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막말 끝에 남은 건 '기득권 중년 남성'들의 총선

[인권의 바람] 청년을 대변하지 못하는 청년정치

만 18세가 되면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선거권을 가지게 된다. 20대인 필자가 가장 먼저 투표했던 선거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다. 답답한 현실을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기표소에 들어갔지만 패닉이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년남성 위주의 후보 구성에 청년인 필자는 대변되기 어려울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대변한다고 생각한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당선된 후보는 안타깝게도 아무도 없었다. 답답한 현실을 투표로 바꿨다기보다. 투표로 현실의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나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는 극소수지만 그들은 당선조차 요원하다.

주요 정당 국회의원 지역구 후보들의 공천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과열된 경쟁에 공천에서 떨어지면 탈당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분신 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천이 취소되어 유권자들의 반발을 받기도 하는 한편, 자격 없는 후보에 대한 항의에 공천이 취소되는 일도 잦다. 그 속에서 청년의 목소리는 얼마나 대변되었을까? 거대 양당으로 불리는 두 정당의 청년 후보자 공천 비율은 그야말로 ‘극소수’이다. 국민의힘 공천 확정자 254명 중 45세 미만 청년은 21명(8.3%)에 그쳤고 더불어민주당도 공천 확정자 245명 중 45세 미만 청년은 16명(6.5%)에 불과했다. 청년이면서 여성인 후보는 국민의힘 4명(1.5%) 더불어민주당 9명(3.6%)으로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소위 '청년'이라는 후보의 혐오 정치

청년이 직접 정치를 한다면 그들은 분명 청년들이 처한 주거, 교육 등 다양한 문제의 현실을 비교적 알아채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소위 청년정치인들은 청년을 대변하기보다 이미지만 소비하는 채, 구시대적인 사회적 통념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개혁신당이다. 제22대 총선 이합집산의 상징으로도 여겨지는 이 정당은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소모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이준석, 류호정, 천하람과 같이 비교적 나이가 적은 후보들이 공천되는 한편 현수막이나 각종 언론인터뷰에서 유난히 '청년', '젊은 정치'를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개혁신당은 혐오를 이용해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노인 무상교통 폐지' 공약이다. 무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노인들에게 이제는 교통비를 받겠다는 내용이다. 노인의 삶을 나쁘게 만든다고 청년의 삶의 질이 좋아지진 않는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되고, 청년들도 별일 없다면 노인이 될 것이다. 청년이 아닌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청년을 위한 것이 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다. '젊음'을 강조하는 개혁신당의 이준석 대표는 "성인지 교육은 국민 사상적 자유 침해"라는 구시대적 시대인식을 표출하기도 했다. 성평등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함에도 과거 가부장적인 사회로의 퇴행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정치는 청년을 대변하는 정치라고 볼 수 없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하하고 괴롭히는 혐오와 선동의 정치를 공급하는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개혁신당에게는 여성청년은 청년으로 취급되지도 않는가보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을 대변하지 못하는 청년정치

'청년'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부산 수영구에 공천을 받았던 국민의힘 장예찬 씨는 막말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됐다. 이 빈자리는 정연욱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채우게 되었다. 또 중년남성이 채우게 된 것이다. 장 씨의 공천 취소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가 SNS에 남긴 글은 그야말로 도를 넘는 혐오 표현들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다시 중년남성으로 채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결정은 결국 장 씨가 청년을 대변하기 위해 공천된 것이 아닌,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했기 때문에 공천되었음을 반증할 뿐이다. 장 씨는 공천 배경부터 '윤석열 대통령 청년 1호 참모' 이력을 살린 친윤계 인사로 알려져 있다. 공천이 확정됐을 당시 상대 후보였던 전봉민 현 의원은 당시 현역 불패가 계속되던 국민의힘 경선에서조차 첫 현역 탈락의 오명을 안았을 정도였다.

더불어민주당도 논란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민주당은 우상호 의원이 불출마한 서대문갑 지역구를 청년전략특구로 지정하고 청년 후보들끼리 경선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 후보들은 어떻게 기득권을 대변했는지를 경쟁했다. 논란이 되었던 성치훈 전 청와대 행정관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추행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종민 의원실 5급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등의 이력을 거치며 경선 후보로 확정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시민사회의 요구로 경선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대장동 변호사로 알려진 소위 친명계 김동아 변호사로 대체되며 최종적으로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이 확정되었다.

기득권을 대변해야만 출마할 수 있는 이런 공천 지형에서 제22대 국회에 진입한 청년 후보들이 정말로 청년을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막말 논란'으로 부산 수영구 공천이 취소된 장예찬 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이 18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장 전 청년최고위원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더 다양한 정치가 젊은 정치다

아직 대한민국의 정치엔 다양성이 부족하다. 청년 후보는 진보정당으로 눈을 돌려봐도 찾을 수 없다. 피선거권 연령이 하향되었던 지난 2020년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는 후보 구성이다. 청년만이 아니라 여성후보도 부족하다. 지역구에서 공천이 확정된 여성 후보는 국민의힘은 30명(11.8%), 더불어민주당 40명(16.3%)으로 현저히 부족하다. 더불어시민연합의 국민후보로 비례대표 후보에 올랐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은 당선 시 첫 성소수자 후보가 될 것이라 예상되었으나, 민주당 측은 임 전 소장의 병역거부 이력을 '병역기피'라고 규정해 조롱하듯 총선에서 배제했다.

후보 구성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당선 이후에도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여성을 대변하는 여성정치가 '정치인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청년을 대변하는 청년정치도 후보의 생물학적 나이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비장애인 정주민 중년 남성을 대변하는 정치는 후보의 나이와 관계 없이 기득권 정치다. 젊은 정치란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대변하는 후보 구성과 정책일 것이다. 일례로 차별금지법을 자신의 공약으로 내놓은 정치가 아닐까. 차별금지법은 수차례나 발의되었지만, 제21대 국회에서도 폐기될 것이다. 제21대 국회는 개원 후 2877건의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경제 산업 분야는 765건(26.6%)이 통과된데 비해 고용노동 분야는 144건(5.0%)에 그쳐 기울어진 국회라는 비판도 나온다.

다음 선거가 치러질 때는 더 이상 기표소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기를 원한다. 이미 제22대 국회는 또 중년남성 중심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다양성이 실현된 정치는 이번에도 요원해보이지만, 다음 국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