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검찰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야

[복지국가SOCIETY] 전제 왕정으로 회귀한 국가, 선거로 바꿔야

다가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는 예전처럼 조금 덜 나쁜 사람이나 이름값을 보고 뽑던 선거, 그래서 선거 후 배신을 밥 먹듯 당했던 예전의 선거를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날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유전자를 가진 대한민국 K-시민이, 어느 날 갑자기 중세 봉건 체제로 전락해 버린 이 나라를 원상 복구할 위대한 선택의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억압과 불평등의 전제 왕정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공화정을 세운 프랑스 파리의 혁명 시민이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한 것과 같은 역사적인 승리의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추락하는 국격, 하락하는 경제, 활기 잃은 사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유일한 나라, K-방역과 한류 문화 신드롬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엊그제까지 그런 나라였다고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만큼 국격이 추락하고 경제 지표가 하락하고 전쟁 위험이 커져 가고 생기를 잃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도 마치 절대 왕정 국가의 군주와 귀족들처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권력과 자유를 향유하는 특권집단이 국가기관 곳곳을 장악하고 있으며, 국민은 이런 권력에 순응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그 권력에 도전하거나 특권적 제도를 바꾸려는 자는 피아(彼我)를 불문하고 철저히 색출, 척결되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감시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소설 <동물농장>에서 다른 동물들과 함께 자신들을 수탈하던 존스 농장의 주인을 쫒아 내고 새로운 권력자가 된 돼지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특별히 더 평등하다."는 말로 자신들만의 특권과 탐욕의 기반을 만들고 합리화하였다.

정의(正義)가 제대로 정의(定義)되지 않는 사회

'특별히 더 평등하다'는 말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이는 선동과 구호로 다른 동물들을 속여 권력을 잡은 지도자 돼지가 자신들의 거대한 욕망 추구를 합리화하려는 말일 뿐이다. 소위 나라의 지도자라고 하는 권력자들이 쏟아내는 그런 언어유희를 우리는 매일 눈 아프게 보고 귀 아프게 듣고 있다. 그들은 소설 <1984>의 빅브라더나 <동물농장>의 돼지들이 만든 특권적 질서를 '공정'이라고 부르고, 그런 체제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한다. 그들만이 누리는 무제한적 권력을 '자유'라고 정의하고, 그런 사회를 비판하는 자들을 '법치'라는 이름으로 응징한다. 그런 사회가 정의(正義)로운 사회라고 강변한다. 공정, 상식, 자유, 법치, 정의라는 오래 전에 확립된 개념들조차 그들에 의해 왜곡된 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를 강요당하는 전근대적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잦은 루머, 국가 공적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

많은 국민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과 비전이 무엇인지, 국가 발전 전략은 무엇인지 정권 출범 2년이 지난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더구나 국가의 근간을 흔들만한 외교, 국방, 교육, 노동 정책들이 출처가 불분명한 채 뜬금없이 제시되고,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나 설명도 없이 슬그머니 철회되기도 한다.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고 국가안보와 재난 시스템이 마비될 위험이 따를 수도 있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격 실행되었다. 그 배경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의혹이 분분하다. 국제적, 국내적으로 어마어마한 도전에 직면한 나라의 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에 대통령실 이전을 최우선 과제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국민은 모르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루머들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그런 루머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갖게 하는 자료들이 유튜브나 신문지 상에 지속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왕(王)자가 쓰인 손바닥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것이 결정적 심증을 갖게 만들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루머가 국정 수행과 관련하여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국가의 공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 대한 불신과 리더십의 하락, 국정에 대한 국민적 기대 저하가 우려된다는 점에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국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정책 사안들이 이런 불확실한 출처와 불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민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한두 가지 정책의 잘못이나 국정운영의 실패에 대한 우려가 아니다. 국정의 방향과 전략 내용, 의사결정 체계와 결정 과정, 정책에 대한 책임 소재 등 국정 운영체계 전반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이 국민 사이에 가득하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이런 의혹과 불안의 정도는 국정 수행 평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국정의 판을 새로 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대한민국을 그야말로 리셋해야 한다.

전근대적인 국정 수행 체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3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취임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국정 수행 평가가 낮았던 대통령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대통령 취임 초반에는 긍정 평가가 통상 60~70%를 보인다. 심지어 80%를 넘는 대통령도 있었다. 그게 정상이다. 한두 가지 정책을 잘못 입안했거나 국정 수행 과정의 부실이 때문이라면 일시적으로 평가가 떨어지다가도 다시 회복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국민에게 인기는 없으나 반드시 해야 할 국가 발전 비전을 담대하게 추진하다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구조 개편이나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수도권 개발 억제나, 친환경적 생태 규제에 전력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국가 재정을 축내면서까지 초대기업에 과감한 감세 혜택을 주면서 노조는 범죄 집단처럼 대하고 있다. 비판적인 언론사들을 꼭 집어서 적대시하고, 시장 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사설 교육기관이나 강사들을 악의 카르텔로 단정하기도 한다. 남북 화해와 평화를 주장하는 세력을 친 북한 공산주의자로 매도한다. 국민을 끝없이 편 가른다.

그렇게 지지층의 결집을 통한 지지율 상승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음에도 결과는 이렇게 초라하다. 애초에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은 물론이고 지지했던 국민 상당수조차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 수행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체제 전반에 깔려 있는 비근대성이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한다. 조금 과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은 몇 가지 점에서 마치 공화정이 수립되기 전 중세 유럽의 전제 왕정 체제의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전제 왕정 체제의 특징이 이 정부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민주공화국에서 전제 왕정 체제로 회귀하는가?

첫째,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알고 있던 전제군주와 같이,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 국민적 관심사나 의혹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으며, 국민을 대신하여 국정을 비판하는 언론이나 야당 국회의원들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입틀막'으로 배제해 버린다. 신년 연두 기자회견을 녹화 대담으로 대체하고, 형식적으로나마 몇 달간 시행하던 도어 스테핑도 사소한 이유를 들어 중단해 버렸다. 대통령의 저속어 발언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태우지 않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와 사주에 대한 압수수색과 영장 청구가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집권 여당보다 많은 지지를 받아 다수당이 된 야당 대표와는 단 한 차례의 공식 대화도 하지 않고 있다. 모든 주권이 전제 군주에게 소속된 절대왕정 체제하에서나 가능한 국정운영 방식이다.

둘째, 경제적, 정치적, 사법적 특권을 가진 소수의 신분층이 존재한다. 프랑스 혁명 이전 봉건 신분제 사회에는 세 가지 신분층이 있었다. 그 중 상위 1%의 인구를 차지하는 제1신분인 성직자와, 2%의 인구에 해당하는 제2신분인 왕족과 귀족이 상층부 특권층을 이루었다. 그들은 국가의 땅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납세의 의무는 면제받았다.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는 경우 그들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제3신분의 평민은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압박을 받았다.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특권 신분의 존재에 따른 불평등한 세제와 수탈적 국정운영은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원천침례교회에서 열린 '3·1운동 105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중세 귀족인가

중세 귀족은 경제적, 정치적 특권에 더하여 사법적 특권까지 누렸다. 먼저, 귀족은 일반 법정이 아닌 귀족만의 특별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러한 사법제도는 귀족에게 더 관대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을 높여주었으며 때로는 법의 엄격한 적용을 회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영지 내에서 사법권을 직접 행사할 권한이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법을 해석하여 집행하곤 하였다. 마지막으로, 귀족은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 자체가 면제되었다. 성직자나 귀족의 사법적 특권은 이들 특권층의 불공정, 불법행위를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제3신분인 평민에게는 심각한 인권침해와 위협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부의 대물림에 따른 유사 신분 계급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 제도에 의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한 없이 행사하는 신분이 허용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검찰이라는 특수한 신분은(물론 일부이기는 하지만) 어떤 권력에도 통제받지 않는 특수계급이 된 지 오래다. 특별히, 특수부 출신 검찰총장에서 곧바로 대통령이 된 윤석열 정부에서는 정부 기관과 산하기관, 심지어 정당의 요직까지 검찰 출신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그들은 행정부, 입법부, 언론까지 통제하고 사법부에도 영향을 미치는 최고 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때로는 선택적 수사와 기소로 정치검찰의 역할을 자처하여 국민의 불신과 원성을 사고, 때로는 자신들의 특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무자비하게 수사하여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기도 하고, 마치 중세 시대 귀족과 같이 사법 처리 특권자의 모습을 국민에게 거리낌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나아가 고위 검사 출신 변호사가 전관예우로 한 해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수임한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을 고액 연봉 비상임 자문역으로 두고 유사시 법적 리스크를 해소하려는 기업이나 사업가들이 넘쳐난다. 전 현직 검찰이나 그 가족은 어떤 경우에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로 확인하였기에 벌어지는 불의한 병리적 현상들이다. 이는 국민, 특별히 정의롭고 열정 있는 젊은이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국회와 언론의 견제, 감시 기능 사실상 무력화해

마지막으로, 이 정부는 삼권분립이 헌법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형해화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절대 왕정 국가에서는 입법, 사법, 행정의 세 권력을 모두 전제 군주가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 공화정이 수립되면서 삼권분립으로 국가권력의 분산과 상호견제를 통해 권력자의 국정 농단과 국민주권 침해의 위험을 막았다. 국민의 자유와 평등과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증하려면 국가권력이 집중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입법부의 주요 기능의 하나인 행정부 견제와 감시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삼권분립이 없던 전제 왕정 시대와 닮아 있다. 여당 대표 선출에 대통령이 관여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국정 파트너인 야당의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도무지 권력 행사 외에 국정운영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야당이 발의하여 통과시킨 민생관련 법안들을 그 필요성과 긴급성 여부와 관계없이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무산시키고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과 관련된 '특별검사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이해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불법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 와중에 언론은 따져 묻지도 않는다. 제4부인 언론의 자유는 찾기 어렵다.

민주화 이래 과거 어떤 대통령, 어떤 정부도 이렇게 대놓고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시킨 적이 없었다. 정부의 주요 개혁 정책은 국회 입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야당과 협치하지 않겠다는 것은 집권 5년 동안 국가 발전을 위한 중요 정책을 일절 수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모든 국가가 치열하게 국익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이 때에 윤 정부가 5년 동안 현상 유지만 하고 보낸다면 우리나라는 재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실제로 외교, 안보, 언론, 민생 등 거의 모든 국정 분야에서 퇴행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더해 압수수색과 영장 청구 남발로 비판 언론을 길들이는 일이 계속된다면 국민주권주의와 민주공화국의 정체를 잃어버리고 후진국 체제로 전락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4.10 총선, 공정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되찾는 출발점 돼야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정부를 비판하려면 가장 먼저 검찰 캐비닛을 떠올리며 두려워해야 하는 공포 정치가 나라의 모든 활기를 잠식시키고 있다. 전제 정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는 봉건적 구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며 민주공화주의 정체의 기본가치를 져버리는 것이다. 국민주권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각성하고, 이 땅에 민주공화주의 회복을 위해 결연히 나서야 할 때이다. 2024년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시민이 힘을 모아 함께 한다면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재섭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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