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여러 정부 정책이 나왔음에도 피해자들의 고통 호소율은 역대 최고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푸른나무재단은 24일 서울 서초구 재단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밝혔다. 앞서 재단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17개 시도 재학생 859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올해 1~3월 학생·보호자·교사·학교전담경찰관 등 31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5월부터는 전국 보호자 388명을 추가 조사했다.
학교폭력 피해자 10명 중 4명 자살·자해 충동 경험
재단의 실태조사 결과, 학생들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은 3.5%로 전년에 비해 감소했다. 경험 비율은 초등학생이 4.9%로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중학교(1.7%), 고등학교(1.2%)가 뒤를 이었다. 초등학생의 경우 장난과 폭력을 구별하지 못하고, 적절한 대응 방법을 알지 못해 학교폭력에 더 취약하다는 게 재단 측의 설명이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 64.1%는 피해 경험이 고통스러웠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년(49.9%) 대비 14.2%포인트(p) 증가한 수치로, 재단이 조사를 시작한 2017년 이래 가장 높은 비율이다.
학교폭력 피해로 인한 학생들의 자살·자해 충동 경험률은 39.9%로 지난 3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사이버폭력을 경험한 학생들의 자살·자해 충동 경험률은 45.5%로 사이버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집단(34.0%)에 비해 10%p 이상 높게 나타났다. 사이버폭력은 성범죄와 같이 피해 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데,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하면 학교폭력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피해 회복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가해 학생은 우리 아이의 사진을 도촬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하고 마치 저희 아이인 것처럼 활동했습니다. 해당 계정에는 '게이 구합니다' 등 저희 아이를 성소수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글들이 도배돼 있었고, 불특정 다수의 여학생에게 성적인 질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 안타깝게도 사안 처리 과정에서는 이 부분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저희 아이는 이 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 자퇴를 결정했습니다."(학교폭력 피해 학생 보호자 A씨)
가정 일상 망가뜨리는 학교폭력…다문화·한부모 더 취약했다
피해 학생뿐 아니라 보호자도 학교폭력으로 인해 정서적·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 보호자의 98.2%는 우울감을 호소했으며, 생업에 지장을 경험한 비율은 73.4%, 사회활동 위축 78%, 부부갈등 63.3% 등 복합적인 피해를 경험하고 있었다.
보호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가해자 측의 쌍방신고로, 가해를 막기 위한 피해자의 정당방위 행위를 두고 가해자 측이 쌍방폭행으로 신고하는 것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학생 보호자 40.6%가 가해 측으로부터 쌍방신고를 당했으며, 피해 학생 측에서 지난 10년간 재단에 법률상담을 요청하는 비율은 2.9배 늘었다.
피해 학생 보호자 44.4%는 학교폭력 발생 뒤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 '자녀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어려웠다'고 답했다. 재단 측은 "보호자들은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정서적·경제적·법률적 지원이 필요하나,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상당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취약계층은 학교폭력 발생 시 피해 회복을 위해 보다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김석민 선임연구원은 "재단 측으로 학교폭력 피해 지원을 문의하는 사례 10건 중 8건은 다문화, 한부모,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이라며 "이들은 피해 학생 보호와 더불어 생활·의료·상담 등 복합적인 지원을 필요로 했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해결 위해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 가장 중요"
정부는 학교폭력 대응책으로 학생 간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강화하고자 지난해 10월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했다. 또한 전국 17개 시도 학교폭력제로센터 관계개선지원단 운영을 통해 학생 당사자 간의 교육적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아동 과반수인 52.2%는 '학교폭력이 잘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1.5배 증가한 수치로, 학교폭력이 피해자에게 미해결 과제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사과와 반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폭력 이후 가장 필요한 것으로 피해 학생들은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17%)를, 가해 학생들은 '사과와 반성, 용서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45.9%)를 각각 1순위로 뽑았다.
현실은 학생들의 욕구와 달랐다. 피해 학생 48.8%는 가해학생으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으며,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피해 학생 10명 중 7명이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김미정 상담본부장은 "정부가 관계회복 프로그램 확대 적용을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다"라며 "국내 학교폭력 제도를 관계회복 중심의 트랙과 사안 처리 중심으로 구분 및 운영하는 '학교폭력 투트랙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단은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 중심의 생활형 갈등 해결 역량강화 교육, △학교폭력 피해학생 보호자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 △사이버폭력 피해자 위한 즉각적 보호조치 담보, △플랫폼업체의 사회적 책임 강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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