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논쟁의 허점
예정대로라면 내년 1월부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시행된다. 2020년 말에 법이 통과된 지 5년 만이다. 법 통과 당시의 시행 예정 시기는 2023년이었지만 한 차례 연기되어 2년이 늦춰졌다. 시행을 얼마 앞둔 이 세제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여당은 여야 합의로 만든, 그리고 아직 시행에 들어가지도 않은 금융투자세를 아예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금융투자세를 유예하거나 완화하자는 쪽과 원안대로 즉시 시행하자는 쪽이 나뉘어 치열한 당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성격이 좀 불분명한 한 단체는 금융투자세 폐지를 내세우면서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한다. 금투세는 금융투자소득 기준으로 많아야 상위 1% 정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금투세가 주식 거래 결정에 주는 영향의 정도는 매우 작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주식 투자자들이 주식 매매를 결정할 때 세금보다는 주식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전망에 압도적인 우위를 두기 때문이다. 또한 정말로 금투세 때문에 주식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확실하게 예상된다면 투자자들은 '풋 옵션'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주가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금투세를 반대한다는 주장은 황당하다. 그러한 주장을 내걸고 금투세 반대 집회를 한다는 것은 더욱 황당하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과 같은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하여 얻은 소득(양도, 환매 등)에 세금을 매기자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제안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어딘지 어색하고 비정상적이다. 안타까운 점은 금투세 논쟁이 본류가 아니라 지류라는 점이다. 무슨 얘기인가? 금투세 도입은 증권거래세 폐지와 패키지로 묶인 제안이다. 이 둘 가운데 앞으로 자본시장에 진정으로 큰 영향을 줄 사안은 사실은 금투세 도입이라기보다는 증권거래세 폐지이다. 그런 면에서 논쟁의 중심에는 증권거래세 폐지 문제가 놓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이 문제보다 금투세 도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증권거래세에 대한 논쟁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금투세 도입과 증권거래세 폐지가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전개에 어떤 함의를 가질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패키지를 마련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와 증권업계 이해에 휘둘린 증권거래세 폐지
증권거래세 폐지와 금투세 도입의 공식화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 6월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금융투자 활성화 및 과세 합리화를 위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에서 이뤄진다. 물론 둘 가운데 핵심은 증권거래세의 폐지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기획재정부의 발표 내용이 증권업계(외국인 투자자, 국내 기관투자자를 포함하여)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고 업계가 바라는 핵심 요구사항은 증권거래세의 폐지였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오래전부터 증권거래세의 인하, 나아가 폐지를 요구해 오던 터였다. 이러한 요구가 2010년대 들어서면 매우 강해진다. 거기에는 증권 거래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정이 놓여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미국에서 유행한 고빈도 거래의 세계적인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미리 짜놓은 논리 구조(알고리즘)에 따라 주식, 파생상품, 외환 등을 자동으로 거래하는 방식이 유행한다. 알고리즘을 이용한 거래 방식의 하나가 고빈도 매매(High Frequency Trading·HFT)인데, 이것이 현대 증권거래의 풍경을 생소한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자본시장연구원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고빈도 매매에서는 주문의 전달과 체결이 1초에도 수백 번이 이뤄진다. 이 거래를 위해서는 정교한 자동화 프로그램, 고속 전용선,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하다. 주식을 보유하는 기간도 매우 짧은데, 대체로 장 마감 전에 주식을 모두 처분한다.
이러한 거래 방식이 유행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환경 변화가 있었다. 먼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서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2000년에 닷컴 주식의 버블이 붕괴하고 거기에다 9.11테러까지 발생하자 미국은 금리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낮추고 대출 조건도 완화했다. 투자자들은 투자 기회만 발견한다면 얼마든지 돈을 빌려서 자산 시장에서 투자할 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른바 "양적 완화" 덕분에 빌린 돈으로 자산 투자를 하기가 더욱 쉬워졌다. 그러나 자산 투자가 쉬워진다는 것은 자산 투자자가 늘어난다는 것, 따라서 경쟁이 심해져서 수익을 내기도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조건에서 투자자들은 티끌 모아 태산 격으로 잦은 거래를 통해 이익을 조금씩 모아가자는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거래 기법을 발전시켰다. 증권시장에서는 저평가된 종목을 매수하여 오랫동안 보유하는 "가치투자"가 시들해지는 대신 기업의 가치에 상관없이 단기의 주가 움직임을 살피면서 인공지능(AI) 기반의 알고리즘을 이용한 거래 방식으로 순식간에 차익을 얻는 투자가 유행했다. 거대한 금융 데이터의 이용 가능성과 거래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의 성능 개선은 이러한 방식의 투자를 뒷받침했다.
고빈도 매매 기법은 헤지펀드, 사모펀드, 뮤추얼펀드와 같은 전문 투자기관이 주로 활용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고빈도 매매 프로그램, 예컨대 예스트레이더(YesTrader), 사이보스트레이더(CybosTrader), 메타트레이더(MetaTrader) 등이 개발되면서 그 활용 대상이 더욱 넓어졌다. 이리하여 알고리즘 기반의 고빈도 매매는 미국과 유럽에서 크게 증가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전체 거래에서 고빈도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은 50~60% 수준, 유럽은 50% 수준에 이른다. 2019년의 증권거래세법 개정안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이 비율이 2018년 기준으로 60% 수준이다.
미국에서 발전한 고빈도 매매는 아시아에 진출한 미국인 투자자들에 의해 이들 국가에서도 확산한다. 미국인 투자자들은 금리 인하와 대출조건 완화에 따라 대외 투자를 늘려 나간다. 양적완화로 세계시장에 과잉 공급된 달러 자금의 많은 부분은 먼저 조세회피지역인 오프 쇼어 금융센터에 축적된다. 미국 연준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시기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비거주자 보유의 달러자산 잔고는 카리브해 금융센터가 41.1%, 영국이 22.9%를 차지하는데, 이런 곳들은 조세회피지역이다. 이러한 오프 쇼어 국제금융센터는 달러를 글로벌한 규모로 집적한 다음 각국에 다시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각국으로 분배된 자본은 그 나라에서도 알고리즘 매매를 추구한다. 올해 한국증권학회지에 실린 "외국인 주도세력의 투자전략 변화: 가치투자에서 고빈도 알고리즘"이라는 논문의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보자. "(Flash Crash라는 주가폭락 사건 이후-인용자)미국의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에 대한 규제 강화와 시장 포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 때문에 관련 회사들이 싱가포르, 일본 등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자의 아시아태평양 임원들과 면담한 결과 전 세계 많은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 회사들이 한국 등 신흥 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묘사는 알고리즘 매매가 미국에서 주변국으로 어떻게 확산하는가를 보여준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빈도 매매가 증가한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자들도 가치투자 대신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2009년 3월 주문체결시스템이 EXTURE로 교체되면서 고빈도 매매를 할 수 있는 시스템 환경이 구축된다. 위에서 언급한 논문은 우리나라 고빈도 매매의 증가 현황을 보여준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2005년부터 2022년에 걸친 기간을 5개 구간으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했는데 2012년~2016년 구간부터 외국인들의 투자 행태가 가치투자에서 고빈도 매매 중심의 투자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고빈도 매매의 걸림돌은 증권거래세이다. 약간의 시세 차익을 노리는 "단타" 매매에서 거래세를 넘어서는 수익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거래세를 물지 않는 분야인 파생상품,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주로 고빈도 매매가 이뤄졌다. 2015년에는 대형증권사 대다수가 거래세를 면제받는데, 시장조성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떠안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거래에 세금을 면제해 주자는 이유에서였다. 증권사에 증권거래세가 면제되면서 증권사 자기 계정 중심의 고빈도 매매가 늘어나기도 한다.
증권사들로서는 사모펀드나 헤지펀드 등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증권거래세의 폐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증권거래세가 없어야 본격적으로 고빈도 매매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거래세를 인하하거나 폐지하면 거래량 증가에 따른 새로운 이윤 원천이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미국에서 고빈도 매매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거래량이 폭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뉴욕증권거래소의 경우 일일 평균 주식거래량이 2005년의 21억 주에서 2009년에는 59억 주로 늘어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거래량의 증가는 증권회사의 수익 증가로 이어진다. 이리하여 고빈도 매매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외국계 사모펀드나 헤지펀드,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래 행태를 모방하려 한 국내 기관투자자들, 고빈도 매매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려고 한 증권회사들, 이들의 이해와 엮여 있는 보수 정당, 보수 경제신문 사이에는 이심전심으로 증권거래세 폐지 동맹이 형성되었다.
증권거래세 폐지 동맹의 요구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먼저 기업들의 대변기구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증권거래세 폐지에 앞장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16년에 "금융산업의 제도 애로와 개선방안 건의"를 통해 증권거래세 폐지를 건의 형식을 빌려 요구했다. 미국과 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들은 거래세를 물리지 않고 있으며, 중국과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가 과세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세율이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상공회의소는 특히 투자자가 손해를 보고 파는 경우까지 거래세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증권거래세의 세율만이라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경제신문과 보수 언론에는 갑자기 증권거래세 폐지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자본시장연구원도 거래세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냈다.
증권거래세 폐지 동맹은 구체적으로 법 개정 요구에 나섰다. 집권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11월에 "자본시장활성화 특별위윈회"를 구성하여 이에 대응했는데, 10개월 동안 활동을 벌였다. 증권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금융투자협회는 2019년 1월에 집권 여당 대표와 간담회를 갖고 증권거래세 폐지와 금투세 도입을 묶음으로 제안했다. 특위는 출범 6개월 만에 증권거래세 인하를 수용하면서, 23년 동안 요지부동이던 증권거래세를 성공적으로 낮추었다고 자화자찬했다. 또한 특위는 2019년 9월 초에 "기로에 선 한국경제 자본시장에서 길을 찾다"라는 심포지엄을 개최해서 증권거래세 인하의 정당성을 홍보했다. 같은 달 말에는 특위 위원장이던 최운열 의원실과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 주최, 금융투자협회와 자본시장연구원 후원으로 "증권거래세 폐지 후 자본시장 과세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하여 증권거래세 폐지가 여야 합의에 의해 이뤄진 것임을 부각시켰다. 이렇게 해서 다음 해 6월에 증권거래세 폐지, 금투세 도입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정리된 것이다.
증권거래세 폐지 동맹의 생색내기용 금투세 도입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증권거래세 폐지 동맹이 영리하게도 증권거래세 폐지만을 주장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증권거래세의 폐지와 금투세의 도입을 패키지로 묶어서 제안했다. 사실 금투세 도입은 정부나 여당보다 증권거래세 폐지 동맹이 먼저 주장했다. 증권거래세 폐지만을 주장해서는 이를 관철해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들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내주어야 한다는 지혜를 이들은 모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 유관기관,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포함된 31개 기관이 참여하여 설립한 자본시장연구원은 주식 거래에 대한 양도소득세의 확대와 증권거래세 인하의 병행 추진을 주문하는 보고서를 냈다. 금융투자협회의 세제지원부장은 부동산의 경우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것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면서 주식 투자로 이익을 내더라도 마찬가지로 돈을 번 사람이 차익에 대해 양도세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금융투자협회가 단순하게 증권거래세만 없애 달라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곧, 금융투자협회는 증권거래세 폐지와 아울러 금투세의 도입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거래세 폐지 동맹이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였다. 증권거래세 폐지 법안을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은 증권거래세 폐지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의 기본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신문을 포함한 보수 언론들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너무 당연한 주장이 이때는 전혀 엉뚱하게 활용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거래세 폐지, 금투세 도입이라는 패키지가 완성되었다. 증권거래세 폐지 동맹은 금투세 도입을 주장했지만 그것이 기관투자자에게는 부과되지 않도록 하는 빈틈없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증권거래세 폐지, 금투세 도입 패키지는 사모펀드나 헤지펀드 중심의 외국자본, 국내의 기관투자자들, 그리고 증권업계의 이해에 편향된 성격을 갖는다. 이 패키지로 기관투자자들은 증권거래세 인하 혜택은 고스란히 누리면서도 금투세 적용 대상에서는 아예 제외된다. 외국자본도 증권거래세를 면제받지만 이중과세 협약에 따라 금투세 부과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증권사들은 고빈도 매매의 걸림돌이었던 증권거래세가 폐지됨으로써 다양한 매매 전략을 개발하여 거래량을 늘릴 수 있게 된다. 반면 정부는 증권거래세에 비해 훨씬 쪼그라든 규모의 금투세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증권거래세 가운데 농특세는 남는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일지 모르지만 이것도 꼭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증권거래세가 폐지되면 증권거래세 폐지 동맹은 이어서 농특세 폐지에 달라붙을 것이다. 증권거래세 폐지 뒤의 농특세 폐지 요구는 정해진 수순이다. 예를 들어 "폐지 시한 20년 넘긴 시대착오적 농특세, 존치 이유 없다"는 <매일경제> 신문의 2024년 5월 12일자 사설, "금투세 시행하려면 농특세 담긴 거래세부터 정리하라"는 <조선비즈>의 2024년 8월 12일 기사가 이를 증명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폐지가 확정되기 전인 2019년에 이미 자본시장 포커스 2019-08호에서 "주식양도세의 대안으로 도입된 증권거래세는 양도소득세 과세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유지할 명분이 점차 약화하고, 부과근거 자체가 불분명한 농어촌특별세도 마찬가지이다"라는 보고서를 쓰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해 온 금융거래세
증권거래세 폐지론자들이 내세운 논리는 과세체계의 합리화이다. 곧, 증권거래세가 불합리한 조세이기 때문에 이를 폐기하고 합리적인 소득세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조세는 정책 목적에 따라 소득에 매길 수 있고 거래에 매길 수도 있다. 거래에 세금을 매긴다고 해서 그것이 불합리할 이유는 없다. 다만 상품 거래세라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조세를 더 많이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불합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증권거래세에는 그런 면이 없다. 증권거래세는 사실 오랫동안 진보활동가들이 요구해온 의제이다.
증권거래에 대한 과세를 포함한 금융거래세는 존 메이나드 케인스라는 이름을 떼어 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케인스는 1936년에 출판한 <일반 이론>에서 증권거래세 아이디어를 꺼냈다. 이 책에서 케인스는 시장의 심리를 예측하는 활동을 투기로, 그리고 자산의 수명 전체에 걸쳐 미래수익을 예측하는 활동을 기업으로 정의했다. 쉽게 얘기해서 시장 심리를 예측해서 돈 버는 활동을 투기, 자산 투자를 해서 거기에서 생기는 현금흐름을 통해 돈 버는 활동을 기업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케인스에 따르면 시장에서 이뤄지는 기업에 대한 가치평가는 변덕이 심하다. 그것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강력한 확신의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금융시장이 발달하면 투기 활동이 기업 활동보다 우세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만약 투기 활동이 기업 활동이라는 꾸준히 흐르는 강물 위에서 벌어진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거꾸로 기업 활동이 투기 활동이라는 소용돌이에 말려든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고 케인스는 주장했다. 케인스는 자본의 활동이 카지노의 부산물이라면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는 말로 상황을 비유했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카지노에는 접근이 어려워야 하고 그것은 증권시장에도 마찬가지라고 케인스는 말한다. 케인스는 투기 활동이 기업 활동을 압도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증권거래세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케인스는 과도한 금융거래나 금융의 성장이 실물자본의 축적을 오히려 더디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업자본이 장기에 걸쳐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금융거래를 억압해야 하고 그래야 더 많은 자본축적,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케인스는 보았다. 케인스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브레턴우즈 체제, 케인스식 복지국가 제도에도 반영되었다. 케인스는 금융의 발전이 꼭 좋은 것인가, 투기활동에 의한 주가의 상승이 장기적인 경제 발전에 좋은 것인가를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서 정책 대안으로서 거래세 부과나 금융억압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 가격의 상승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케인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면 증권거래세나 금투세의 모든 논의들은 예외 없이 주가의 상승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에 토빈은 케인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토빈세를 제안했다. 이 토빈세는 케인스의 증권거래세 아이디어를 외환거래에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융거래세는 크게 보자면 국내의 증권거래(주식, 채권, 파생상품)에 적용되는 증권거래세와 외환거래에 적용되는 외환거래세가 있다. 토빈이 토빈세 아이디어를 낸 1970년대 초는 자본이동의 자유가 본격적으로 증가하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던 무렵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제시된 토빈세는 이후 진보 활동가들의 의제로 자리잡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거래세를 도입하자는 요구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이러한 운동의 원류에는 케인스의 아이디어가 놓여 있다. 실제로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금융거래세를 도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주식을 포함한 금융거래에 거래세를 도입했다. 프랑스는 2012년 8월부터 금융거래에 대해 0.2%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2017년에는 세율을 0.3%로 높였다. 이탈리아는 2013년부터 금융거래세를 도입하여 0.22%의 세금을 매기고 있다. 영국은 거래세 성격의 인지세를 0.5%의 세율로 부과한다. 한편 미국 민주당의 해리스는 금융거래세 도입을 이번 대선의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융거래세는 일찍부터 진보 의제로 꼽혀왔다. 2008년 이후에는 금융거래세의 도입 필요성이 훨씬 높아졌고 실제로 금융거래세를 도입하자는 진보 활동가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글로벌 수준에서 볼 때 금융거래세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금융 과잉이라는 2008년 글로벌 위기의 주요 원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금융거래세의 유용성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구멍이 숭숭 뚫린 금투세로 이를 대체한다지만 말이다.
증권거래세 되살리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증권거래세 폐지에 따라 고빈도 매매 기술을 활용한 투기 거래가 증가하면 케인스의 표현대로 투기의 거품 위에 기업이 놓이는 상황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 거래는 장기에 걸친 안정적인 투자나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고 이 때문에 자본시장 발전에도 역행할 수 있다. 투기 거래의 증가는 장기적으로 주가의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증권거래세는 여전히 유용한 기능을 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2019년의 국회 답변 자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증권거래세는 과도한 단기매매 억제 효과를 분명히 갖는다.
우리나라의 증권시장에서는 투기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는 현실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선물, 옵션 거래액의 절대액이나, GDP 또는 시가총액에 대비한 선물 옵션 거래량 비율은 주요 나라들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난다, 그만큼 투기성향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변동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에는 외국의 핫머니 유출입이 많아서 국제시장이 동요할 때는 자금이 급격하게 빠져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외국자본의 ATM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데도 증권거래세는 여전히 유용하다.
증권거래세 폐지로 거래가 증가하면 중개업자들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해지펀드나 사모펀드도 초단기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 그렇다고 그것이 국민경제에 무슨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증권거래세를 소득세로 전환하는 데에서 생기는 손에 잡히는 이익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증권거래세를 중심으로 하면서 금투세를 보완해서 운용하는 조세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재정부도 2019년 국회 답변자료에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증권거래세와 주식 양도세를 모두 과세하고 있으며, 두 세금을 병과할지, 택일할지 여부는 입법정책적 결정사항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증권거래세의 필요성이 큰 우리나라가 금융소득세 단일체제를 선택하고 있는 미국을 따라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이미 단계적 폐지를 결정한 증권거래세에 대해 그 유용성을 재검토하고 이를 되살리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도움받은 자료>
이인형·강소현․김준석, "글로벌 거래소 변화 양상과 시사점", 자본시장연구원, 2012
구기동, "증권거래제도와 조세의 역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2019.
기획재정부, "금융투자 활성화 및 과세합리화를 위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 2020.6.25.
대한상공회의소 "금융산업의 제도 애로와 개선방안 건의", 2016.12.7.
김갑래·황세운, "금융투자상품 양도소득 과세체계 선진화:입법정책적 고려 사항", 이슈보고서 17-10, 자본시장연구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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