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 처음이라 마음이 벅찹니다."
이달 8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농어촌·도서 지역 참여자(전국여성농민연합회 신지연 사무총장)의 발언이다. 그가 말한 '이런 자리'란, 병원까지 두세 시간이 걸리는 현실, 응급 상황에 대한 막연한 공포, 만성질환 관리의 부재 등을 주민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는 자리였다(☞관련 영상 바로가기).
그러나 곰곰이 곱씹어 볼 일이다. 농어촌 의료의 고통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그것을 주민의 목소리로 말할 자리가 2026년에야 처음 마련되어야 했는가. 6.3 지방선거가 코앞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 또는 반성은 어느 선거 공보물에서도 찾기 어렵다.
21일부터 6.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앞마다 현수막이 펄럭이고, 명함을 내미는 사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4년 만에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지방의원, 그리고 교육감을 뽑는다. 흔히 지방선거를 두고 '풀뿌리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곳이라 부른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공천은 중앙당의 영향력이 크게 작동하고, 유권자는 정작 우리 동네에서 무엇이 결정되는 자리인지 가늠하지 못한 채 거대 양당 정치를 좇는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그 사이 지역의 의제는 종종 중앙정치에 휩쓸려 사라지기도 한다. 몇 해 전 한 지역의 사례다. 지역 내 유일한 종합병원이 갑작스레 문을 닫은 일이 있었다. 주민의 생명이 걸린 사안으로, 주민 사이에서 '병원을 더 이상 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의제가 확산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중앙 이슈에 모조리 흡수되어 공공병원 설립이라는 대안은 주민 사이에서 관심을 잃게 되었다는 증언을, 당시 활동가에게서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지역 의제가 중앙 정치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구조 속에서, 후보들의 공약이 주민의 절박함을 담아내기란 애초에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보들의 슬로건은 대부분 "일 잘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식의 모호한 문구에 머문다. 누구의 관점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공약을 들여다봐도 분명치 않다.
기초의원으로 내려갈수록 정책 정보는 더 빈약하다. 독자들도 한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우리 지역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을만한 공약이 있는지 검색해보시라. 보건의료 분야는 전보다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심각해서, 공공병원 확대라는 한 줄짜리 공약이 있기만 해도 감사할 지경이다. 앞선 국회 토론회에서 들렸던 절박한 주민들의 목소리는, 정작 그 주민들의 생활권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후보들의 공약안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 안에서도 작은 변화의 움직임들은 있다. 예컨대 한 경남도지사 후보는 보건의료노조와 접촉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러나 이때 '들려지는' 목소리는 조직화 역량을 갖춘 노조 또는 활동가 조직에 한정되기 쉽고 그마저도 주로 도청 소재지 인근에 몰려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주변부에서 조직화되지 못한 주민들이 경험하고 있는 일상의 고통과 체념, 요구는 선거 국면 와중에도 여전히 표출될 길이 없는 것이다.
후보들이 공약에서 주민의 삶과 고통을 진정성 있게 다루지 않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농어촌, 섬 지역 주민의 고통이 정치사회적으로 충분히 문제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건강과 의료는 경제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거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다뤄져 왔다.
최근 들어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이들의 고통을 문제화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공급자의 관점에서 '의료 서비스 공급 부족'으로만 문제화되고 있다. 그러니 해법 또한 병원 유치, 의사 확보로 환원된다. 지역의사제라는 정책이 유일한 대안처럼 여겨지거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대안으로 여성 공보의 복무 의무화가 논의된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 틀 안에서 주민은 정책의 대상이자 관리의 객체일 뿐,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모색할 역량과 권한을 갖춘 주체로 등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역의 어느 위치에 어떤 병원이 필요한지, 주민들이 당장의 삶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진료 과목이며, 주민들은 어느 길로 어떻게 이동하여 병원에 가거나 가지 못하며, 만성질환 관리는 어떤 점에서 지속되기 어려운 것인지는 주민이 가장 잘 안다. 이것이 바로 주민의 지역 지식(local knowledge)이다. 문제는 이 지식이 정책 과정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의제 설정 권력에서 주민이 배제되는 이 구조는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 우리의 한 가지 진단은 이렇다. 보건의료운동이 정책운동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화된 질서 안에서 더 나은 법안과 더 큰 예산을 요구하는 운동에 머물러서는 한계가 있다. 정책운동의 성취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좋은공공병원만들기 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공공병원 확충 정책 운동을 통해 공공병원이라는 말을 주민 사이에서 알려 온 것은 상당한 성과이다(☞관련 영상 바로가기). 다만 정책운동은 그 속성상 행정·전문가가 설정한 제도적 틀과 체제 내부에서 진행되는 운동이기에, 시장화된 의료체제라는 근본 원인까지는 닿기 어렵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제는 주민 중심의 문제화에 기반한 정치운동(정치화)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여기서 정치운동이란 현실 정치 안에서 더 많은 자릿수와 더 큰 발언권을 확보하자는 의미와는 다르다. 흩어진 요구를 묶어 조직하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포기되어 온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세우며, 행정과 전문가 권력이 독점해 온 보건의료정책 과정을 주민이 주체가 되어 주도하게 하는 일이다. 이때 주민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찬반 투표나 형식적 의견 수렴 수준의 참여가 아니라, 주민의 지역 지식이 의제 설정 단계부터 작동하는 정치 과정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예컨대 정책운동은 이 현실을 '응급의료 자원 부족' 문제로 보고 현재의 체계 내에서 "닥터헬기를 늘리고 응급실 수가를 올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면, 정치운동은 주민의 관점에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농어촌과 섬 지역 주민들은 두 시간씩 이동해야만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는가!'. '왜 그 지역에서는 대중교통이 끊기고, 학교와 병원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사라졌는가!'. 정치운동은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로 엮어서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공통의 이름을 만들어내고, 그 이름 아래 흩어져 있던 분노, 요구, 필요, 고통을 묶어 '우리도 같은 시민인가'라고 저항하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이다.
물론 정치운동을 통한 의제 설정 권력의 재편이라는 과제가 한두 번의 시도로 이뤄질 리는 없다. 그것은 결국 주민이 자신의 언어로 문제를 말하는 작은 정치적 행위들이 누적되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 관점에서, 후보를 만난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후보님은 이 지역 어르신들이 어떤 병으로, 어디까지 가서, 얼마를 쓰는지 아십니까?",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까지 두 시간이 걸립니다. 임기 4년 동안, 이 시간을 어떻게 줄이시겠습니까?"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주민의 관점에서 문제를 규정하고 그것을 공적인 의제의 장으로 침투시키는 정치적 행위다(☞관련 논평 바로가기).
요컨대 정치화란 주민의 관점에서 그 문제 틀 자체를 다시 짜는 행위다. 이는 밤에 아플까 전전긍긍하는 농어촌 주민의 고통과 아이를 키울 때 병원이 없어 겪는 불안을 두고 주민들이 "농어촌에서 감히 아플 생각을 하느냐"고 자조하는 것을 넘어, 이것이 '정치적 자원 배분의 문제이자,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사회적 결단'의 문제라고 재프레이밍하는 작업이다(☞관련 영상 바로가기).
선거가 다가오지만 일희일비하지 말자. 지방선거가 지역민의 삶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비관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선거는 정치운동의 한 과정일 뿐 종착지가 아니다. 좋은 후보가 떨어져도 사회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그의 의지만으로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것 역시 금물이다. "국회에서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 처음"이라는 그 벅찬 말이 머지않아 일상적인 일이 되는 것, 주민의 입으로 보건의료의 문제를 정의하게 되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할 변화의 자리다. 그것은 선거 전에도, 선거 후에도 변함없이 해야 할 우리의 일이다. 고통을 더 시끄럽게, 더 자주, 더 오래 말하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