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 자기자본 비율 8% 규제, 금융 이익에 우호적인 '수치'일 뿐이다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알게 모르게 노동자·서민의 이익은 위협

정치적인 성격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은행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또는 BIS 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하는 일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는 반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직후에 장하준 교수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korea times 2008.12.14.). 그때는 "비 올 때 우산 뺏는" 은행들의 행태가 비난을 받던 분위기였다. 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금융위기 국면에서 은행들은 오히려 자금을 회수하고 있었다. 생산적 기업의 지원이라는 은행의 사회적 기능을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은행들의 행태 뒤에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규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BIS 자기자본 비율은 은행의 지급 능력을 가늠하는 표준적인 지표로 간주된다. 이 비율이 높으면 보통은 은행들의 지급 능력이 실제로 커진다. 그런데 이 지급 능력은 기업들의 사정이 나빠질 때 은행의 사정도 함께 나빠지는 특징을 갖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지급 능력이 나빠질 때 은행들은 기업들의 사정은 뒷전이고 먼저 자기부터 살려고 했다. BIS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어야 한다는 요구는 그러한 은행들의 행태를 더욱 다그쳤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의 사정은 한결 더 나빠졌고 은행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제가 나선형으로 고꾸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은행이 경기의 흐름을 평평하게 하는 역할을 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거꾸로 증폭시키면서 기업과 은행이 함께 늪에 빠지는 이러한 현상은 '경기 증폭(pro- cyclical) 효과'로 알려져 있다. 은행들은 기업들이 돈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빌려주려고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돈을 회수하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경기가 정상적인 흐름보다 더 큰 진폭을 그리게 했다. 은행들이 위기 국면에서 몸을 도사리는 부분은 어쩌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은행의 지급 능력을 유지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BIS 자기자본 비율이 은행들의 그런 행태를 부추기는 데에는 어딘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BIS 자기자본 비율이 가진 이러한 문제점들은 일찍부터 인식되었다. 여러 전문가들은 BIS 자기자본 비율 규제가 불경기에 오히려 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한 바 있다. 그러한 경고는 2008년 글로벌 위기 때 현실로 드러났다.

경기 증폭 효과가 BIS 자기자본 비율이 가진 문제의 다는 아니다. 다른 여러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국제결제은행(BIS) 산하의 바젤 은행감독위원회가 제정한 자기자본 비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개념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바젤 은행감독위원회는 은행들이 최소한 8%의 자기자본 비율을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자기자본이란 말 그대로 남에게서 빌리지 않은 돈, 따라서 영업의 밑천이 되는 자기 돈을 말한다. 은행은 자기자본에 더해서 고객의 예금을 받거나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서 이것을 대출해주거나 유가증권에 운용한다. 총 운영자금 가운데 자기자본이 8%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BIS 자기자본 비율의 권고 내용이다.

이러한 비율이 필요한 이유는 은행의 대출이나 유가증권 운용에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출은 떼일 수 있고 주식이나 채권은 시장 가치가 떨어질 위험, 심한 경우에는 기업이 실패하여 주식이나 채권이 휴지조각이 될 위험이 있다. 운용 자산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은행은 예금자에게 예금을 돌려주지 못하거나 외부 채권자에게 차입금을 갚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은행은 그 특성상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하는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운용자산에서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반 기업에 비해 훨씬 낮다. 이는 운용자산의 손실이 자기자본에 끼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여기에서 은행으로하여금 운용자산을 좀 더 안전한 곳에 투자하거나 아니면 부실이 나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자기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게 해야 할 감독 필요성이 생긴다.

문제는 은행이 안전한 자산에만 투자하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은행이 안전한 곳에만 대출해주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술이나 혁신에 기반한 창업기업은 모험적이고 따라서 안전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런 곳으로 생산 자금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기술 발전이나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이 남의 돈의 비율을 최대한 줄이면서 자기 돈의 비율을 높이는 것도 꼭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은행의 원래 기능이 남의 돈을 대표해서 그 돈이 생산적으로 흐르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은 부족하지 않은 수준의 자기자본을 가지고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영업을 하는 것이 은행에도, 그리고 사회에도 바람직하다. 그 적정한 수준을 통일적이고 일률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 BIS 자기자본 비율 규제의 내용이다.

이렇게 본다면 BIS 자기자본 비율 규제는 매우 기술적인 성격만을 갖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자기자본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적정한 자기자본 비율을 어느 정도로 정하는지에 따라 여러 나라들의 은행 산업이 받는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결제은행(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의 바젤 은행감독위원회(BCBS: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가 자기자본 비율 권고안을 만들 때부터 거기에는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민주적이지 않은 BIS 자기자본 비율 8% 규제

바젤 은행감독위원회(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통상 줄여서 바젤위원회로 부른다)는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위원회의 하나로서 1974년 말, G-10국가의 중앙은행 총재 결의로 만들어졌다. 이 위원회의 표면상의 설립 목적은 은행감독 업무의 국제적 표준화, 감독당국 사이 협력 증진과 정보교환 촉진에 있더, 이 위원회는 BIS 사무국과는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BIS 기능에서 자기자본 규제가 갖는 기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 기구는 사실상 BIS를 대표하는 산하기구처럼 인식된다.

바젤위원회 설립 배경에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은행들의 파산 위험이 증가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1971년에 금-달러 교환 중지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여러 나라들은 차례차례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했는데 이는 환율 변동 폭의 극심한 확대를 불러왔다. 환율 변동이 커지면서 국제 거래를 하는 은행 가운데 환율을 잘못 예측해서 파산하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은행 파산은 매우 드문 현상이었다. 특히 주요 나라들에서 대형은행이 파산한 사례는 대공황기 이후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형은행들도 파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은행업 내부에서 생겨났다. 더욱이 1970년대부터 금융규제 완화가 진전되면서 은행들은 심해진 경쟁 환경에서 고위험·고수익 위주의 자산운용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연히 잠재적 은행 파산 리스크의 증가로 이어졌다.

바젤위원회가 만들어진 직접적인 계기는 1974년 독일 헤어슈타트 은행과 미국 프랭클린내셔널 은행의 파산이었다. 두 은행의 파산은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두 은행이 여러 나라에서 국제업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에서 그 은행의 감독 책임을 누가 져야 할 것인가? 최종대부자 역할을 누가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겨났다. 또한 은행 파산의 영향이 국제적으로 퍼져나갈 때 어떠한 국제 협력의 틀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의 문제도 생겨났다. 이런 문제들 다루기 위해 G10 국가들(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영국, 미국, 독일, 스웨덴 + 스위스)의 중앙은행 총재들(당시 G10 국가의 은행들은 세계 국제은행업의 90%를 차지했다)은 BIS 산하에 위원회를 만들기로 결의했는데, 그 때 만들어진 기구가 바젤위원회였다.

바젤위원회는 다음 해인 1975년에 최초의 실적을 내는데, 그것은 은행 감독 책임을 분배하는 기준이었다. 여기에서 국제업무를 하는 은행의 감독 책임을 그 은행의 본국이 진다는 "본국주의 원칙"이 제정되었다. 바젤위원회는 이어서 국제 대출과 외환 포지션의 건전성을 자기자본을 통해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논의했는데, 이에 대해서 위원들 대부분은 통일적이고 일률적으로 건전성을 규제한다는 생각에 회의적이었다. 따라서 바젤위원회는 먼저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연구의 출발은 여러 나라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기자본 개념과 자기자본 비율의 측정 방식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부채위기는 자기자본 규제 논의를 다시금 재촉하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부채 위기 국면에서 특히 미국의 은행들이 커다란 어려움에 빠졌다. 미국 은행들은 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한 거대한 부실 채권을 안고서 허덕이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은행감독 책임을 진 연준은 은행들의 무책임한 대출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에 맞닥뜨렸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볼커는 라틴아메리카 부채위기의 원인이 과도한 규제 완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은행 대출에 규제를 도입했다. 미국은 이미 1930년대에 자기자본 비율 10% 규제를 도입하여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에 이 규제를 폐지했는데 1981년에 이를 다시 도입한 것이다. 자기자본 10% 가운데 5%는 기본자본으로 유지해야 하는 의무까지 더해녔다. 여기에서 기본자본이란 후순위채권이나 대손충당금처럼 자본의 성격이 약한 항목을 뺀 부분을 말한다.

미국 은행들에 대한 자기자본 규제는 그렇지않아도 곤란한 상황에 빠진 은행들의 사정을 더욱 어렵게 했다. 미국 은행들은 국내에서는 규제 완화로 전통적 업무를 다른 금융기관에 빼앗기고 있었다. 국제영업을 하는 은행들은 라틴아메리카 부채 문제로 시달렸다. 국제은행업을 하는 은행들은 라틴아메리카 대출에서 발생한 손실을 전체 국민의 부담으로 떠넘기기를 바랐지만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하는 유권자들과 은행업자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 자기자본 비율이 부과되면 미국 은행들의 국제 경쟁력이 낮아지리라는 사실은 너무 분명했다.

한편 대외 경쟁력을 갖춘 일본의 기업들은 대외 진출을 늘리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은행들의 국제영업도 증가했다. 주거래은행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 은행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기업을 따라 함께 나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그 결과 일본 은행들의 국제 영업이 크게 성장했다. 랄프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1960년부터 1980년까지 국제은행업의 점유율은 미국이 30%, 일본이 20% 수준이었다. 1985년이 되면 이 비율이 미국은 23%, 일본은행은 26%로 역전된다. 1987년에는 국제 대출액 상위 10개 은행 가운데 7개를 일본은행들이 차지한다.

미국 은행들은 자기들에게만 적용되는 자기자본 규제 부과가 자기들의 국제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형평성 문제를 들고나왔다. 미국 연준은 규제를 철폐하는 대신 규제의 국제적인 통일을 통해 형평성을 회복한다는 생각을 해냈다. 자기자본 규제가 BIS와 같은 기구를 통해 국제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미국 은행들이 불리하지 않게 된다는 아이디어였다. 1984년부터 갑자기 미국 연준 의장인 볼커가 자가자본 비율 규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984년 5월에 미국 8위 은행인 콘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의 파산으로 60억 달러의 구제금융이 들어가면서 볼커의 발걸음은 한층 빨라졌다. 볼커는 같은 달 열린 바젤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하여 자기자본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때도 통일적이고 일률적인 자기자본 비율 규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중앙은행 총재는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미국 연준의 노력과 바젤위원회의 설립을 주도했던 잉글랜드 은행의 도움은 자기자본 규제를 향한 걸음을 지속시켰다.

미국이 자기자본 규제를 국제화하려고 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미국은 1980년대 초에 이른바 쌍둥이(무역수지와 재정수지) 적자를 겪고 있었다. 미국 연준은 BIS 자기자본 비율이 이 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도 내다보았다. 예컨대 자기자본 비율 규제는 글로벌 은행들에게 위험자산보다 안전자산 투자에 초점을 맞추라는 메시지를 줄 텐데, 그러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되는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리라는 사실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맥킨지앤컴커니의 로웰 브라이언은 이 규제의 의도가 은행들로 하여금 미국 채권을 더 많이 구입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미국은 이중 적자 문제를 더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자기자본 비율 규제의 도입이 구체화하는 시점인 1987년에 연준 의장인 볼커는 이것이 국제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 은행들의 걱정을 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볼커는 바젤협약이 미국 은행들의 경쟁력에 대한 문제를 충분히 고려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IMF 자료에 따르면 1987년과 1988년의 자기자본 비율은 캐나다가 5.03%와 5.40%, 독일이 4.99%와 4.69%, 일본이 2.18%와 2.49%, 영국이 8.28%와 8.94%, 미국이 5.18%와 5.58%였다. 여기에서 보듯 일본 은행들의 자기자본 비율이 유독 낮았다. 이는 일본 은행들의 외형 성장 중심의 영업 행태를 반영한다. BIS 자기자본 비율은 최종적으로 1988년에 8%로 정해졌는데(1990년 말부터 7.25% 이상, 1992년 말부터는 8% 이상 유지토록 의무화), 이 숫자가 사실은 객관적인 근거를 갖는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은행들은 이 비율을 이미 넘어서 있는 상태였고 미국의 은행들은 쉽게 이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이러한 사정이 BIS 비율을 8%로 정하게 하는 사정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비판가들은 이 8%라는 숫자가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BIS 최고 전문가들인 캡쉬타인이나 리차드 해링&로버트 라이탄이 그런 주장을 편다. 미국과 영국의 금융 세력이 일본의 금융성장을 막기 위해 BIS 자기자본 비율의 도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은행들은 BIS 자기자본 비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자기자본 비율이 낮았던 일본의 은행들은 이 비율을 높이기 위해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초에 이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일본의 은행들이 담보대출을 회수한 것이 일본의 자산 거품 붕괴에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BIS 자기자본 비율은 그 제정과정에서 나타나듯이 매우 비민주적인 것이었다. 첫째, 이 비율은 국제적인 조약이 아니라 몇몇 중앙은행들의 모임에서 결정되었다. 따라서 이 비율은 강제력을 갖지 않은 권고 사항에 지나지 않은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마치 강제 규범인 것처럼 기능한다. <바젤탑>의 저자인 아담 레보어도 이 자기자본비율이 정당성을 갖는가를 물은 바 있다. 둘째, 이 비율의 제정에 특정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은행들의 국제경쟁력에 도움을 주고 이중 적자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이 비율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BIS 자기자본 비율 규제를 계기로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주변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구입함으로써 떠받치는 구조가 형성되고 굳어졌다. 셋째, 8%라는 숫자는 나라들 사이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여 결정된 것이다. 8%라는 숫자가 무슨 객관적인 근거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폴 볼커 전 연방준비은행(Fed) 의장. 커먼즈 이미지.

BIS 자기자본 비율 8% 규제가 만들어내는 문제점

BIS 자기자본 비율의 목적은 은행들의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펴낸 <금융감독개론>도 BIS 비율 제정 목적이 고위험자산에 집중하여 투자하려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여 건전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BIS 비율 규제는 은행 경영의 건전성을 높이는 데 틀림없이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BIS 비율은 여러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경기 증폭 효과는 그 가운데 하나이고 그밖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첫째, 은행들로 하여금 안전성을 추구하게 하는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은행들은 자산 운용 대상에서 국채의 비중을 점차 높여 나가지만 이것은 생산적인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자금이 축소된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특히 국제 은행들의 미국 국채 구입 증가는 자본이 주변국에서 미국으로 흘러가서 그곳의 쌍둥이 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또한 안정성을 강조하는 규제는 은행들이 영업 대상을 기업 대출에서 가계담보대출로 바꾸도록 이끈다.

둘째, 첫째 문제와 연결된 것으로 담보대출의 증가는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서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BIS 자기자본 비율은 금융과 자산 가격의 연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 때문에 금융자산과, 금융시장에 편입된 자산의 규모를 팽창시키고 이것이 결국 자산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감독 규제가 국민과 국내 기업의 필요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이윤 확대에만 도움을 주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 BIS 자기자본 비율은 개발도상국들의 구조조정을 다그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BIS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지 못한 금융기관들의 정리, 미래 가치는 있더라도 당장의 재무 상태가 나쁜 기업들의 퇴출, 고용의 축소나 불안정한 고용으로 전환, 사회복지 삭감, 공공 기업의 민영화, 그 민영화한 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인수 허용 등을 포함한다. 국제 은행들은 신흥경제들에 무분별하게 대출해준 다음 나중에 언젠가 위기 국면에서 BIS 기준에 따른 자본이 부족하는 것을 구실로 이를 인수하러 들어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헨리 류(Henry CK Liu) 같은 국제금융 전문가는 바젤 비율이 국제 금융자본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얘기를 한다.

넷째, BIS 비율은 금융기관들에게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찾게 했다. 실제로 금융기관들은 자산 유동화 기법과 같은 규제 회피 수단을 고안해서 BIS 규제 효과를 반감시켰다. 또한 금융기관들의 규제 회피 노력은 그림자 금융을 크게 발전시켰다. 금융기관들은 특수목적기구, 사모펀드 등 감독기구의 규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기법들을 만들어냈는데, 이 그림자금융이 금융 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복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걱정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상황이다.

BIS 자기자본 비율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 IMF는 우리나라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국내 은행들이 BIS 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해야 한다는 내용을 협정문에 집어넣을 것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 사실 BIS 기준과 IMF 협정문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법적 연관성이 없다. 그런데도 은행들이 BIS 자기자본 비율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협정문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권고 사항에 지나지 않은 이 비율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법적 규범처럼 되었다. 이 BIS 자기자본 비율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강제력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40%가량의 금융기관이 구조조정 되었는데 그때 그 기준은 BIS비율이었다.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된 것도 자기자본 비율이 낮다는 이유였다. 구조조정 이후 이 비율이 낮은 금융기관들은 덩치가 더 큰 다른 금융기관이나 외국자본의 손어 넘어갔는데, 그 결과 대형화, 외국 기관화가 촉진되었다. 그 이면에서 규모가 작은 지역밀착 금융기관들은 해체되거나 대형 금융기관에 매각될 수밖에 없었고 영업도 크게 위축되었다. 외환 위기 이후 지역 경제가 활력을 잃은 데에도 BIS 자기자본 비율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 또한 구조조정으로 수만 명의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BIS 비율은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를 키우고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는 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은행들은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운용자산에서 위험자산 비율을 줄이고 안전자산 비율을 늘려야 했다. 바젤위원회가 제시한 권고에 따르면 은행이 보유한 자산에는 일정한 위험 가중치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위험 가중치가 국채는 낮고 민간기업에 대한 대출은 높으며, 가계담보대출은 그 중간 수준이다. BIS 비율로만 보면 자산 구성에서 국채나 가계담보대출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은행에 유리하다.

바젤 비율 기준은 각 나라들의 감독 당국에 대해 위험 요인의 평가나 위험 가중치 부여 방법에 대해 어느 정도의 국가 재량권을 인정한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들이 보유한 자산 그룹별 위험 가중치가 2023년을 기준으로 기업은 45% 수준, 신용카드는 16.3%, 개인 대출은 26.6%, 개인 대출 가운에 주거용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은 15.2%로 나타난다. 이러한 수치들은 주택담보대출의 위험 가중치가 가장 낮다는 사실, 따라서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이끌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외환위기와 금융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은행들은 개인 담보대출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 담보대출의 증가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를 키우는 중요한 원인이었고 이것이 부동산 가격 폭등에 기여했으며 나아가 자산 불평등을 키우는 데서도 큰 역할을 했다.

활동가들은 BIS 자기자본 비율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어야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IMF와 맺은 협정문에 은행들이 BIS 자기자본 비율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굳이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BIS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듯이 BIS 자기자본 비율은 권고 사항일 뿐 강제법규가 아니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BIS 비율은 임의적인 성격의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IMF는 이를 협정문에 집어넣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활동가들은 BIS 자기자본 비율이 IMF 협정문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 목소리를 내야 했지만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BIS 자기자본 비율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신조처럼 받아들였다. 활동가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 데에는 BIS 자기자본 비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던 탓이 클 것이다.

활동가들은 BIS 자기자본 비율이 선출되지 않은 민간 금융가들에 의해 만들어져서 금융세력의 이익을 위해, 특히 금융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BIS 자기자본 비율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만 언젠가 이 기준이 금융세력의 무서운 칼날이 되었을 때 그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움받은 자료>

아담 레보어(2022), <바젤탑>, 더늠출판사.

Charles Goodhart(2011), The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 A History of the Early Years 1974–1997, Cambridge University Press.

Ralpf C. Bryant(1987), International financial intermediation,‎ Brookings Institution Press.

Richard J. Herring, Robert E. Litan(1995), Financial Regulation in the Global Economy, Brookings Institution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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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강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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