될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아요."(김달성 목사)

두 번의 산재 불승인으로 ○○공업과의 관계도 끊어진 지금, 아지트 씨는 E-9 비자가 아닌 G-1 비자로 한국에 체류 중이다. 거주지도 회사의 숙소가 아닌 이태원의 한 교회 쉼터로 옮겼다.

"지금 있는 보성교회, 거기 다 사람들 많이많이 좋아해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있기 때문에 나 지금 어려운 거 많이 생각 안 나요. 거기 목사님, 그 다음에 형제자매들 다 고마워요."

▲ 아지트 씨는 한국에서의 좋은 점으로 '사람'을 꼽았다. 한국은 그를 기계와 같은 '인력'으로 대했지만 그는 사람이 좋아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다. ⓒ프레시안(이명선)

산재 신청이 두 차례나 기각됐지만, 아지트 씨는 다시 일어섰다. 그는 지난달 29일 법원에 '공단과 고용노동부가 내린 산재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에는 이주노동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법률 지원을 해온 최정규·이성엽·임한결·조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들이 나섰다.

최 변호사는 "산재 심사처럼 이번에도 긴 과정이 될 수 있다"며 건강보험 없이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아지트 씨의 재정 상황부터 걱정했다.

그는 "산재 심사 및 소송 과정에서 G-1 기타 비자로 전환된 이주노동자의 경우 고용관계 종결로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지위가 해제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병원비를 직접 부담해야 한다"며 "지역가입자로 전환해 건강보험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지트 씨가 상담 중 눈물로 호소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어떤 소송이든 다 이겨야 한다는 각오로 임하지만 이번 소송만큼은 반드시 이기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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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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