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기존의 '불공정 의료생태계' 그대로가 의료개혁?

[시민건강논평] "'필수의료 패키지'는 의료'개혁'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이하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의료'개혁'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의 방식을 새롭게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내용을 보면 크게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공정 보상 등 4가지 핵심과제를 도출하고, 각각의 과제를 위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패키지는 발표하자마자 환자·시민단체, 의사단체 등으로부터 다양한 시각에서 비판받고 있다.(☞ 관련기사 : <라포르시안> 2월 2일 자 '환자·시민단체·의료계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우리는 각각의 내용들을 뜯어보기보다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의료'개혁'에 대해 고민해 본다. 발표된 패키지에서도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위기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며, 중장기적 구조개선을 포함하는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적 문제는 불공정한 의료생태계를 가리키는데, '필수의료 기피 및 이탈에 의한 필수의료·지역의료 위기'가 핵심적인 내용이다. 특히 의료사고 부담이 커서 위험도는 높지만 보상이 부족하기 때문에 필수의료를 기피·이탈하는 상황을 본질적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뜯어고친다는 '개혁'이라는 의미를 상기했을 때, 개선해야 할 구조는 불공정한 의료생태계 그 이상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윤석열 대통령은 2월 1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 민생토론회를 주재했다. KTV 방송 갈무리.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의 방향성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있다. 먼저 시장중심적 의료체계는 정말 지역의료를 강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시장실패로 발생한 문제들을 시장원리를 통해 해결할 수 없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은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번 패키지도 필수의료에 더 많이 보상하고, 필수의료를 수행하는 의료기관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필수의료를 수행할 의료기관 자체가 없는 곳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 내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는데, 기관이 있어야 네트워크 구축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역 인구가 줄어들면서 시장 자체가 붕괴한 곳에 지금 약속한 보상과 지원을 바라고 민간의료기관이 들어서리라 기대하는 것은 그냥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추세라면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지역이 더 늘어날 것인데,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서 지역의료를 강화할 수 있을까.

시장이 작동하더라도, 시장이 야기하는 불평등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의 '빅5' 병원과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시장이 작동한 결과 아닌가. 국립대병원을 지원하는 한편, 시장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규제를 푸는 것은 국립대병원이 지역 의료에 대한 책무성보다 수익성을 더 우선하게 만들 우려를 더욱 키운다.

둘째, 중앙에 집중된 권한과 자원, 책무, 의사결정은 지역주민들의 삶과 고통에 얼마나 잘 반응하는가. 이번 패키지가 나오기까지 보건복지부에서는 각계와 소통하고, 각 지역을 방문하며 간담회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간담회를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대표성 있는 사람들과 내실 있게 진행한다 하더라도, 중앙과 지역 사이에 시간과 공간의 갭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각 지역에서 주민들의 고유한 필요와 고충을 파악하고, 그에 맞춘 기관 운영과 사업을 일상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면, 훨씬 주민의 삶과 밀접한 정책과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지방정부와 보건의료 기관이 중앙정부 정책을 단순히 수행하는 주체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직접적인 책무성을 가졌을 때 지역의료 위기 해결에 대한 압력 역시 커질 수 있다. 물론 지방정부의 책임이 커진다고 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걸맞은 자원과 권한이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과 같이 지역에서 중앙의 사업에 지원해서 사업비를 받는 형태가 아니라 지방정부에 충분한 자원이 있고, 필요에 따라 이를 할당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 거기다가 지방정부가 자원과 권한을 주민의 필요에 따라 충분히 투입하도록 압박하는 주민의 조직된 압력도 중요하다.

셋째, 우리는 어떤 의사를 원하는가. 패키지에는 의사 수 확충 이외에도 교육·수련 환경 개선, 보상체계를 비롯해 의사를 위한 많은 정책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어떤 가치와 윤리적 기준, 전문성을 가진 의사를 원하는지, 그러한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선발, 교육,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가면 좋을지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과 논의는 필요한 의사 수 및 진료 분야, 지역 분포 너머의 논의이면서도 이들 주제와 연결된다.

보상체계에 집중한 이번 패키지가 우려스러운 것은 의사를 금전적 보상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상정하고, 그런 존재로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선택하는 이유,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원인의 상당 부분이 보상체계에서 기인한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일부 의사들에게 열정과 사명감만 요구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비금전적 동기,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무언가를 찾는, 현재의 조건을 바꾸는 시도가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 아쉽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각기 독립적인 과제가 아니라 서로 얽혀 있으면서 보건의료 바깥의 사회구조와도 관련이 깊다. 사회 전반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인식과 수준이 낮은데, 보건의료만 공공성이 높기는 어렵다. 수도권의 비수도권 수탈 체제의 개선 없이 지역의료 강화는 한계가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능력주의가 팽배한 데, 입시생들에게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의사들만 능력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결국 의료개혁은 사회개혁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주민의 관점에서 기존의 관계(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부와 의사, 정부와 주민, 주민과 의사 등등)와 그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꿔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기존에 해왔던 시장주의적, 중앙집권적 방식 그대로 추진하는 정부의 패키지는 의료개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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