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정욕>이 우리사회에 주는 경고음

[영화, 시대를 넘다] 정욕

아사이 료 원작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정욕>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작품이다. 영화가 그 사회의 일면을 반영한다는 얘기가 맞는다면 <정욕>이 지루한 건 일본사회 자체가 지루하고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모든 욕망이 억압돼 있거나, 수치스러운 무엇으로 감추어져 있고, 그래서 음지 속에서 존재하며, 그래서 더욱 더 사회가 변태적인 느낌으로 변해 버린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이상한 성적 욕구로 가득 차 있는데 그건 오랜 군국주의적 유산과 집체화한 질서주의, 가능한 한 바꾸지 않는 주종관계의 사회 분위기가 역으로 분출시킨, 대중의 사회적 정치적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고 현재는 더욱 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주인공 기류 나쓰키(아라가키 유이)의 말대로 '지구에 유학 온 느낌'으로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인 기류는 겨우 겨우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는 남자 사사키를 만났고 남자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법적인 제재 상황에 처해 있다손 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생각이다. 사사키는 지구에서, 그리고 일본사회라는 세상 안에서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욕은 한자로 正欲이다. 情慾이 아니다. 욕망은 욕망이되 바른 욕망이란 뜻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이건 이상한 욕망에 대한 얘기이다. 올바른 욕망이 있다면 올바르지 못한 욕망이 있거나 그 사이 간극에 있는 욕망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는 일반적인 섹스의 관계도 있지만 폴리아모리(다자연애 섹스)도 있고 에이 섹슈얼(A-Sexual, 연애도 섹스도 하지 않는 관계)이 있을 수도 있으며 논 섹슈얼(Non-Sexual(연애는 하지만 섹스는 하지 않는 관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걸 이상성애라 부른다. 현대사회는 대체로 그 대부분을 금기시한다. 은밀한 욕망으로 치부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그 중에서 소아성애, 페도필은 엄격하게 규제하고 강하게 처벌한다. 어른이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유린하는 것은 엄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이상성애는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 정밀하게 합의된 무엇은 없다. 그저 사회 안에서 독소처럼 취급받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독일 뿐일까. 그건 영화 속에서 다이버서티 페스티벌(Diversity Festival)에 나가려는 간베나 다이야 같은 젊은이들의 욕구 마냥 그냥 다양성의 문제가 아닐까.

▲<정욕> ⓒ해피송

주인공인 기류 나쓰키와 사사키 요시미치(이소무라 하야토)는 특이하게도 물, 흐르는 물, 분출하는 물에 성욕을 느끼는 커플이다. 이른바 물 페티시(Fetish)이다.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성욕이고, 영화 속 인물이자 나중에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 요코하마 검찰청 검사 데라이 히로키(이나카키 고로)야 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욕망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어쩌면 일본사회의 주축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다. 데라이는 10살짜리 아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유튜버가 되는 것, 그걸 아이의 엄마가 믿고 후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아이의 유튜브가 결국 아동성애자들의 성착취물 영상으로 이용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아내 유미(야마다 마호)는 그런 그의 와이셔츠를 움켜 쥐고 "왜 당신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울부짖는다.

기류와 사사키는 중학교 동창 관계로 사사키가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전학 조치 당한 후(그는 학교의 수도꼭지를 망가뜨리고 기물파손으로 징벌을 받는다.) 오래 헤어져 있다가 동창 중 한 명의 결혼식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둘은 극도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데 그건 자신들의 성적 욕망이 일반적이지 않고 그걸 이해시킬 수 없으며 그래서 극단적으로 고립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은 다시 사사키가 성장했던 요코하마로 부부가 돼 돌아간다. 그들은 부부이지만 파트너이고 에이 섹슈얼 주의자들이다. 섹스를 하지 않고 같이 산다. 방도 따로 쓴다. 기류는 딱 한번이라도 섹스를 경험하고 싶다며 사사키에게 부탁하지만 둘은 옷을 입은 채 시늉만 내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보다는 이제 내 욕망을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관계의 상대를 만났다는 데에 안도할 뿐이다.

기류와 사사키는 종종 공원에 나가 공중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하늘 높이 솟는 물줄기를 바라 보며 즐거움과 흥분을 나눈다. 둘은 물을 통해 자신 스스로와 상대가 정화(淨化)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볼 때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것, 자꾸 물을 바라 보는 것은 죽음에의 유혹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류와 사사키는 홀로 있을 때 위태위태하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방법을 찾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기류는 아예 자동차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현대사회의 부적응자이며 무던히도 애쓰고 살아 가지만 결국 사회 속 무리의 일원이 될 수가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또 다른 인물인 간베 야에코(히가시노 아야코)와 모로하시 다이야(사토 칸타) 역시 대인 기피증과 대인 혐오증에 시달리며 살아 간다. 둘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싫어 한다. 간베는 용기를 내 다이야에게 접근하려 하나 그는 여자를 냉정하게 밀어 낸다. 다이야는 이제 막 자신과 같은 물 성욕자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후지오카 사토루라는 아이디를 쓰는 남자이다. 이 사토루란 익명의 남자는 결국 다이야와 사사키, 기류, 그리고 검사 데라이 등등 모든 극중인물을 연결한다. 그 연결은 비극적이고 언해피한 일이 된다. 검사의 취조실이 닫히 듯 그렇게 사건은 모든 인물들의 관계들에게 다시 한 번 빗장의 문을 닫아 잠근다.

ⓒ해피송

소설 <정욕>이 일본에서만 50만권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았다는 점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 자체가 이상성애처럼 느껴진다. 일본사람들은 왜 이렇게 어두운 욕망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 것일까. 그건 일본사회가 병 들었기 때문이다. 아프기 때문이다. 비록 비뚤어진 것이라고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되지만 다수가 일반적으로 느끼고 나누는 욕망보다는 혼자서 숨어서 즐기고 허덕이는 비밀스런 오타쿠 식 욕망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정욕>은 일본사회가 사람들을 지나치게 억누르고 있음을 반증한다. 정욕에는 바른 정욕 틀린 정욕이 없다. 정욕은 정욕일 뿐이다. 이 일본영화가 보여주는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은 비관적이고 우울하다.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욕망이 올바르게 구현되고, 인정되고, 공유되고 있는가. 우리 역시 심각한 우울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야 말로 일본영화 <정욕>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음이다. 그 데시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해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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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오동진은 신문,통신,방송사 문화부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영화전문지 FILM2.0과 씨네버스의 창간멤버와 편집장을 지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 마켓 운영위원장이었다. 현재 영화 글만 쓰고 산다.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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