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파괴 2차 대전 독일보다 심각"…'또 연기' 안보리 결의안 '누더기' 우려

독일선 폭격 지역 건물 40~50% ·가자 북부선 60% 이상 파괴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파괴 정도가 2차 대전 때 수년 간 이어진 폭격으로 인한 독일 지역 파괴보다 심하다는 전문가 분석이 제기됐다. 재차 연기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가자지구 관련 표결에서 미국이 지지를 시사했지만 수정폭이 커 이번엔 러시아 등 다른 이사국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이하 현지시각) <AP> 통신은 전문가 분석 결과 석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폭격 기간 동안 가자지구의 파괴 정도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연합군의 독일 폭격보다 어떤 면에서 더 크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미국 군사 역사가 로버트 페이프가 1942~1945년 연합군이 독일의 주요 도시와 마을 51곳을 폭격했을 때 이 지역의 40~50% 가량이 파괴됐고 독일 전체로 보면 10% 가량의 건물이 파괴됐지만 가자지구의 경우 건물 33%가 파괴됐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그는 "가자지구 작전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민간인 처벌 작전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AP> 는 뉴욕시립대 대학원 센터 박사과정생 코리 셰어와 오레곤주립대 교수 제이먼 밴덴혹의 위성 데이터 분석을 인용, 이스라엘이 초기부터 공격을 집중한 가자지구 북부 건물의 61.6%, 이달 초부터 공격을 강화한 남부 칸유니스 건물의 24.7%가 파괴됐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남부 공세 첫 2주 만에 칸유니스 지역 파손된 건물 비율이 거의 2배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공습에 900kg가 넘는 대형 폭탄을 동원했을 뿐 아니라 공습 빈도도 매우 높았던 점이 파괴 규모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분쟁 추적 단체 에어워스에 따르면 2014~2017년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 동안 다국적군이 1만 5000회의 공습을 가한 데 반해 지난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2만2000회의 공습을 가했다고 밝혔다고 <AP>는 전했다.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가자지구 사망자가 2만 명, 부상자는 5만 2000명을 넘기며 어느 때보다 의료 서비스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지구 북부에 이제 제대로 기능하는 병원이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20일 소셜미디어(SNS)에 이날 세계보건기구가 다른 유엔 기구들과 함께 가자지구 북부 알아흘리 병원과 알시파 병원에서 의약품 전달 등 지원 업무를 수행한 결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가자지구 북부에서 부상자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이었던 알아흘리 병원의 수술실이 "전문의, 전력, 연료, 물, 식량, 의료용품이 고갈되거나 완전히 사라져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밝혔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가자지구 북부에는 제대로 기능하는 병원이 없다"고 선언하고 4곳 병원에서 매우 제한적인 치료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알아흘리 병원에 10명 가량의 의료진이 남아 있을 뿐이며 다리 잃은 10살 소녀와 가슴에 총상을 입었지만 즉시 수술을 받지 못한 노인을 비롯해 넘치는 환자들에 기본적인 응급 처치, 통증 관리 등 만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세계식량계획(WFP)은 21일 가자지구 인구의 4명 중 1명이 "재앙적 기아"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 및 다른 유엔 기관, 비정부기구(NGO) 자료를 취합한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 보고서를 보면 이미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7일까지 93%의 가자지구 주민이 총 5단계로 분류된 식량 안보 심각도 단계 중 3단계(위기) 이상에 놓여 있었다.

보고서는 이달 8일부터 내년 2월 7일까지의 식량 안보 상황을 예측하며 이 시기엔 가자지구 전체 주민이 심각도 3단계 이상에 놓일 것으로 보이고 인구의 26%에 해당하는 57만 6600명이 "재앙"으로 이름 붙여진 5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봤다.

세계식량기구 수석 경제학자 아리프 후세인은 "이는 그냥 숫자가 아니다. 어린이, 여성, 남성 개개인이 이 통계 뒤에 있다"며 "인도주의적 휴전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휴전 협상 전망은 더 옅어졌다. <워싱턴포스트>를 보면 하마스는 21일 성명을 내 "포괄적인 침략 중단이 이뤄질 때까지 인질에 관한 대화나 교환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미국의 거부권을 피하려 이번 주 내내 표결을 연기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1일에도 가자지구 관련 결의안 표결을 하루 연기했다. 다만 <뉴욕타임스>를 보면 이날 린다 토마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어떻게 투표할지는 밝히지 않겠다"면서도 결의안이 작성된 대로 상정된다면 "지지할 수 있다"고 밝혀 수정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예정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결의안이 초안에서 크게 수정돼 오히려 러시아 등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이 받아들일지 불분명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수정안에서 "적대행위의 긴급한 일시 중지(suspension)" 촉구가 빠지고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인도주의적 접근을 즉시 허용하고 지속 가능한 적대 행위 중단 여건 조성을 위한 긴급한 조치" 호소로 대체됐다고 보도했다.

<AP>에 따르면 기존 "적대 행위의 긴급한 일시 중지(suspension)" 문구 또한 "적대 행위 중단(cessation)"에서 완화된 것인데 재차 수정을 거치며 아예 이 부분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결의안을 "휴전 촉구 결의안"으로 보도해 온 외신들도 이날부터 "구호 결의안"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이 문제를 제기해 온 것으로 알려진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구호 물자 검역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유엔에 "독점적" 감시를 맡기려 했던 내용도 관련 "유엔 기구"를 설립하되 "모든 관련 당사자"와 협의할 "조정관"을 임명하는 수준으로 완화됐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리처드 고완 유엔 국장은 수정안에서 적대 행위 중단 부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분명"하고 구호 물자 감시 관련 부분 문구도 "혼란을 야기한다"고 지적하며 유엔 기구에 관한 언급이 있지만 "너무 모호해 유엔에 영향력을 거의 주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매우 나쁜 상황을 기회로 바꾸는 데 성공했을 수 있다"며 "문구가 너무 많이 희석돼 미국 정부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특히 러시아는 통과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난 8일 유엔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13개국이 찬성한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제적으로 고립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21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주민들이 무료 식사 배급을 받기 위해 모여 들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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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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