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크록스 주한영국대사가 통일부 주최 포럼의 참가자 성비가 극도로 남성에 치중됐다고 문제 제기하며 불참을 통보했다. 해당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통일부는 포럼 홈페이지에서 참여 연사 명단을 볼 수 없도록 비공개 처리했다.
주한영국대사관은 28일 "다음 주에 개최될 2024 국제한반도포럼(GKF)에 주한 영국대사의 참여가 어렵다는 점을 알려드린다"고 발표했다.
대사관이 이번 행사에 불참 결정을 내린 배경은 GKF에 참석하는 전문가들의 성비가 남성 20명, 여성 1명으로 지나치게 쏠려있다는 데 있다. 대사관은 불참 입장을 외부에 공개하며 "대사관은 성평등 가치를 지지한다. 참여자들이 다채로운 견해들을 공유할 때 행사가 더욱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통일부는 같은 날 "영국 측의 입장을 존중한다"면서도 "각 세션 주제에 맞는 전문가를 초청하기 위해 성별·국적 등에 상관없이 두루 후보군을 선정해 접촉했지만, 여러 사유로 인해 많은 여성 전문가들이 참석 불가를 통보해 불가피하게 이번 포럼은 다수의 남성 연사로 구성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통일부가 실제로 성별에 상관없이 전문가들을 섭외하고 있으며, 이번 포럼에서만 불가피하게 여성을 섭외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1주년을 기념해 통일부가 지난 28일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도 24명의 발언자 중 1명을 제외한 모두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GKF의 경우 주한영국대사관이 통일부에 처음 불참 의사를 전했을 때에는 모든 연사가 남성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에서는 이 같은 통일부의 중년 남성 중심의 연사 구성에 일찍이 비판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국 소식을 다루는 외신 <NK뉴스>는 지난 22일 "통일부는 다음달 열리는 GKF에 참여하는 연사를 모두 남성 발화자로 구성했다"고 지적하며 "18명의 연사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비판에 대해 통일부는 여성 전문가들이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남성 중심 참여진을 옹호했다"고 보도했다.
통일부는 국내외 비판 여론을 의식해 현재 국제한반도포럼 홈페이지에서 참여 연사 목록을 비공개 처리하고 "페이지 준비 중"이라는 문구를 기재했다.
이처럼 한국 정부와 주한영국대사관·외신의 입장이 다른 이유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둘러싼 관점의 차이에 있다. 남성 중심 구성에 대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행사에 초청된 전문가 대다수가 남성이어도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지만, 해외 주요 국가들은 남성 중심 패널을 'manel(man+panel)'이라고 부르며 성편향적인 구성을 경계하고 있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국가들은 성별 외에도 연령, 장애, 인종, 성적 지향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주한영국대사관의 경우 관저에 "영국대사관 서울 평등지침 가이드라인"을 부착하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향하기 위해 필요한 지침들을 공유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대사관이 △연령, △장애, △성별전환, △결혼과 시민적 결합, △임신과 출산, △인종, △종교 또는 신념, △성별, △성적 지향 등을 보호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사관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주한영국대사관이 초대받는 모든 행사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구하는 데 헌신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행사의 다양성이 부족 경우, 대사관 측이 알고 있는 전문가 목록을 공유해 전문가 초대를 제안하거나 참여자 균형이 이뤄지지 않을 시 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설명해야 한다. 예상치 못하게 다양성이 부족한 패널에 참여하면 현장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소수자가 배제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한편, 지난 6월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제9차 한국 국가보고서 심의 최종 견해를 발표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구체적인 입법 일정을 정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한국 정부에는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철회하고 100일 넘게 공석인 여가부 장관을 바로 임명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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