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에 해고당한 한국 노동자, 그들 옆에 선 일본 노동자

[기고] 아하시글라스에 맞선 한일 노동자 연대의 역사와 현재

노동조합이라는 신세계

"현장에 들어가서 직접 노동조합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일본으로 건너간 차헌호 씨의 이야기를 들은 일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는 20대에 구미공단 금강화섬에서 폐업투쟁을 했다. 투쟁은 끝나고 1년간 구속되었지만 출소할 때는 꿈이 생겼다. 구미공단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일본 기업인 AGC화인테크노코리아(이하 아사히글라스) 간판을 보고 구미공장에 취업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이었다. 6년을 준비했다. 노조를 시도하다가 먼저 해고되었지만, 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노동조합을 설립한다고 선포했다. 2주 만에 그가 속한 (주)GTS 노동자 138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노동조합 만들어서 인간답게 살아보자'

노동자들은 '단결투쟁'이 적힌 빨간 머리띠를 매고 일했다. 출근 조회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작했다. 작업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컨베이어 속도는 빨랐다. 노조 집행부가 현장사무실로 찾아가서 인원을 충원하라고 항의했고,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스스로 컨베이어 속도를 줄였다. 여유가 생겨서 일할 맛이 났다. 관리자들은 다가오지 못했다. 간섭도 하지 않았다.

'이게 노동조합이구나'

노동조합이라는 신세계를 만난 지 한 달 만에 (주)GTS 노동자들은 모두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노동자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싸우겠다고 남은 22명,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이하, 아사히지회)는 민주노조를 안고 현장으로 들어가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10년째 투쟁하고 있다.

일본 원정, 그들을 맞이한 사람들

해고되고 얼마 후 아사히지회는 일본 본사를 찾아갔다. 일본 원정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금속노조 KEC지회가 도로치바(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를 소개했다.

"일본 기업한테 해고당한 노동자가 일본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많이 긴장했었어요."

그들의 첫 일본원정을 맞았던 가마타 씨는 10년 전에 일본으로 건너왔던 민동기 씨와의 만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해고자가 직접 일본에 온다고 해서 감동했어요."

자신의 나라, 일본 기업이 한국 땅에 침략하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일회용품을 쓰다 버리듯이 해고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지만, 도로치바와 도로치바를 지원하는 단체, KEC지회를 지원했던 단체가 긴급히 모였다. 선전물을 쓰고, 손피켓과 현수막을 제작했다. 일본전역에 있는 아사히글라스 생산공장을 파악하고, 집회와 시위물품을 챙겼다. 아사히글라스 본사에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건 통역이었다. 이역만리 바다 건너온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맞을 준비로 바빴다.

아사히지회와 처음 만난 날부터 도쿄 본사 앞에서 선전전이 시작되었다. 도쿄 서쪽 지방인 가나가와현 츠루미 공장에서 선전전도 했다. 아사히지회가 일본 아사히글라스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난했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 동행해 줄 동지들을 일본에서 만났다.

▲ 2019년 11월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한국에 방문한 일본지원공투 연대자들이다. 아사히글라스 구미공장 앞 아사히지회 천막농성장에도 방문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들꽃, 일본에도 피었다

"2015년도에 처음 아사히 노동자들이 일본을 왔을 때, 2차 원정은 언제 올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들꽃, 공단에 피다> 책을 읽었어요. 일본어로 번역해서 널리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들꽃, 공단에 피다>는 아사히 노동자 22명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가마타 씨는 일본 노동자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었다. 그러다 2018년 3월 AGC 주주총회를 앞두고 아사히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본어로 번역한 책을 훗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노동자들에게 800권이나 배포했고, 아사히 투쟁을 알렸다.

"책을 읽고 난 일본의 젊은 노동자들은 일본과 한국의 노동환경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해고되어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지 않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합니다."

시미즈 씨는 일본어로 번역된 책으로 아사히지회를 만났다. 책 속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절망과 시련을 겪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해고당해 긴 싸움을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느꼈다. <들꽃, 공단에 피다> 책을 읽고 나서 그들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구미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

"도로치바도, 우리 노조도 규모가 작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원 요청을 받으면 우리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사히투쟁지원공투를 만들고 사무국장을 맡을 때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연대하면서 노동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무국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시미즈 씨는 군마합동노조 위원장이다. 군마현은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고, 군마합동노조는 지역의 개별노동자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가입할 수 있는 지역노조라고 한다. 시미즈 씨는 아사히글라스가 좋은 기업 이미지로 국제사회에 거짓 광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뺏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나쁜 기업이라는 걸 밝히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일본지원공투가 만든 선전물이다. AGC본사와 일본공장에서 정기적으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나는 센 자본이 좋더라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지하철을 타니까, 아사히글라스 광고가 막 붙어 있는 거예요. 유명한 배우가 광고에 나와요. 한국에선 아사히글라스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잖아요. 일본에선 광고가 막 붙어 있길래 신기했어요."

차헌호 씨의 말이다. 아사히지회가 3차 일본 원정을 떠난 건 2018년 10월이었다. 아사히글라스 도쿄 본사는 미쓰비시 기업이 소유한 건물이다. 아사히글라스는 미쓰비시의 계열사에 전범기업이란 뜻이다. 도쿄 본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차헌호 씨는 아사히글라스가 센 자본이라고 느꼈다. 지금까지 버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난 센 자본이 좋더라고. 작은 자본은 말만 꺼내면 어렵다고 하는데, 어렵다고 하면 대화가 안되잖아요. 그게 더 싫더라고요. 아사히글라스는 어렵다는 얘기는 안 하잖아요. 그럼 힘만큼 따내는 거죠."

아사히지회가 일본 원정을 떠날 때마다 본사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사히글라스는 번번이 거부했다. 아사히글라스 본사 총무부는 'AGC화인테크주식회사가 적절히 대응하고 있고, AGC주식회사로서 코멘트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답변했지만, 아사히지회가 검찰을 상대로 줄기차게 싸운 결과 검찰이 아사히글라스를 불법파견으로 기소하게 만들었다. 아사히글라스는 파견법 위반 형사재판과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패소하였고, 그 이후로 아무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지원공투는 아사히글라스 도쿄 본사 앞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선전전을 한다. 본사 건물 근처에 일왕의 왕궁이 있어 정부는 거리행진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지원공투는 끈질기게 설득했다. 일본 시민들에게 아사히글라스의 부도덕한 기업행태를 알리고 싶었다. 행진은 본사 건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조금씩 아사히글라스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아사히글라스 근처에서 행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물을 볼 수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선전전을 하고 있으면 일본의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마타 씨는 당장 일본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지 않는다고 마음을 졸이지 않는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더 주목한다. 군마합동노조의 한 여성 조합원은 타국의 노동자를 위해서 묵묵히 선전물을 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는 거대한 자본을 향한 작은 목소리에 가마타 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다. 일본 노동자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 일본 도쿄에 위치한 AGC본사 건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국경을 넘는 노동자의 연대와 변화

"저는 처음에 (도로차바)노조 가입했을 때, 선배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작은 조직이라도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를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세계의 노동자를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의 노동운동이 많이 쇠락했지만, 일본 노동운동을 크고 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토 씨는 도로치바 부위원장이다. 사토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노동조합 ABC'가 생각났다. 노동조합의 정석이다. 사토 씨가 언제 노조에 가입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도로치바가 1987년 일본 국유철도 분할 사유화를 반대하면서 끝까지 투쟁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햇수로 37년째 싸우고 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노동자들을 공격하던 시기입니다. 미국은 항공관제탑노동자들을 해고했고, 영국은 탄광 광부 노동자들을 해고했습니다. 일본은 국철을 사유화하는 과정에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도로치바 외의 다른 노조들은 공격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투쟁하지 못했지만, 도로치바는 결의해서 투쟁했고, 사유화 이후에 새로운 회사로 들어가서 아직도 투쟁하고 있습니다. 지금 40여 명이 현장에 들어가려고 해고철회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이 국유철도 분할 사유화를 추진할 당시에 20만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퇴직하거나 강제전보를 발령받았다. 2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당시 도로치바 조합원은 1000여 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면 파업하면서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도쿄의 동부와 보소지방 전체를 휩쓴 철도파업이었다. 1047명의 대규모 해고사태가 벌어질 정도로 모든 국가권력이 동원되어서 노동조합을 엄청나게 공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도로치바는 1047명의 해고철회와 국유철도 분할 사유화반대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싸움이었다. 수는 점점 줄어 소수가 되었지만, 도로치바는 처음 노동조합에 가입했을 때 배웠던 대로,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노동자가 단결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사토 씨는 아사히지회의 투쟁이 자신의 일처럼 느껴졌다. 하루빨리 공장에 복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본사 앞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선전전을 했다. 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는 아사히지회를 상상했다.

시미즈 씨는 아사히지회가 중요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아사히지회가 싸우는 걸 지켜보면서 일본 노동자들도 자신의 삶을 위해 노조를 만들 수 있고, 투쟁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아사히지회가 승리하면 일본 노동자들도 영향을 받고 변할 거라고 믿는다. 그 변화를 만들려고 일본지원공투는 아사히지회를 지원하고, 노동자의 미래를 위해서 투쟁한다고 설명한다.

"계급적이라는 의미는 국경을 넘어서 연대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가 아시아를 침략했던 시절처럼 지금도 일본 기업은 KEC지회도 그렇고 아사히지회도 그렇고,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침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 노동자들이 일본 기업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일본 노동운동은 발전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미공단에서 투쟁하는 세 곳의 노조가 공교롭게도 일본 외투기업의 공장이다. 경제적인 침략은 일본 기업만 문제가 아니다. 자본은 손쉽게 이동한다.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은 보장하지만, 기업의 잘못을 규제하는 정부는 찾아보기 드물다. 한국 정부가 그렇다. 지역민의 고용을 창출한다고 공장부지 무상임대와 세금특혜를 제공하면서 외국투자기업을 유치한다. 자국의 노동자가 문자 한 통으로 해고당해도 기업을 규제할 방법을 찾지 않는다. 외국기업이 하루아침에 공장문을 닫고 이익만 챙겨서 떠나버려도 속수무책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공장에 화재가 났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화재보험금을 타면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음에도 청산절차를 밟겠다고 한 거다. 노동자들은 젊음을 바쳐서 일했다. 비참하게 쫓겨나지 않으려고 현재 두 여성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 일본 AGC주주총회 장소에 모여서 선전전을 진행한 아사히지회와 일본지원공투 노동자, 시민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도로치바노조가 특별한 이유

"도로치바는 전쟁반대 요구만 걸고도 파업을 했다는 거예요. 유치원 교사가 전쟁반대 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더라고요. 일본분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 보였어요. 신기했어요."

6차 일본 원정을 다녀온 차헌호 씨가 한 말이다. 전쟁반대를 걸고 파업을 했다니!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시미즈 씨가 도로치바는 특별하다고 소개했던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일본 치바현이라는 지역에 산리츠카와 도로치바가 있습니다. 산리츠카는 (농지수탈, 전쟁준비) 나리타공항반대 투쟁을 했던 곳으로 농민과 노동자들이 연대해서 파업했습니다.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되는 시기(1971)에 싸움이 시작되었는데요. 오키나와에서 베트남전쟁에 군사기, 군용기가 발사되는 시기였습니다. 오키나와 투쟁의 의미는 일본이 다시 침략전쟁을 하면 안된다. 침략기지가 되면 안된다고 하는 겁니다. 오키나와 투쟁도 산리츠카 투쟁도 침략전쟁을 하려는 일본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

산리츠카 투쟁은 올해 58년을 맞았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했던 역사가 있고, 전쟁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다. 우리가 일궈놓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침략국가의 노동자라고 봐주지 않는다. 시미즈 씨는 일본노동자가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일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학살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면서 반전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노동자가 고통받고 있는 상황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거 같습니다. 한국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상황을 공유하면서 일본에서도 일본 노동운동이 다시 일어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쟁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겁니다."

시미즈 씨에게 아사히지회는 특별하다. 어디에나 해고당해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항의도 못하고 다른 직장을 찾아서 떠난다. 아사히 노동자들은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하겠다는 포부를 늘 이야기한다. 시미즈 씨에게 아사히지회가 특별한 이유다. 아사히지회가 승리하면, 구미공단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은 해고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본에 맞서 투쟁할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자신의 권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권리를 파괴당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도 내야 한다. 시미즈 씨는 아사히의 승리가 한국과 일본 노동자들의 승리라고 굳게 믿고 있다.

가마타 씨는 승리가 성큼 다가온 듯이 감회에 젖어서 소원을 말한다.

"두 번째 일본 원정을 왔을 때, 장명주, 남기웅, 송동주 세 사람이 왔어요. 그들이 나이 들어 40대가 되었습니다. 민동기 동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동지들이 자신의 인생을 걸어서 투쟁하고 승리한다면 아사히글라스 본사에서 선전전을 하면서 승리 선언을 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가마타 씨는 ‘빨리 끝내는 게 중요하지 않고, 올바르게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차헌호 씨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일본지원공투도 올바르게 승리하기 위해서 아사히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 노동자를 조직하고 노동조합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다짐한다.

▲ 아사히지회의 초청으로 구미공단에 방문한 일본지원공투 일본활동가들과 수요일 투쟁문화제를 이야기 마당으로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미즈 소지 씨, 사투 마즈카스 씨, 가마타 요시코 씨, 오키야마 요시타다 씨. ⓒ아사히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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