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능력주의·공정 '야만의 트라이앵글' 깨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

[픽터뷰]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저자 김누리 중앙대 교수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등을 통해 '한국형 불행'의 근원을 제시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김누리 중앙대 교수의 신간 제목이다.

경쟁 교육은 야만…오만한 엘리트와 열등감을 내면화한 대중을 양산한다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OECD 국가 중 꼴찌(2021년), 청소년 자살율 1위 등 한국의 극심한 경쟁교육의 폐해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너무 과한 표현이 아니냐는 지적에 김누리 교수는 2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제 표현이 아니고 20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명이라고 평가 받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입니다. 이는 독일 68세대가 교육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한 모토였습니다. 독일에서는 당시 히틀러의 역사, 아우슈비츠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파시즘적 세계관의 핵심은 첫째, 경쟁, 둘째 우열, 셋째 지배입니다. 경쟁을 통해 우월한 자가 지배를 하는 게 자연의 질서이자 인간사회의 질서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한국 교육을 보세요. 경쟁, 우열, 지배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12년 동안의 한국 교육을 통해 성숙한 민주 시민이 길러질 수 있을까요? 위험한 파시스트를 길러내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게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봐요."

'학벌'이 새로운 신분, 계급, 특권을 만드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은 12년간의 치열하고 소모적인 학습노동에 시달리며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나뉜다. 미성숙하고 오만한 엘리트와 열등감과 모멸감을 내면화한 대중들을 양산하는 파시즘적 교육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기 힘들 것이라고 김 교수는 단언한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 ⓒ프레시안(김봉규)

경쟁교육은 아이들을 무능하게 만들어…한국 대학은 너무 너절하게 죽었다

김 교수는 경쟁교육이 이처럼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고도의 능력마저 이제 기계가 대체하는 것입니다. 최근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런 시대에 어떤 교육을 해야 하나? 너무 명확하죠. 기계로는 대체할 수 없는 능력,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첫째 사유하는 능력, 둘째 창조하는 능력, 셋째 비판하는 능력, 넷째 공감하는 능력이에요. 저는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4가지 능력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줄 세우기를 합니다. 경쟁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비참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무능하게 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암기를 통해 등수를 매겨야 하는 이유는 대학 입시 때문이다. 그러나 살인적인 경쟁을 뚫고 들어간 대학은 과거와 달리 '비판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고등 교육 기관'과는 거리가 멀다. 자본이 대학까지 소유하게 되면서 완전히 '탈정치화된 대학'의 현재 모습에 김 교수는 "대학이 죽어도 너무 너절하게 죽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대학이 자본의 노예가 된 현실은 대학 캠퍼스의 모습을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연세대에서 청소 노동자들, 경비 노동자들이 시위를 한다고 학생들이 고발하고 민사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이것 자체가 한국 교육이 얼마나 막장이 되었는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독일을 방문해 대학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학생들이 끊임없이 정치,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유인물을 나눠줍니다. 지금 한국 대학 캠퍼스에 넘쳐나는 유인물들은 오로지 취업 정보 뿐입니다."

경쟁, 능력주의, 공정…야만의 트라이앵글

경쟁교육이 문제라는 것을 결코 모르지 않으면서도 왜 우리는 바꾸지 못할까? 김 교수는 "경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테리 이글턴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데올로기 연구에 대해 ‘인간이 자신의 불행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일에 대한 탐구’라고 했어요. 저는 이 말이 정곡을 찌른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은 지금 자신의 불행에 스스로를 내던져요. 경쟁 이데올로기 때문입니다. 경쟁의 ‘결과’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고, 경쟁의 ‘과정’은 공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합리화됩니다. 경쟁, 능력주의, 공정 이데올로기가 강고한 삼각체제를 이루고 있어 한국 사람들이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이게 바로 한국 사회를 이런 야만사회로 만들어놓은 근원적 뿌리입니다. 저는 이를 책에서 '야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대학 입시·서열화·등록금 폐지, 불가능하다고? 독일과 프랑스를 보라

경쟁교육을 통해 불행을 내면화한 아이들이 과연 어른이 되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이들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라는 현상은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이기도 하다.

살인적인 경쟁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선 ‘개혁’으로는 부족하고 ‘혁명’이 필요하다는 김 교수는 대학 입시 폐지, 대학 서열화 폐지, 대학 등록금 폐지 등을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했다.

"한국에서 대학 입학시험을 없애자고 하면 이게 대체 가능하냐고 묻는데, 유럽에서 대학 입학 시험을 보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독일은 '아비투어'라고 고등학교 졸업 시험만 보고, 이 시험에 90% 이상이 붙습니다. 합격하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어요. 심지어 30, 40대에 대학에 가는 사람도 많아요. 물론 의학과나 심리학과 등 학생들이 몰리는 과는 정원제한을 둡니다. 이런 경우에도 과거엔 추첨으로 선발하다가 최근엔 아비투어 성적을 제한적으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독일만이 아니라 프랑스도 '바칼로레아'라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학 입학 자격시험만 봅니다. 독일처럼 대학 서열화도 없습니다. 우리처럼 대학 서열화가 있는 나라는 주로 영미권 국가들이지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모델은 국가가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고등교육까지 그 기회를 제공하는 게 성숙한 사회라는 인식을 공유합니다. 그러니까 대학을 나왔다, 어느 대학을 나왔다가 자기 우월감이나 열등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김 교수는 교사들의 정치 참여 금지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OECD 38개국 중에서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지금 여의도에 교사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과거의 교사가 두 분 있을 뿐이지요. 지난번 독일 의회는 640명 의원 중 81명이 전현직 교사였습니다. 독일 의회를 구성하는 직업군 가운데 교사는 두 번째로 많은 의원을 배출한 직업군입니다. 한국은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1963년부터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 정부에서 당연히 이걸 복원시켰어야죠."

'이미 경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한국에서 교육 혁명이 가능한 일이냐고 묻자 김 교수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적은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무력감입니다.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꿈이 있어야 그쪽으로 가죠. 제가 이런 이상적인 방향과 사례를 계속해서 얘기하니까, 이제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으면서도 서서히 새로운 교육을 꿈꾸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김누리 지음, 해냄 펴냄.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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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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