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트' 천국서 10개월 일하니 폐가 60%만 남았어요"

[인력 아닌 인간입니다 ④] 그라인딩 작업 노동자 로이 아지트 씨 이야기·上

"2011년부터 한국에 왔어요. 10년 넘게 살았어요. 폐 안 좋은 증상 없었어요. 2021년에 ○○공업 들어가기 전에 건강검진했어요. 그것도 괜찮아요. 그런데 5~6개월 일한 다음에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어요, 폐. 이거(간질성 폐질환) 나 ○○공업에서 생겼어요. 큰 병 생기기 전에 증상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조금도 없었어요. 한국에서 10년 (생활했지만) 병원도 (한번) 안 갔어요.

○○공업에서 이거 생긴 다음에 병원 가고 싶었어요. 조금도 못 걸어요. 숨 쉬기 힘들어요. 계단도 올라가기 힘들어요. 중간에 한 번 쉬어야 해요. 병원 가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 보냈어요. 빨리 병원 갔으면 이거 안 생길 수도 있었어요. (폐 기능) 40% 없어졌잖아요. 60%도 없어질 수 있어요. 이거 다 생각하고 칭차(참작)해주세요."

외국인등록번호 820605-5******의 로이 아지트(U ROY AJIT) 씨는 지난 8월 23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들 앞에서 최후 진술을 했다. 일 분 남짓이었다. 그 일 분에는 아지트 씨가 살아온 사십 평생과 앞으로 살고 싶은 사십 년 모두가 걸려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러나 아지트 씨의 구조 요청을 외면했다. 지난 4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요양 불승인 처분을 내린 데 이어 지난달 19일 고용노동부도 산재 요양 신청을 불승인했다. 지난 2021년 12월 폐질환 수술을 받은 뒤 3년 동안 분투했지만, 결과는 다시 벼랑 끝이었다.

아지트 씨를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났다. 그의 세 번째 분투가 될 '산재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도 함께했다. 최 변호사는 이날 인터뷰 직전 전자소송으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아지트 씨는 인터뷰 후 최 변호사에게 건네받은 '소장 접수 증명원'을 가지고 경기도 평택에 있는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산재 신청 과정 중 받은 G-1 기타 비자의 체류기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가 급했고 하루가 아쉬웠다.

아지트 씨에게 체류기간 연장 신청만큼이나 다급한 일은 또 있다. 다음 달 병원 정기검진 비용을 마련하는 일이다. 고용허가제 E-9 비전문취업 비자에 따른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혜택이 끝나고 처음 받는 정기 검진이다. 피 검사와 폐 MRI 등 기본적인 검사에만 100만 원 이상의 병원비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소셜 펀치 : '산재 이주노동자에게 힘을' https://www.socialfunch.org/chance)

▲ 방글라데시에서 온 로이 아지트 씨는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중 폐가 점점 굳어지는 병, 간질성 폐질환을 얻어 수술까지 했다. 두 번의 산업재해 요양신청이 모두 기각된 지금 '산재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이명선)

"숨 쉬는 게 어려워요. 잠도 못 자요…'더스트' 때문이래요"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 노동자 아지트 씨는 폐가 점점 굳어가는 병, 간질성 폐질환(interstitial lung disease; ILD)을 앓고 있다. 그의 폐는 전체의 60%만 기능한다. 숨 가쁨 외에도 체내 산소 부족으로 인한 두통과 피로감이 늘 따라붙는다.

그는 매일 2~3시간씩 걷는다고 했다. 숨이 차도 꾸준한 운동을 통해 폐 기능을 활성화해야 폐가 굳어가는 걸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

"계속 맨날 운동 많이 해요. 운동하면 (숨이) 좀 차요. 그런데 해야 해요. 그렇게 하면 살 수 있어요. 운동 안 하면 살 수 없어요. 숨 (쉬는 게) 더 어려워요. 잠도 못 자요."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에 따르면, 간질성 폐질환은 호흡곤란, 기침, 피로감, 무력감 같은 증상을 동반하며 때로는 급격한 호흡부전에 빠지기도 한다. 치료는 "직업성·환경성 간질성폐질환의 경우 원인의 회피와 대증치료가 주가 되"며 "간질성 폐질환의 종류에 관계없이 이를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폐 이식이지만, 공여자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장기 생존율 또한 다른 장기 이식에 비해 높지 않다(5년 생존율, 65.5%).

아지트 씨는 지난 2021년 12월 9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폐 수술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아픈 이유, 수술까지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닥터(doctor)가 '더스트(dust)' 때문"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아지트 씨가 수술 후 퇴원하면서 받은 진단서에는 "상기 환자는 최근 발생한 호흡곤란으로 본원 내원하였고, 2021.12.09 흉강경을 이용한 폐 조직검사 상 분진(dust)에 의한 간질성 폐질환 진단 받았습니다"라고 돼있다. 간질성 폐질환의 경우 분진이 원인인 경우가 많지만, 인과관계를 특정할 수 없어 일반적으로 '상세불명의 간질성 폐질환'으로 분류된다.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는 아지트 씨의 질병과 업무 연관성에 대해 "개인적 위험요인에 의해 질병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낮다"며 "여러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량은 비록 10개월이라는 기간이지만 면마스크만 쓰고 환기가 거의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고농도의 유해인자에 노출되었다는 점에서 질병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고 봤다(산재 요양신청서 첨부 내용).

▲ 아지트 씨가 공장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 온통 '더스트(dust)' 천지다.(본인 제공)

"너, 거지 사람! 네 돈으로 마스크 사"

아지트 씨는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기 10개월 전인 2021년 2월부터 경기도의 한 농기계 생산업체인 ○○공업에서 그라인딩(철판 표면이나 모서리 연마) 및 쇼트(철판 표면의 녹이나 기름 제거) 작업 등을 했다. 공장 2층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평일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9~10시까지, 토요일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일했다. 점심시간은 낮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주어졌지만, 저녁시간은 30분에 불과했다.

그는 그라인딩 작업이 처음이었다. 출근 첫날 다른 작업을 하는 중국 동포가 2~3분 설명해준 게 전부라고 했다. 폐질환 진단 전 9개월 동안 그라인딩 및 쇼트 작업을 혼자 도맡다시피 했다. 사포로 철 표면을 문지를 때면 회색 쇳가루가 작업장 바닥을 뒤덮었다. 분진으로 가득찬 집진기와 실린더 청소도 그의 몫이었다. '더스트' 천지였다.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무거운 거 계속 걸고(올리고) 내려야(내리고) 해요. 원래 네 다섯 명이 했는데, 혼자 했어요. 그라인딩 일, 먼지 먹는 일, 내가 70~80% 했어요. 그래서 회사에서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막상 산재 조사 오니까 반장님이 '5% 정도만 일했다'고 했어요. 집진기 청소도 완전히 깨끗하게 해놨어요."

그라인딩 및 쇼트 작업을 하거나 집진기를 청소할 때, 그리고 종종 시너를 뿌리는 일(도색 작업의 일종)을 할 때도 복장은 똑같았다. 그날 아침에 입고 나온 티셔츠와 바지에 빨간 반코팅 목장갑, 천 마스크 또는 일회용 마스크가 전부였다.

"그냥 일반 마스크만 썼어요. 3개월 4개월 일한 다음에 기침 조금씩 나올 때 제가 반장님에게 마스크 바꿔달라고 했는데, 안 바꿔줬어요. 그 다음에 욕했어요. 모욕했어요. '이걸로 해. 못하면 다른 데 가. 너(네) 돈으로 사. 너, 거지 사람!' 이렇게 말했어요."

▲ 아지트 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면서 제출한 마스크.(본인 제공)

먼지 먹는 일을 70~80% 도맡아 하고, '거지 사람'이라는 인격적 모독만 당한 게 아니다. 눈에 쇳조각이 들어가고 손을 스무 바늘이나 꿰매는 등 안전 장비 미비로 인한 부상이 잇달았지만 회사는 모르쇠하거나 치료비 몇 푼 주는 것으로 끝냈다.

"처음에 안경도 없었어요. 눈 한 번 다쳤어요. 눈 다친 다음에 안경 줬어요. 눈 너무 많이 다쳤어요. 병원에 갔다가(갔는데) 쇠 (눈) 안에 들어갔어요(들어갔다고 했어요). 기계로 꺼냈어요. 치료비도 내가 냈어요. 회사에 (치료비) 신청했는데 안 줬어요.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여기 너무 많이 다쳤어요. 손 여기에서 여기까지. (물건이) 거기 떨어져서 많이많이 다쳤어요. 근데 치료비만 줬어요. 여기서 여기까지(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서 손목까지를 가리키며) 20바늘 꿰맸어요. (두 손가락 사이를 꼬집으며) 아직도 여기 (감각이) 없어요."

철과 같은 금속 제련이 상품화되기 전 마지막 단계에 속하는 그라인더 작업에는 안전모, 안전화, 가죽장갑, 고글, 긴 소매의 작업복, 귀마개 또는 귀덥개, 보안면, 보안경 등의 보호장구를 갖춰야 한다. 머리, 얼굴, 눈, 손 등에 상해를 입을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2조(보호구의 지급 등)에는 '사업주가 작업 조건에 맞는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회사에 아지트 씨는 인간이 아닌 '인력(人力)'이었다. 그라인더나 실린더 같은 기계처럼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했다. 아지트 씨가 회사를 상대로 산재 신청을 하자, 회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가 하던 일을 기계로 대체했다. '더스트' 천지였던 곳에 더는 분진이 날리지 않았다.(☞다음에 계속)

▲ 아지트 씨와 인터뷰를 한 지난 9월 26일은 그의 비자 만료 하루 전날이었다. ⓒ프레시안(이명선)

▲ 아지트 씨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경기도 평택에 있는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이동했다. ⓒ프레시안(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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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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