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는 암컷" 발언이 민주주의라는 그대들에게

[기자의 눈] 최강욱과 민주당은 촛불 광장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It's Democracy, stupid!"

'설치는 암컷' 발언이 문제라 하니, '민주주의'를 들고 나온다. 풀어보자면 이런 말이다. "늬들이 민주주의를 알아?" 민주당 의원들의 흔한 착각, '민주주의는 민주당의 것'이라는 오만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난 발언이 또 있을까 싶다. '암컷' 운운하는 여성비하적 사고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지독한 선민주의를 어찌해야 하나.

민주당 인사들이 전가의 보도, 무적의 방패처럼 들고 다니는 단어들이 있다. 최강욱이 말한 '민주주의'가 으뜸이라면 버금은 '촛불 정신' 아닐까 싶다. "촛불 정신을 계승해서", "위대한 촛불 정신에 입각하여"… 통계를 따로 내보진 않았지만 '촛불'이라는 단어를 가장 즐겨 사용하는 이 또한 최강욱, 그리고 그가 속했던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들에게 촛불이 남긴 과제는 '검찰 개혁'이기 때문에, '검찰 개혁'을 외치는 자신들이야말로 촛불의 후예, 적통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감히 '민주주의'나 '촛불 정신'이 ○○이라고 딱 잘라 규정할 용기는 없다. 다만 촛불 정신이 무엇인가를 미약하게 짐작할 만한 경험은 한 적 있다. 촛불이 전국을 뒤덮었을 당시, 누군가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집회 전문 기자냐' 할 정도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벌써 7년 전의 일이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당시 쓴 기사를 그대로 옮겨 본다. (☞관련 기사 : "정유라 '돈도 실력' 발언, 학생들 분노하다")

이들은 박근혜 퇴진 구호만 외치지 않았다. '평등한 연대'를 위한 자성의 목소리도 높였다. 홍수민 씨는 "지지 발언이라고 내뱉는 말 중에, 서강대 대학생을 향해 '박근혜 나온 대학교 학생'이라고 하는 등의 말이 있었다"며 "이는 평등한 연대에서 어긋나는 일이고 시정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김은영 씨는 "'박근혜 병신년'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박근혜에게 향하는 게 아니라 많은 여성들 성소수자들, 장애인에 대한 혐오 발언"이라며 "박근혜가 최순실이 이렇게 나라를 망쳐놓은 건 그들이 여성이라서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의롭지 못한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은 혐오 발언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때 시민들은 정부가 선출 권력이 아닌 비선 실세에 의해 편법적으로 운영됐다는 사실, 그리고 비선 실세의 딸이 특혜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시민들은 광장이라는 터진 공간에서 마음껏 분노를 표출했다. 그 속에는 종종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도 섞여있었다. 나는 그 추운 겨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에 감탄하다가도,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박근혜 병신년' 끌어내리자" 같은 말들이 나올 때면 '이게 맞나' 하며 회의감에 빠졌다.

다행스럽게도 광장에는 자정작용이 있었다. '박근혜 병신년'이라는 말은 박근혜뿐 아니라 많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 발언이라는 지적, '박근혜 나온 대학교 학생'이라는 표현은 평등한 연대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감정에 휩쓸리던 광장은 다시금 이성을 되찾았다. 내가 기억하는 촛불 정신은 그렇다. 불의에 대한 분노이면서 동시에 평등한 연대에 대한 지향이었다.

"박근혜 병신년"이라는 말이 촛불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듯, "(김건희는) 암컷"이란 말도 내가 아는 한, 촛불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많은 국민, 심지어 김건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민주당 구성원들조차 최강욱을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검찰 개혁'이 지상 최대 과제이기 때문에 '검찰 개혁'을 가로막 김건희를 향해 '암컷'이라고 표현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모양이다.

"그때 사람들이 왜 웃었냐면, (최강욱이)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 한다' 할 때 특정인(김건희)을 말하는 구나 해서 나는 박장대소한 것도 아니고, '아이고메' 하면서 상체를 숙였다. 그러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확 터졌다."(민형배 의원, 11월 24일 <프레시안> 통화 내용 중)

▲지난 19일 광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 북콘서트에 참석한 민주당 '처럼회' 출신 전현직 의원들. 왼쪽부터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최강욱 전 의원, 김용민·민형배 의원. ⓒ유튜브 '나두잼TV' 갈무리.

'암컷' 이전에 '피해 호소인'이 있었다

7년 전 촛불 광장에선 자정 작용을 통해 박근혜에 대한 혐오 발언이 자취를 서서히 감췄지만, 현재 민주 진영에선 김건희에 대한 혐오 발언이 판을 친다. 그것도 국회의원을 했거나 지금도 의원직을 달고 있는 이들의 주도 하에 말이다. 총선을 앞둔 지금 민주당 내에서는 침묵이 대세 같긴 하지만, 자정 활동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송갑석‧오영환‧이원욱‧정성호 등은 무거운 침묵을 뚫고 용기 내 최강욱을 공개 비판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송갑석의 지적이다.

"'설치는 암컷'이 김건희 여사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는데, 김건희 여사에겐 설치는 암컷이라 해도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게 맞느냐. 보수 언론의 프레임이라고도 한다. 그렇지 않다. 김건희 여사 한 사람만을 지칭했을지라도 여성들이 느끼는 모욕과 공분을 공감하고 대변하는 것이다. 우리 당의 수준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혐오와 막말이 민주당다운 방식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송갑석의 지적에 동의한다. 딱 하나만 빼고. 그는 "이런 혐오와 막말이 민주당다운 방식이 아니"라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많은 이들은 혐오와 막말이 민주당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민주당은 자당 지자체장‧의원 출신 인사의 성폭행 사태가 불거졌을 때 피해자를 향해 '피해 호소인', '꽃뱀'으로 몰아넣은 전력이 있다. 그리고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음에도 그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토양이 있기에 최강욱은 더욱 거리낌 없이 혐오 발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또는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의 선거 승리'라는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면 혐오 발언쯤은 눈 감을 수 있는 게 민주주의라고, 촛불 정신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러니 '암컷' 논란은 단지 최강욱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촛불 정신은 무엇인가. 민주당은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 학습 기회의 장이었던 촛불 광장에서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박근혜 병신년"이라는 말이 대형 스피커를 타고 광장에 울려 퍼졌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민주당 의원들은 깔깔대며 혹은 '아이고메' 하며 웃었을까, 아니면 입술을 굳게 다물고 팔짱을 꼈을까. 혐오와 차별은 민주당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안쪽에 있는가, 바깥쪽에 있는가.

"사람들이 무슨 의미로 받아들였냐가 중요하다"

최강욱이 뒤늦게 자신의 페이스북에 첨언을 했다. 사과는 없었다. 대신 "It's Democracy, stupid!"는 당시 함께 게재한 <조선일보> 칼럼 내용에 대한 지적이라며, "링크를 봐야지요. 번역도 제대로 하고. 수준에 맞지 않게 너무 어려운 주문인가?"라고 했다. 자신의 말을 빗대 '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아'라고 비꼬아 말한 한동훈을 저격한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뿐 아니라 많은 대중, 언론, 심지어 당 내부 사람들조차 해당 문구를 당 지도부의 경고에 대한 반발로 받아들였다. 최강욱의 해명 글은 표면적으론 한동훈을 저격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를 광역 저격한 것이다.

그는 "It's Democracy, stupid!"라는 말 외 별다른 부연 설명도 붙이지 않은 데다, 같은 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백수가 되어도 왜 난 물의를 빚은 사람이 되는지 몰라"라며 당의 경고에도 반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 '맥락'을 이해한다면, 당시 그의 말을 논란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고 봐야한다. 이를 기어코 부인한다면, 그것은 모두를 '멍청이'로 만들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끝까지 이토록 오만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억울하다는 입장이라면, 정성호가 페이스북에 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말은 입에서 나온 순간부터 내 것이 아니다.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무슨 의미로 말했냐 보다는 듣는 사람들이 무슨 의미로 받아들였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특히 정치인의 말은 무거워야 한다. 삼사일언(三思一言) 해야 한다."

이번엔 '의원 자격 상실했으니 정치인 아니고 자연인이라 상관없다'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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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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