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제재, '만능' 아니지만 '무용'하지도 않다

[현안진단] 제재 효과 논쟁 멈추고 평화 로드맵 시작해야

대북 제재 장기화와 '제재무용론'

최근 북한의 매체들은 올해 농사 성과를 강조하며, 각 농장의 풍작과 결산분배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쌀과 옥수수 가격도 하향세로 돌아섰으며, 지난 8월 간석지 농장 침수로 질책을 받았던 김덕훈 총리도 자리를 유지한 채 현지 지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 김정은 위원장 방러 직후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도 북한이 러시아의 식량지원 제의에 대해 현재 상황은 문제가 없다며 거절한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외형상 금년 북한의 식량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 내내 북한의 식량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왔으며, 9월 중순에는 김정은 정권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 한반도의 농사 작황은 전반적으로 평년작 수준으로 평가되며, 통일부도 북한의 금년도 작황을 평년작 수준으로 평가한 바 있다. 북한의 작황이 평년작이라면 매년 100만 톤 내외의 식량 부족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쌀은 전년 대비 13배 증가했으며, 이 추세대로라면 연말까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식량가격 안정세는 가을 추수에 따른 단기적 영향으로 보이며, 장기적 안정세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 식량문제의 원인이 대북 제재, 코로나19 국경봉쇄 후유증, 그리고 농업분야에 대한 국가통제 강화 등 복합적 요인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 처방으로 해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북한 경제상황은 좋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북한은 우간다, 앙골라, 홍콩 그리고 스페인 대사관 철수를 결정했으며 10여개 공관을 감축 내지 폐쇄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재외공관이 53개였던 점에 비추어 약 20% 내외의 공관을 감축·폐쇄하는 셈이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통일부와 탈북외교관 모두 북한의 경제 상황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대북 제재로 북한의 수출은 95%가량 막혀 있지만 일정한 양의 수입을 지속해 무역적자가 최근 크게 누적된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의 외화고는 사실상 고갈상태에 이른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과거 무역적자 해소 수단이었던 북한의 석탄, 광물, 수산물 수출과 해외 노동자 파견 모두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이 사이버 해킹과 가상자산 탈취 등을 도모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국가경제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0월 초 북한 주민 4명이 소형 목선을 타고 속초 동쪽 해상을 경유해 귀순했다. 이들은 우리 해경에게 "북한에서 굶주렸다", "먹고살기 위해 내려왔다"며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5월에도 서해상으로 두 가족 10여 명의 북한 주민이 탈북 귀순했으며, 역시 생활고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단위의 탈북은 개인 탈북에 비해 매우 어려우며 정치적 목적보다는 미래를 위한 선택의 경우가 많다. 최근 국내 입국 탈북민 유입도 큰 폭으로 증가하는 양상이다.

북한은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제1차 도·시·군 인민위원장 강습회를 개최해 김덕훈 총리를 비롯해 당과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강의에 나섰다. 인민위원장 강습회는 지방 시, 군의 발전을 위한 인민위원장들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소집되었지만, 인민위원회와 인민위원장은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행정기구에 불과하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지난 2일 김덕훈(왼쪽에서 두 번째) 내각총리가 평원군·숙천군·룡천군·염주군·선천군 등 여러 군의 가을걷이와 낟알털기 실태를 구체적으로 점검했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강습회에서는 지방 생산단위 개건현대화, 지방 원료를 이용한 인민소비품 생산 증대 및 품질 개선, 농촌 살림집 건설 등 지방 발전을 강조했지만 "자체의 힘으로 일떠서고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낙후된 지방 발전 목표 달성을 위해 중앙의 지원 없이 실권이 없는 인민위원회와 위원장들에게 모든 것을 해결하라는 실현 불가능한 과제를 부과한 셈이다.

최근 북한의 조선중앙TV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알곡생산을 제1 목표로 하는 금년 12개 경제고지 점령을 독려하는 선전을 내보내고 있지만, 이 자체가 성과 달성이 지난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반증이다. 대북 제재의 누적효과가 북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의 '신냉전 전략'

미국 당국자는 지난 9월 러시아와 북한 간 정상회담 전에 이미 북한산 탄약이 러시아로 이전되기 시작해 컨테이너 1000여 개 분량이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했다고 언급했으며, 이는 러시아의 주력 152mm 포탄 30~50만 발 규모이다.

국정원은 북한이 제공한 포탄을 100만발 이상으로 추정했으며,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2개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나진항에는 러시아로 향하는 컨테이너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북한이 연간 수백만 발의 포탄을 제공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11월 1일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은 지난 9월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약속한 정찰위성 발사 지원을 위해 러시아 기술진이 이미 북한에 기술적 조언을 했으며, 북한이 전투기 등 항공기를 들여오려는 동향까지 포착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러시아는 중국에게도 전투기 엔진 기술을 제공하지 않아 중국은 항공전력 운영에서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냉전기에도 러시아는 우방에게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한 적이 없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에 핵, ICBM, 핵추진잠수함 등 첨단 전략기술을 이른 시일 안에 대폭 이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가 구형 군사기술의 일부만이라도 전수할 경우 우리에 대한 북한의 안보위협은 가중된다.

러시아는 첨단 군사기술 이외에도 에너지, 식량, 비료, 그리고 각종 자원의 주요 수출국이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의 탄약 공급 대가로 다양한 지불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러시아의 공급능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9월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 주에 위치한 보스토니치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국정원은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다각적으로 활용하고자 기도 중이며, 김정은 위원장이 팔레스타인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고했다.

북한은 PLO와 오랜 기간 관계를 가져왔으며,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대전차무기, 방사포탄 등을 수출한 전례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모두에서 북한제 무기가 사용되는 현실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결에 대비한 정면돌파전을 선포하고 대내적으로는 자력갱생과 대외적으로는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신냉전 전략'을 구사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현 국제정세를 신냉전·다극화로 규정했으며, 올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이를 재차 강조하면서 반미·반서방 연대 강화를 천명했다.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분열된 유엔안보리는 사실상 '식물 안보리'로 전락해 북한에 대한 견제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무기 개발의 위법성을 외면하고 원인을 오히려 한·미로 돌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김정은 정권의 '신냉전 전략'이 탄력을 받고 있으며, 중동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 인식

북한 비핵화 협상 30여 년의 결과는 북한이 사실상 핵능력 국가로 전환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남북 간, 북·미 간, 그리고 다자 간 등 다양한 방식의 협상 틀은 성과적이지 못했으며, 진보와 보수의 성향 차이를 불문하고 한국의 역대 정권은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했다.

최고 수준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 북한은 고체연료 ICBM 화성-18형, 핵어뢰 해일, 그리고 전술핵공격 잠수함 등을 차례로 선보였으며, 9월에는 핵무기를 헌법에 명문화했다. 이를 근거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비핵화협상은 위헌이라고 규정했다. 북한 비핵화가 더 어려워진 셈이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은 장기간 제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유지했으며, 결국 전쟁으로 붕괴했다.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았지만 푸틴 대통령은 2022년 다시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국제적인 제재를 통해 불량국가나 독재정권의 잘못을 교정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더 큰 문제는 제재의 피해는 독재정권이 아닌 일반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대북 제재 '만능론'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우상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30대 후반에 불과한 김 위원장을 인민의 어버이로 칭송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에게 어버이라는 칭호가 사용된 것은 50대였다.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지표와 민생지표는 위기의 만성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념적 진영이 존재하지 않고 전 세계가 하나의 공급망(GVC)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신냉전 전략'은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중국은 국제규범을 명시적으로 위반하며 북한을 돕기 어려우며, 동병상련의 고립된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북한 경제의 미래를 담보하기는 불가능하다. 북한이 중시하는 이란, 시리아, 쿠바 등과의 관계개선도 북한 경제에 대한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 개발과 국방력 강화를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민심의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소련이 천문학적인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난으로 붕괴했다는 사실을 직시할 일이다.

더욱이 핵무기는 유지·보수에 천문학적인 재원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현재와 같은 행보를 지속할 경우 북한 경제의 왜곡은 보다 심화될 것이다. 대북 제재의 효과는 광범위하며, 이미 북한 경제 전반에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의 안정이 없는 체제 안정은 가능하지 않다. 김정은 정권이 대북 제재 '무용론'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와 한국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그 어떤 실마리도 마련되고 있지 않다. 반면 북한의 핵능력은 지속적으로 고도화되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전술핵운용부대를 실전배치한 상황이다.

한반도의 핵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복합적 원인이 작용한 오래된 전쟁이다. 위기와 문제의 원인을 방치할 경우 결국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수 있다는 살아있는 교훈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북한의 핵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며,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 전반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의 입구를 마련하는 일이다. 대북제재를 두고 '만능론'이냐 '무용론'이냐 논쟁에 매달리는 것은 상호 적대적 인식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기여할 뿐 본질적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한·미와 북한 모두 대북 제재 '만능론'과 '무용론'의 착시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평화와 번영을 향한 대장정의 로드맵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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