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협상·안보리 지지부진 속 "가자 인구 1% 사망"

2만 명 사망에 주민들 "숫자 되고 싶지 않다" 호소…안보리 휴전 결의안 또 연기

급물살을 타는 듯 했던 휴전 협상에 대한 기대가 하루 만에 다시 가라앉은 가운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당국은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가 가자지구 인구의 거의 1%에 달하는 2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20일(이하 현지시각)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제하는 가자지구 정부 언론국은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2만 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석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 220만~230만 가량인 가자지구 인구의 거의 1%가 사망한 것이다.

가자지구 사망자 수는 일반적으로 가자지구 보건부가 발표하지만 집계의 기반이 되는 병원들이 이스라엘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종종 발표가 지연돼 왔다. 유엔(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가자지구 보건부가 20일엔 사망자 집계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9일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누적 사망자는 1만 9667명으로 지난달 말 7일간의 임시 휴전 기간을 제외하고 가자지구에서 평균 하루에 300명 가량이 숨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론국 발표 수치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부에 따르면 사망자 중 70%가 어린이와 여성이고 부상자 수는 19일까지 5만 2586명에 달한다.

가자지구의 민간인 사상은 최근 분쟁들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17년 6~10월 시리아 라카에서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기 위한 미국 주도의 연합 작전에서 16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지난달 유엔은 거의 2년 가까이 지속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소 1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2014년부터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을 추적해 온 영국에 기반을 둔 단체인 에어워스의 에밀리 트립 이사는 BBC에 가자지구의 민간인 사망이 "우리가 기록해 온 모든 분쟁의 피해율을 훨씬 넘어섰다"고 말했다.

BBC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가자지구에 45~900kg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폭탄이 대량으로 떨어지며 민간인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방송은 영국에 기반을 둔 민간인에 대한 무장 폭력을 추적하는 단체 무장폭력대응행동(Action on Armed Violence)의 조사 결과 2011년~2011년 전세계적 분쟁에서 인구 밀집 지역에 폭발성 무기가 사용됐을 경우 평균적으로 사상자의 90%가 민간인이었다고 설명했다.

미 CNN 방송 보도에 따르면 가자지구 폭격 때 사용된 폭탄의 절반이 '멍청한 폭탄'으로 불리는 무유도탄으로 이 또한 민간인 사상자를 키운 원인이 됐을 수 있다. CNN은 지난주 미 국가정보국 정보 평가를 본 세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평가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사용한 2만 9000여 발의 공대지 폭탄 중 40~45%가 유도 기능이 없어 정확도가 떨어지는 무유도탄이었다고 보도했다.

BBC는 네덜란드 평화 단체 PAX의 군사 전문가인 마르크 갈라스코가 무유도탄이 "최대 30m까지 빗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하마스 본부를 겨냥했다 해도 수십 미터 빗나가 민간인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BBC는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9명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탈랄 아부 나헬(24)이 폭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매일 우리가 다음 차례라는 생각이 든다"며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되고 싶지 않다. 2만 명의 희생자 중 한 명이 돼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이스라엘연구소장인 도브 왁스먼은 "이 전쟁은 하마스를 파괴하기보다 가자지구를 파괴하고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 것"이라며 "이는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더 많은 공격성을 불러 일으키고 무장 저항에 대한 지지를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19일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이 "또 다른 교전 중지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하고 다음날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집트를 방문해 휴전 및 인질 석방 관련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관측되며 두 번째 휴전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치솟았지만 이내 다시 교착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BBC는 20일 하니예가 참석한 이집트 카이로 회담에 정통한 팔레스타인 고위 당국자가 회담이 "결과 없이 끝났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이집트 쪽이 또 다른 인도주의적 휴전을 제안했지만 하마스는 "일시적 해결책"을 거부했고 "최종 휴전 전엔 어떤 (인질) 교환 협상도 없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회담이 계속 진행될 예정이고 이집트 쪽은 며칠 안에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낙관하고 있지만 상황이 쉽지 않고 협상이 어렵고 길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방송에 전했다.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집트 관리들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남은 여성과 어린이 인질, 고령 남성 인질을 포함한 40명의 인질을 석방하는 대가로 일주일간의 교전 중단 및 추가 인도주의적 지원 반입을 제안했지만 하마스가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미 매체 <악시오스>는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해당 제안을 보도하며 지난 휴전 종료 뒤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제시한 휴전안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일 위스콘신주 밀워키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가자지구 인질 협상 관련 질문을 받고 "현시점에선 기대가 없지만 추진 중"이지만 현 시점에서 조속한 타결을 기대하고 있진 않다는 취지로 답했다.

2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 표결은 또 다시 하루 미뤄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외교관들이 이번 연기는 협상 시간을 더 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구호 물자의 검사 주체를 이스라엘에서 유엔으로 변경하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해당 안의 찬성자들은 검사 주체가 유엔으로 전환되면 이스라엘 검사로 종종 구호품 수송이 늦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원조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그러나 한 미국 당국자가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을 검사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안보리 결의안도 이스라엘의 협력 없인 이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유엔 총회 결의안과는 달리 안보리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만 실제적으론 무시될 수 있다. 이 경우 이스라엘에 제재가 부과될 수 있지만 이 또한 미국의 지지 없인 어렵다. 매체에 따르면 안보리의 일부 외교관들은 미국의 거듭된 연기 요청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으며 미국이 궁극적으로 결의안 통과를 허용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유엔 국장인 리차드 고완은 <워싱턴포스트>에 미국이 안보리 결의안 표결을 계속 미루는 것이 이제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적 결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백악관에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고 로비를 해 온 만큼 이는 결국 바이든 대통령 자신의 본능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20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한 모스크 주위에 주민들이 모여 수색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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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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