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라더'로 군림하는 쿠팡, 입도 뻥끗 말라는 '족쇄'를 쓰다

[인권의 바람] 나의 노동이력으로 권력의 성을 쌓지 마라

2월 13일 문화방송(MBC)은 쿠팡플필먼트(CFS,물류센터)가 일용직·계약직 노동자들 중 재취업 제한 대상자 명단을 작성하고 관리해왔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쿠팡대책위)는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법적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명단에 기재된 사람이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취업에서 배제된다면, 이는 지난 1970~80년대 독재 시절 횡행했던 블랙리스트라 할 수 있다.

쿠팡 사측은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단지 인사자료일 뿐'이라며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회견 당시 공개된 자료를 보면 주장과 다르다. 해당 문건은 이름, 생년월일, 로그인 아이디, 연락처, 퇴사일 등의 정보가 다 들어있는 자료로 쿠팡 사측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정보이며, 일상적인 인사관리 명부라 할 수 없다.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총 1만 6450명으로 규모도 크고 장장 6년으로 기간도 길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은 영구적으로 또는 최소 24주간 쿠팡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명백한 블랙리스트다. 블랙리스트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에 대한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40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를 작성해서는 안 된다. 또한 노조 간부나 전진 노조원을 별도 분류한 것으로 보이는 '대구센터' 등 사례는 노조 탄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노조 활동을 사유로 한 취업 제한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81조를 위반하는 부당노동행위다.

현장 취재를 막기 위해 기자까지 블랙리스트 명단에

게다가 이번 명단에는 기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기자 71명의 이름과 연락처 등이 2023년 9월 27일에 한꺼번에 등록됐다. 근무한 적도 없는 기자들을 '잠실센터'로 표기해서 관리하고 있었다. 쿠팡 취업 전력과 상관없이 쿠팡의 노동실태 등을 보도한 기자, 경찰청과 서울시 경찰청 출입기자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명백한 개인정보호법 위반이다.

그동안 쿠팡 사측은 열악한 노동 현장을 은폐하고 '뉴스룸'이라는 자체 언론대응팀을 운영해 언론보도 차단에 애써왔을 뿐 아니라 비판 보도를 한 언론을 고소 해왔다. 기자들 명단까지 관리했다는 것은 기자들이 쿠팡의 노동실태를 보도하는 것도 막겠다는 의지다. 설령 기자가 쿠팡에 취업해서 그 내용을 보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탐사보도, 르포보도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쿠팡은 노조 활동을 한 사람을 징계나 재계약 거부라는 방식으로 해고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현장의 실태 보도는 우리 사회의 공익을 위해 필수적이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취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쿠팡의 발상은 오만방자하다.

ⓒ연합뉴스

노조활동만이 아니라 육아까지 포함

50개에 이르는 취업제한 사유는 쿠팡 사측의 천박한 인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정상적인 업무수행 불가', '안전사고 발생우려가 있는 자' 등 주관적인 기준도 문제지만,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육아를 취업제한 사유에 포함시킨 것은 기가 차다. 노동자를 인권이 있는 존재로 보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특히 육아 등을 취업제한 사유에 포함시킨 것은 쿠팡자본의 '가부장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돌봄책임이 여성에게 전담되어 있는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이런 블랙리스트는 대다수 여성이 취업이 어려울 뿐 아니라 취업하더라도 회사의 부당한 요구를 감수하고 눈치보게 만들 것이다.

사실 쿠팡의 노동인권 침해는 이미 여러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노동자들에게 감염 예방 조치나 고지를 제때 하지 않아 집단 감염사태를 낳았다. 과로사도 빈번했다. 노동조합을 설립한 지 3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 단협조차 맺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폭력 사건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가해자를 두둔하기도 했다.

쿠팡은 노동재해 은폐도 서슴지 않았다. 2021년 덕평 물류센터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의 미작동 등 안전관리 문제가 불거졌을 땐, 김범석 대표가 사임을 발표하면서 기업주로서의 책임을 지지하지 않아 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일어 대대적인 쿠팡 불매 및 쿠팡 탈퇴운동까지 번진 적도 있다. 물론 쿠팡은 지금까지 노동자의 산재사망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빅브라더로 군림하는 쿠팡

이번 쿠팡 블랙리스트 사태 보도를 보며 쿠팡에서 단기나 장기로 일하는 30대, 40대 친구들이 떠올랐다. 필자의 친구들 중에는 노조와 상관없는 이도 있고, 노조 활동을 한 사람도 있다. 본인이 퇴직을 한 후에도 이렇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얼마나 끔찍해할까.

그런데도 쿠팡은 사과는 고사하고 시종일관 당당하다. 블랙리스트 보도가 처음 나간 후에도 쿠팡은 뉴스룸을 통해 "CFS(쿠팡풀필먼트)는 매년 수십만 명의 청년, 주부, 중장년 분들에게 소중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마치 본인들이 좋은 기업인양 발표했다. 알다시피 쿠팡은 많은 여성, 청년, 중장년 노동자들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노동환경을 고려하면 결코 질 좋은 일자리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 외에도 여름철 에어컨조차 가동하지 않을 정도로 냉방도 제대로 하지 않는 열악한 일자리다.

그럼에도 이들이 그곳에서 일하는 이유는 쉽게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게 취업할 수 없는 문, 즉,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블랙리스트가 노동자들에게 '쿠팡에서 일하려면 그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입도 벙끗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호로, 족쇄로 작동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러하기에 쿠팡 블랙리스트는 노동권의 침해이자 사생활에 대한 감시인 동시에 사상과 양심에 대한 통제로도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거대 기업이 개인의 일상을 기록하며 관리한다는 것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와 다름없다. 소설 속 포스터에 나오는 빅브라더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그림의 눈과 시선이 마주치도록 해서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대 권력의 힘을 과시한다. 노동자의 일상을 통제해 관리하겠다는, 그렇게 해서 노동자의 인권을 빼앗겠다는, 심지어 당신이 퇴직해도 관리 대상으로 삼겠다는 쿠팡 자본의 발상은 전체주의적이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휴게시간 보장 등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하루 파업에 나선 지난해 8월 1일 인천시 서구 오류동 쿠팡 인천4물류센터 앞에 센터 내 체감온도가 34.5도에 이른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이제 쿠팡이라는 빅브라더를 깰 때

쿠팡의 반 헌법적이고 반 인권적인 전체주의적 태도를 키운 것은 국가다. 그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행정부는 방관만 하고 사법부는 관대했기에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하고 감시하고 통제한 것에 대한 쿠팡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쿠팡대책위는 집단소송을 준비할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그리하여 쿠팡이 블랙리스트를 운영하며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반드시 처벌받게 하자.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길 바란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없더라도 쿠팡에 일했던 사람들이 "나의 노동 이력으로 쿠팡이 탐욕적 권력을 휘두르는 데 동의한 적이 없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쿠팡에 일하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노동 이력은 노동권을 침해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외치면 좋겠다. 그렇게 존엄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모아 보자. 그렇게 쿠팡노동자들의 인권을 되찾는 데 함께 연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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