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한국엔 "적"…러시아엔 "가장 친근한 벗"

韓·러, 똑같이 北에 수해지원 의사 밝혔지만…北, 한미 '아이언메이스' 연습 비난

장마철 압록강 유역에서 대규모 수해 피해를 입은 북한이, 돕겠다는 의사를 밝힌 한국과 러시아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의 수해지원 의사 표시에는 무반응으로 일관하며 한국을 "적(敵)"이라고 날을 세웠고, 러시아의 위문·지원 의사 전달에는 '충심으로 감사'한다며 "가장 친근한 벗들의 진정어린 위문을 마음으로 전해받는다"고 했다.

지난 3일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국영언론 <조선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일 수해 지원작전에 동원된 공군 직승기(헬기) 부대를 격려방문한 자리에서 이들의 인명구조 실적을 칭찬한 후 "인민보위전에서 용감했고, 능숙했고, 주저없었던 것처럼 훈련혁명을 다그쳐 원수를 격멸하는 데서도 철저해야 한다"고 돌연 남측에 화살을 돌렸다.

김 국무위원장은 "지금 적들의 쓰레기 언론들은 우리 피해지역의 인명피해가 1000명 또는 15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구조 임무수행 중 여러 대의 직승기들이 추락된 것으로 보인다는 날조된 여론을 전파시키고 있다"며 "이러한 모략선전에 집착하는 서울 것들의 음흉한 목적은 뻔하다"고 적대감을 보였다.

김 위원장이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말했다고 전한 북한 매체들은 그가 "어떻게 하나 우리를 깎아내리고 우리 공화국의 영상에 먹칠을 하자고 악랄한 모략선전에 열을 올리고있는 한국 쓰레기들의 상습적인 버릇과 추악한 본색을 신랄히 지탄했다"고 전했다.

북한 측은 지난 1일 한국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수해 관련 인도적 지원 의사를 표명한 데 대해서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 역시 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반면 러시아의 위문과 지원 의사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이 직접 사의를 표하는 등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북한 매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수해 피해에 대해 김 위원장에게 '위문과 지지'를 표시하고 '피해 복구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신속히 제공할 용의를 표명했다'면서 이같은 "모스크바의 위문은 8월 3일 저녁 우리나라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통해 외무성에 전달됐으며 즉시 국가 최고지도부에 보고됐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가장 어려울 때 진정한 벗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가장 친근한 벗들의 진정어린 위문을 마음으로 전해받는다"고 "충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다만 북한은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의 지원도 정중히나마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현 단계에서 큰물(홍수) 피해를 시급히 가시기 위한 국가적 대책들이 강구됐으므로 이미 세워진 계획에 따라 피해복구사업이 진척될 것이며, 만약 그 과정에 앞으로 반드시 도움이 필요될 때에는 가장 진실한 벗들, 모스크바에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침수지역 주민 구출에 투입됐던 헬기 부대를 축하 방문해 훈장을 수여하고 격려 연설을 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최근 북한 수해와 관련한 남측 언론의 인명피해 추산 보도 등을 비난하며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편 북한은 지난 1일까지 한미 양국이 진행한 핵·재래식전력 통합도상연습인 '아이언 메이스(iron mace. 철퇴)' 연습을 시행한 데 대해 "미국과 한국 군부 깡패 집단의 무분별한 핵 대결 소동"으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내용의 외무성 대외정책실 명의 공보문을 4일 관영매체를 통해 발표했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의 전쟁광신자들은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에서 이른바 우리의 '핵사용'에 대응한다는 간판 밑에 전면적인 핵전쟁을 가상한 핵작전연습 '아이언 메이스'를 벌려놓았다"며 "이것은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에 따라 '핵협의그룹'을 조작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타격방안을 정기적으로 수정검토해온 미국과 한국의 핵전쟁계획이 실제적이고 구체화된 범행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북한은 최근 미국 조야의 움직임에 대해 "미 국방성 차관보대리는 자주적인 주권국가들을 위협으로 걸고들며 미국의 핵무기 배비 수를 늘이고 다양한 핵타격 수단들을 개발하려는 기도를 드러내 보였다", "미국 내 보수세력들 속에서도 한국에 대한 전술핵무기 배비, 전술 핵탄두 생산능력 확대를 제창하며 미국의 국력을 총동원해 자주적인 주권국가들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극히 모험적인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미국은 해마다 핵무력 현대화를 위한 자금지출을 체계적으로 늘이면서 콜럼비아급 전략 핵잠수함,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LGM-35A 센티널, 6세대 핵전략폭격기 B-21 레이더를 비롯한 새로운 전략 핵타격 수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를 "조선반도(한반도)의 우려스러운 안전환경을 보다 위태한 수준으로 악화시키며 지역에서의 핵충돌 위험성을 계속 고조시키고있는 미국의 적대적 도발행위"라고 주장하며 "일방의 핵위협 증대와 도발적 핵태세 조정은 타방의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와 임전 핵태세 완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핵무장력을 통한 대응을 시사했다.

북한은 "적대국가들이 자신과 세계를 덜 안전하게 만드는 선택을 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기의 주권과 안전이익,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보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있다. 미국과 추종국들은 저들의 무분별한 선택이 초래할 파국적 후과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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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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