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기준금리 인하 논의 자체가 부적절"

한은, 기준금리 8회째 동결…이 총재, 정부 규제 완화 '호평'

한국은행이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태영건설 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우려 등으로 인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금융시장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됐으나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논의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일축했다.

한편 이 총재는 포퓰리즘 논란을 낳은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정책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가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3.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은 "물가 여전히 높다"

이에 따라 한은은 작년 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후 가진 8차례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모두 동결 결정했다.

이로써 미국(5.25~5.50%)과의 기준금리 격차도 현 2.0%포인트로 유지됐다.

한은은 이날 배포한 통화정책방향에서 "물가상승률이 기조적인 둔화 흐름을 지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전망의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라며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동결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한은은 국내 경제를 두고 "고용은 실업률이 일시적 요인에 영향받아 높아졌지만 견조한 취업자수 증가세가 이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황"이라며 "소비와 건설투자의 회복세가 더디겠지만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개선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올해 성장률을 지난해 11월 전망치(2.1%) 수준에 부합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은의 이번 동결 핵심 요인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지난해 12월 물가 상승률은 3.2%였다.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3%를 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3% 내외에서 등락하다가 점차 낮아질 것"이며 "연간 상승률은 지난 11월 전망치(2.6%)에 대체로 부합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금리인하 코멘트 자체가 부적절"

이번에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리라는 전망이 강했지만,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예전처럼 유지됐다. 특히 태영건설 발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건설업 우려를 낮추려면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이에 관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방향 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 총재는 "시장 일각에서 올해 2~3분기 중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있는데 금통위의 의견은 '현 상황에서 금리인하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것"이라며 "몇 개월 내에 금리인하가 적절한지를 코멘트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잘라말했다.

이 총재는 현재 5인 체제인 금통위원들의 기준금리에 관한 입장에 관해서 "지난해 11월에는 (6인 체제일 때) 네 분이 향후 3개월 안의 기준금리는 3.75%까지 상단을 두자고 했고 두 분이 3.5%로 유지하자고 했"지만 "이번에는 (5인) 모두가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하되, 그 기간을 충분히 장기간 유지해 물가 안정 기반을 확고히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금통위가 기존보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 입장은 완화한 셈이다. 이에 관해 이 총재는 "일단 전체적으로는 물가 둔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 특히 11월에 비해 유가 상승 가능성이 떨어졌다"며 "저희가 주목한 하마스 사태를 비롯한 대외 경제 불안 요인의 위험이 완화해 현실적으로 지난해 11월보다는 기준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이 낮아졌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올해 첫 금통위는 박춘섭 전 금통위원이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된 가운데 후임자 인선이 이뤄지지 않아 금통위원 6인 중 한 명이 공석인 채로 열렸다.

"금중대 지원은 부동산 PF와 관련 없어"

한편 한은은 이날 금통위에서 지난해 11월말 확보한 중소기업 대상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 한도 유보분 9조 원을 활용해 고금리로 인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한시 특별지원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금중대는 한은이 저리로 시중은행에 자금을 공급해 이 자금을 오직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 확대를 지원하는데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한은은 특히 비수도권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9조 원의 80퍼센트 수준인 7조2000억 원을 한은의 15개 지역본부에 배정하기로 했다.

이에 관해 한은이 대외 입장과 달리 이번 금중대 특별지원을 결정한 배경에 부동산 PF 불안이 자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 총재는 "금중대 지원 결정과 태영PF 사태는 무관하다"며 "한은은 특정 산업의 위기에 대응하지 않고, (예를 들어 건설업 위기가) 경제 시스템 전체 위기로 이어질 때만 대응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그럼에도 이번에 금중대 지원을 결정한 배경으로 "지원 결정 후 실제 적용까지 준비기간이 2개월 정도 필요하다"며 "지금 시작해도 2, 3월이 돼야 실질적으로 지원이 이뤄진다는 시차를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아울러 "이번 금중대 지원의 가장 큰 이유는 기준금리 인하 논의가 시기상조인 현 국면에서 고금리로 인해 영향받을 지방의 취약 중소기업을 선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이라며 "실제 금통위원 내에서도 논란 끝에 내려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다만 그 '논란'의 배경에도 역시 부동산 PF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다섯 분 중 조윤제 위원은 '지금은 물가 안정을 강조해야 하고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데 금중대 지원은 한은 정책기조와 다른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반대 소수의견을 제시했다"며 "그럼에도 다른 위원은 그 같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금중대 지원이 경제 전체의 유동성을 크게 늘리는 건 아니고 선별적 지원에 해당하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취약 중소기업의 체력을 올려) 고금리 기조를 더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조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견해를 표명해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정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긍정 평가

한편 이 총재는 전날 정부가 발표한 재건축·재개발 규제 철폐 정책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 총재는 "어제 발표된 국토교통부의 대책은 공급을 늘리는 대책"이라며 "미래에 증가할 부동산 공급 계획을 알려줘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장점이 있고, 이번 대책이 부동산 PF 시장의 연착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전날 정부의 정책은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이 심지어 정부에 우호적인 <조선일보>로부터도 제기된 바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자 '거의 매일 쏟아지는 선심 정책, 뒷감당되나' 사설에서 전날 논란이 된 정부 대책을 두고 "모두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줄 정책들인데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대통령을 통해 '깜짝' 발표됐다"며 "지은 지 30년밖에 안 된 아파트를 부수고 재건축한다는 것은 세계에 없을 국가적 낭비다. 이마저 안전 진단도 없이 한다니 상식에 맞지 않는다. 아파트를 주거가 아니라 돈 버는 투기 수단으로 여기는 세태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에 관해 이 총재는 "이번 정책이 가계부채를 더 늘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그건 (공급이 아닌) 수요 측면의 문제"라며 "이 공급 정책을 받기 위해 (시장 수요자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대출이 급증하지 않도록 조절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내려가도록 하는 건 규제당국과 한은의 (앞으로) 책임"이라고 밝혔다.

신생아특례대출도 긍정평가

이 총재는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신생아특례대출과 청년주택드림대출 등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정책에 관해서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이 총재는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듯 가계대출 자체를 줄이는 것보다 중장기 차원에서 GDP 대비 비중을 낮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신생아특례대출로 인해 가계대출이 다시 증가할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가계부채 증감에 영향을 더 미치는 건 대출 정책 자체보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총재는 "바로 그 점에서 한은이 고금리 기조를 장기적으로 가져가서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 심리를 줄여주는 게 정부 정책만큼 중요한 팩터"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 총재는 신생아특례대출에 관해 "(출산율 상승 기대를 올리는) 제도가 좋다고 해서 소득수준이 낮은 젊은층에도 무조건 돈을 빌려주는 게 좋은지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정책금융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이 총재 입장에 관해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잡을 생각이 없었다' 칼럼에서 "이 총재는 당장 한은 차원에서 사용 가능한 정책 수단(취약계층을 보호하면서 기준금리 인상하기 등)을 동원해서 변화를 추구할 마음이 없다"며 그러나 "이창용 총재가 말하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가계부채는 적극적인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한편 이 총재는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 여부에 관심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 고민이 중국경제"라며 "우리에게 정말 어려운 건 중국과 우리의 무역 구조, 서플라이 체인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과거의 성장 공식이 (올해 중국 경제가 살아난다 한들) 우리에게 미칠 영향이 과거와 같을지는 (불확실해) 예측이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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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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