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난동 등 파시즘 발현 징후…"민주주의 접근 경로 강화해야"

[함께 만난 사람] 트라우고트 예니켄 독일 보훔 루르대학교 교수

2021년 1월 6일,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연방 의회 의사당 건물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침탈 당했다. 수천명의 트럼프 지지자들은 의사당으로 난입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승인하기 위해 이날 있을 예정인 상하원 합동회의를 무산시켰다. '배신자'로 낙인 찍힌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 하원의원인 낸시 팰로시 등을 포함한 다수 민주당 의원들을 죽이겠다면서 의사당 곳곳을 누비던 트럼프 지지자들은 결국 해산 당했지만 그 과정에서 의회 경찰을 포함해 5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 의회 폭동은 유튜브 등을 통해 전세계로 거의 동시에 소식이 전해졌으며, 당시 독일 등 전세계의 극우세력이 이를 지켜보며 응원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극우단체 재판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AP통신>에 따르면, 독일 국가 전복을 모의한 혐의를 받는 '라이히스뷔르거(제국의 시민)' 운동 관련 단체 구성원들은 트럼프 지지자들 다수가 신봉하는 음모론 단체인 큐어넌(QAnon)'의 주장을 받아들여 독일이 이른 바 '딥 스테이트'에 의해 통치된다고 확신해 정부 전복을 획책했다고 한다. 이 단체에는 최근 독일 전역에서 10-20% 지지를 받고 있는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와도 깊이 연계돼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은 지난 21일 2023년 정치적 동기 범죄가 6만28건으로 집계돼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중 우익 범죄가 절반을 차지했다고 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난 1월 2일 백주대낮에 칼을 든 한 남성에게 피습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의회 폭동을 일으킨 열성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트럼프는 올해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확정됐고, 재집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민주주의가 단선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지금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서 안정된 것이 아니라 종종 이른바 '비자유 민주주의(illeberal democracy)'에 의해 위협받아왔습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처음부터 세계 경제위기에 의해 불안정했고, 이는 나치즘 독재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들(Social Democrats)의 저항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라우고트 예니켄(Traugott Jähnichen) 독일 보훔 루르대학교 교수는 26일 <프레시안> 대담에서 현재 독일과 한국을 포함해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들에 대해 논의했다. 예니켄 교수는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주의의 위기와 회복 : 파시즘과 포퓰리즘> 학술회의(공공선 거버넌스, 원탁토론아카데미 공동주관) 기조 연설을 위해 방한했다. 이날 대담은 강치원 공공선 거버넌스 원장이 진행했고, 통역은 이상은 서울장신대 교수가 맡았다.

▲트라우고트 예니켄 교수. ⓒ프레시안(전홍기혜)

독일도 유대인 학살 등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는 극우 대안당의 급부상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우익 포퓰리즘이 재등장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상은 미국, 한국, 독일 등 세계적인 현상이다. 독일은 우익 포퓰리즘에 기반한 대안당(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의 급부상에 대해 일각에선 "나치의 재현"을 우려하기도 한다.

예니켄 교수는 보수와 우익 포퓰리즘의 차이를 정치적 입장과 노선이 다른 세력과 대화 가능성을 지적했다. 우익 포퓰리즘은 '우리'와 '타자(적)'를 나누어 정치적 갈등을 부추겨 이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한다. 그는 대안당이 과거 우익 정당과 차이점은 유대인 학살 등 독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 지적했다.

"대안당은 보수라기 보다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라고 봐야 합니다. 과거 우익 정당은 독일의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한 인정과 해결을 기본으로 깔고 있었는데, 대안당은 이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도 지금 10-2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안당은 2021년 연방총선에서 1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2023년 10월 헤센 주의회 선거에서는 18.4%의 득표율로 제2당을 차지하기도 했다.

청년 남성은 보수, 청년 여성은 진보…왜?

예니켄 교수는 특히 이전 세대에 비해 청년층의 보수적 경향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는 청년 여성들은 진보적인 반면 청년 남성들이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은 지난 20-30년 동안 교육도 많이 받고 노동시장 참여율도 높아졌습니다.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진보를 경험하고 자의식도 갖게 되고 문화적인 혜택도 누리게 된 세대였죠. 그런데 남성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평균에 머물렀고, 그러다보니 뒤쳐지는 느낌을 받게 됐죠. 이런 사회적 불안감이 해결되지 않으니까 포퓰리즘에 포섭되고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사회적, 경제적 불안은 저출생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은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고, 독일도 에외는 아니다. 지난 2022년 독일의 출산율은 1.46명을 기록했다. 예니켄 교수는 출산율 저하 문제를 한국보다 먼저 경험하기 시작한 독일은 양육비 보조 정책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올라갔지만 다시 내려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건 사회적, 문화적인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회적, 문화적 문제도 있는데 결혼과 같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율이 매우 떨어지고 있습니다. 데이팅앱을 통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연애가 일반적이 되면서 아이를 안 낳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이처럼 파트너십이 불안정해지면서 파생되는 사회적 불안도 독일 사회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AI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

기후위기, 인공지능 등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한 변화도 민주주의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로 등장했다. 예니켄 교수는 AI로 인한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는 예상했던 것보다 느리게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노동시장이 굉장히 다변화돼 있기 때문에 AI가 노동시장 자체에 엄청 큰 위기로 당장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독일은 한국보다 빨리 노동력 부족 문제를 앞서 가면서 겪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반면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는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자리의 감소, 자산 격차 등으로) 중산층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사회적으로 중산층에 기반을 두고 이들이 불평등이나 부조리에 저항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데 중산층 자체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에 위기가 발생합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적 위기는 젊은 세대에게 더 실제적으로 다가오고 민주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게 된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요구가 굉장히 급진화되는 이유는 기후위기와 관련이 있어요. 젊은 세대들은 기후위기의 문제를 대응함에 있어 다수 정치를 통한 합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민주주의가 지난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급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자는 쪽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민주주의에도 다른 지평을 만들고 있어요."

다양성에 기반한 민주주의

갈수록 개인화, 파편화되는 경향도 민주주의와 사회 통합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인종, 성별, 지역 등 과거의 사회적 분류보다 훨씬 더 세분화된 분류가 작동하게 되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니켄 교수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에 구애받지 말고 "민주주의에 접근하는 경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이래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너무 협소한 인식입니다. 다양한 논의들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민주주의로 접근하는 경로를 보다 강화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여기서 '민주주의'는 소위 '자유민주주의'라는 협소한 의미로만 해석된다. 보편적 복지, 공공성 등을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는 "빨갱이"라는 한마디로 압살당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니켄 교수는 통일 이전 독일에서도 사민당의 주장에 대해 "모스크바의 지령이 받았다"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 일이 종종 있었다면서 "한국의 사회적, 종교적인 풍요로운 사회적인 전통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추구한다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신학이 전공인 그는 한국 교회가 해야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공적 영역에서 더 책임을 갖고 역할을 하는 것이 한국 교회에서 좀더 강조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시민 교육, 정치 교육 등을 위해 교회가 시민사회를 위해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와 포퓰리즘에 대한 반성을 주제로 지난 24일 열린 원탁 학술대회는 5.18민주화운동 44주년기념서울행사위원회, 한신대 한반도평화학술원 평화와공공성센터, 크리스찬아카데미, 진선미 의원실, 양경숙 의원실, 권칠승 의원실, 최혜영 의원실, 김두관 의원실 등이 공동주최하고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이 후원했다.

▲ 예니켄 교수와 강치원 원장(오른쪽) ⓒ프레시안(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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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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