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약자 지원법? 플랫폼·가짜3.3 등 '오분류 노동자' 시정부터!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2023 플랫폼종사자 실태조사'가 보여주는 것

드디어 8월 5일, 고용노동부와 고용정보원은 2023년 플랫폼종사자 실태조사결과를 보도자료 등으로 배포했다. 주의할 점, 2024년 실태조사가 아니라 2023년 실태조사 결과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보도자료를 검색해보면 매년 말 시점에 당해연도 플랫폼종사자 규모 및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그림)

▲ 플랫폼 종사자 보도자료 배포일.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갈무리

3년 동안 4배로 늘어난 플랫폼노동 규모

그런데 2023년 결과는 무려 8개월이나 늦게 나온 것이다.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보도자료 제목에 연도 표기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대표적 '노동약자'로 분류해온 플랫폼노동,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이렇게 늑장인 점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없었다. (☞관련기사 : 尹, 노동약자 지원하겠다고? '데이터' 파악부터 제대로 해라)

▲2020~2023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그동안 정부가 발표해온 플랫폼 종사자 규모를 표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최초의 조사가 이뤄졌던 2020년 22만 3000명이던 플랫폼 종사자는 지난해 88만 3000명으로 무려 4배나 치솟았다. (광의 개념보다 협의 개념이 플랫폼노동 정의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런지 설명하려면 길어지니 일단 플랫폼노동 규모는 '협의'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만 밝혀두기로 한다.)

모빌리티 주춤, 컴퓨터·IT·전문서비스 급속 성장

2023년 실태조사로 나타난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전문 서비스 △컴퓨터 단순 작업 △IT 서비스 부문 플랫폼종사자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전히 모빌리티(배달·배송·운수) 부문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지만, 엔데믹 이후 배달 수요 감소 등으로 규모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 고용노동부 '2023년 플랫폼종사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보도자료 일부.

전년 대비 증감률은 소프트웨어 개발 등 IT 서비스 부문이 가장 높았지만, 데이터 입력 등 컴퓨터 단순 작업 부문의 지난 2년간 성장률 역시 무서운 속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인사이드경제>는 주로 배달·대리운전 등 모빌리티 부문을 다뤄왔는데, 오늘은 급속도로 늘어나는 컴퓨터 단순 작업 부문을 다뤄볼 생각이다.

AI 머신러닝에 활용되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

컴퓨터 단순 작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데이터 입력'인데 이게 최근 AI 개발을 위한 머신러닝에 대규모로 활용되는 데이터 처리와 관계가 깊다. 한국에서도 흔히 '데이터 라벨링(data labelling)' 즉 데이터에 이름을 붙여서 입력하는 업무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단순'한 작업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를테면 어떤 이미지를 주고 거기에서 자동차, 보행자, 신호등 등을 식별하고 경계 상자를 그려 이름(레이블)을 붙이거나, 혹은 도로 표지판, 차선 등을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 작업을 통해 픽셀 단위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 세그멘테이션 작업 사례.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예를 들어 위 그림에서 왼쪽 이미지가 주어지면 도로 위의 차량, 보행자, 신호등, 가로등 등을 식별한 뒤 경계선 박스를 그리고 선을 딴 뒤 이름을 집어넣거나, 아래 그림에서 도로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세그먼트로 나누고 각 세그먼트에 AI 또는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기호를 입력하는 일이다.

▲ 세그멘테이션 작업 사례.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위 그림들은 모두 'ChatGPT'에 데이터 라벨링의 정확한 영어 표현에 해당하는 데이터 어노테이션(data annotation)을 정의하도록 한 뒤, 그 정의에 가장 가깝도록 이미지 구성을 요청하여 'Dall-E'를 통해 이미지를 추출한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미지 추출을 위해서도 OpenAI 사는 수많은 라벨링된 데이터를 모아 학습과정(머신러닝)에 활용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관련 일자리와 종사자가 급증하는 이유

AI 학습을 위해 활용되는 이미지, 데이터들은 모두 인간 노동력의 손을 거쳐 수집되고(data collection), 학습에 걸맞는 데이터를 걸러내고(data curation), 각각의 데이터 세부 내용들에 이름을 붙여서(data annotation) 최종적으로 AI 모델 트레이닝 과정에 투입된다.

▲ AI 모델의 데이터 학습과정, 품질 향상과정 흐름도.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즉, AI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숫자의 노동력을 투입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AI는 일자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리는 것일까? 정확한 셈법은 전문 연구자들이 맡아서 해주겠지만, AI가 무조건 일자리를 줄인다는 시각은 매우 편협하다는 점만 짚어두도록 하자.

ChatGPT를 비롯해 수많은 AI 관련 서비스들이 줄지어 출시되고 있고, 지금도 곳곳에서 AI 개발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영어권 또는 라틴어 계열 국가들 사이에서는 데이터 라벨링 업무를 서로 아웃소싱 할 수 있겠지만, 한국어는 영어권 나라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이기에 상호 아웃소싱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한류 열풍으로 K-컨텐츠들은 전세계 웹사이트와 SNS 및 각종 게시판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이런 것들 모두 AI가 학습해야 할 중요한 '데이터'에 해당한다. 그래서 한국 관련 컨텐츠 데이터를 수집하고, 걸러내고, 라벨링하는 업무의 대부분은 한국인에게 맡겨질 수밖에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복합적인 양상이 앙상블을 이루면서 한국에서 컴퓨터 단순 작업 관련 플랫폼종사자 규모를 급속도로 늘리고 있다. 유럽·미국에서 돌봄·가사 관련 플랫폼종사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멀쩡한 노동자를 프리랜서·자영업자로 둔갑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일자리 대부분이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일자리 세계로 한 발짝만 들어가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도 ChatGPT에 '데이터 라벨링' 일자리 관련 한국의 채용공고를 검색하되, 쿠팡이나 콜센터 교육생 사례처럼 가짜 3.3 사례로 추정해볼 수 있는 공고를 추려달라 하니 금새 여러 가지 케이스를 찾아주었다. 데이터 라벨링 관련 일자리 채용공고는 대부분 자신을 세계 1위의 채용 사이트라고 홍보하는 '인디드(indeed)'에서 찾을 수 있었다.

▲ ChatGPT가 찾아낸 가짜 3.3 의심 채용공고 사례.

그 중 2가지 사례만 여기서 소개하기로 한다. 첫 번째 사례(위 사진)는 제목 자체가 '표지판/신호등 데이터 라벨링 검수자'로 되어 있다. 앞에서 얘끼한 것처럼 표지판, 신호등처럼 도로 위의 물체에 라벨링 된 내용이 제대로 이름붙여졌는지를 검사하는 일자리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제목 밑에 "일급 94,656원"이라고 적혀 있어서 처음에는 '일당제인가'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런데 붉은 밑줄로 그어놓은 부분을 읽어보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다. 처음에는 하루 8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한다고 하여 정상적인 노동자처럼 보이지만, 이내 "서비스제공에 따른 정산금은 사업소득세 공제 후 통장으로 지급"된다는 대목에서 가짜 3.3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노동자라면 사업소득세가 아니라 근로소득세를 공제함이 마땅하다. 게다가 "계약 종료 후, 최대 1개월 이내 정산"이라는 대목도 결정적인 증거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퇴사하면 반드시 2주일 이내 퇴직금 포함 미지급 임금을 사용자가 지급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조항은 강행규정이다. 즉, 근로계약이 아니라 프리랜서 계약 내지 도급계약을 활용해 이들의 노동자성을 박탈하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적시해놓은 것이다.

대담하게 근로기준법 위반 내용 채용공고에 담아

얼마나 거대한 사각지대이길래 근로기준법 위반 내용을 버젓이 채용공고에 올려놓았을까? 어렵지 않게 '인디드'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데이터 라벨링 일자리 채용공고(아래 사진)에서는 정식 채용 이전 교육 및 수습기간을 사업소득세 3.3%를 떼는 프리랜서·자영업자 신분으로 진행한다는 내용을 명시해 놓았다.

▲ ChatGPT가 찾아낸 가짜 3.3 의심 채용공고 사례.

최근 정식 채용 전 '교육생'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업무에 필요한 직무교육을 진행해놓고 '선발 과정에 있으므로 하루 3만 원만 지급해도 된다'고 우기던 콜센터가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에서 근로계약관계에 있으므로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데이터라벨링 일자리 채용공고에는 교육생을 프리랜서·자영업자로 둔갑시키는 수법이 버젓이 적시되어 있는 것이다.

일당 9만 4656원이라는 숫자에 숨어 있는 비밀

눈치 빠른 독자들은 첫 번째 채용공고에 제시된 일당이 왜 9만 원도, 10만 원도 아닌 9만 4656원인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일당을 어떻게 만 원, 1000원 단위도 아니고 이제는 한국은행이 찍어내지도 않는 1원 단위까지로 적어놓았을까?

비밀은 '법정 최저임금'에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 그런데 여기에 주휴수당을 감안하여 시급을 다시 계산할 경우 시간당 1만 1832원이 된다. 시간당 1만 1832원으로 8시간을 일하면 받을 수 있는 일당이 정확히 9만 4656원인 것이다.

아니, 프리랜서·자영업자로 둔갑시켰다면서 왜 법정 최저임금 제도는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최저임금법도 적용되지 않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앞선 채용공고에서 모두 확인되지만, 재택근무도 아니고 매일 특정 장소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을 근무하는 조건이기에, 여기서 일한 노동자들이 퇴사 후 노동부에 진정이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즉, 나중에 노동자성을 인정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법정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했다"는 변명거리를 미리 만들어둔 것이다.

둘째, 법정 최저임금은 노동자냐 아니냐를 떠나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찾는 이들에게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법정 최저임금만큼도 안 주는 일자리라면, 프리랜서냐 노동자냐를 떠나서 일자리를 구하지도 찾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즉, 법정 최저임금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프리랜서·자영업자들에게도 중요한 기준선을 설정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동약자 지원법? 오분류 노동자 시정조치부터!

최근 타다 드라이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바 있다. 비록 하급심에서는 배달 라이더가 패소하는 사건도 있긴 했지만, 판결문 내용들을 면밀히 검토하면 항소·상고심에서 충분히 뒤집힐 수 있을 만한 내용들이다.

즉, 이미 모빌리티 플랫폼 노동자들은 프리랜서·자영업자로의 오분류를 시정하고 '노동자'로 인정하라고, 따라서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웹툰작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 큐레이션형 플랫폼 노동자들도 노동자성을 다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오늘 확인한 것처럼 데이터 라벨링을 비롯한 컴퓨터 단순 작업 관련 일자리 역시 다툼의 여지 없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부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약자'로 호명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에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면 되는데 말이다.

노동약자 지원법으로 먼 길 돌아갈 이유가 없다. 오분류 노동자 시정조치로 직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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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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