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만 간절하고 '공화'는 외면한 한국, 전환기 위기에 직면하다

[함께 만난 사람] 대립의 시대, 공존의 길을 묻다(1)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上)

출산율, 자살율, 빈곤율, 조세부담율, 그리고 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들이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 있지만, 보수와 진보, 내 편 아니면 적으로 나누는 양분화된 정치 상황은 어떤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득세하고 있다. 막막한 시대, 공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이 절실하다는 문제 의식으로 '공공선 거버넌스'와 프레시안이 연쇄 인터뷰를 기획했다. 첫번째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만났다. 강치원 공공선 거버넌스 원장이 대담을 진행했다. 편집자

"민주화 이후 시대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직면한 전환적 위기"라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7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현재 교육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의 발생 원인을 규정했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등에서 발생한 교사들의 잇따른 죽음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지난 30여 년간의 산업화와 1980년대 이후 긴 민주화 과정을 거쳐 선진국을 추격하던 한국이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선진국의 매뉴얼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과거와 달리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설령 눈에 보이는 해법이 있다 해도, 이를 구현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조율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최근 잇따른 비극에 대해서도 이처럼 복합적으로 변화한 조건을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 교육감은 산업화가 개인의 경제적 이익의 최대주의적 실현, 민주화가 개인의 정치적 이익의 최대주의적 실현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에 '개인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면서 극심한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화가 '부자되기'의 가치 아래,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최대주의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향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새롭게 부자들이 탄생하는 이면에 재벌이라는 공룡이 출현했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습니다. 민주화는 바로 이 산업화의 가치에 대한 안티테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의미에서 민주화 '이후'시대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민주화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아온 제 입장에서 성찰적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산업화의 안티테제로서의 민주화에도 산업화의 가치와 공통되는 점이 있습니다. 즉, 민주화는 독재권력에 의해 고문받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무참하게 억압당하는 것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의 정치적 이해와 일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산업화가 개인의 경제적 이해의 최대주의적 실현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민주화 역시 개인의 정치적 이해의 최대주의적 실현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사회,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사회는 개인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를 최대주의적으로 실현하는 것만으로 순항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민주화세력으로서 산업화세력에 요구했던 것은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뛰어넘는 공동체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정확히 그와 같이, 민주화 역시 개인의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는 공동체적 시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은 민주화가 권장해온 개인의 자유와, 권리, 억압된 이익추구의 보장 등이 상호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기도 하고, 개인의 이익추구행위가 공동체 파괴적일 정도로 추구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조희연 교육감. ⓒ서울시교육청

교사의 극단적 선택, 학생인권 억압한다고 해결되나?

서이초 사건은 학교 현장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법제도를 특정 개인들이 악용하면서 발생한 일인데, 이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고자 하는 개인들 간의 충돌은 교육 현장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두 가지 원인으로 환원하는 접근은 위험합니다. 어떤 목표가 이뤄지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는 논리는 이제 한계가 분명합니다. 아울러 각자가 최선이라 여기는 정책을 합치기만 하면, 저절로 다 잘된다는 시각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일종의 구성의 오류가 빚어질 수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데, 전체가 되면 불합리하고 부정의한 결과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최근 교육계에서 잇따르는 민원 역시 종종 그렇습니다. 민원을 제기한 측은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지만, 공동체 전체 입장에선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 교육감은 교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기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쪽의 접근에 대해 반대했다. 교사의 권리와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가 서로 대립하는 개념, 교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생 인권을 찍어눌러야 한다는 발상은 과거 권위주의적 학교로 되돌아가는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독재에 맞섰던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민주에 대해선 치열하게 천착했으나 공화의 가치에 대해선 소홀했습니다. 이제 공화의 가치를 보완할 때입니다. 복합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사회 문제와 비극 역시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각성한 시민이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 주체들이 저마다의 요구를 그저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결국 모두가 피해를 봅니다."

무한경쟁 교육, 불신과 아동학대를 야기하다

교권의 추락은 대학입시가 정점인 극단적인 한줄 세우기 경쟁 체제 내에서 발생했다. '금쪽같은 내새끼'가 학교 내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아야 입시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생각 때문에 '악성 민원 학부모'가 발생한다.

조 교육감은 무한경쟁 교육에서 모두가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학교라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불신'을 낳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억압당하면 당당하게 싸우라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 자체도 중요한데 이런 민주시민이 어떻게 공동체적 시민이 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았습니다. 현재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환기적 위기를 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불신이 있어서 입니다. 과거에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 학생 부모들이 가해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화해를 시키려고 하고, 피해 학생 부모들도 사과를 받고 용서하고 화해를 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해 부모 입장에서 가해를 인정한 것을 악용해서 손해배상 소송을 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니까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조 교육감은 이런 불신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다양성이 존중받는 협력 교육이 아니라 1등만 우대받는 경쟁 교육" 때문에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경쟁 교육의 정점은 대학 입시다.

"입시 경쟁이 이제 거의 아동학대, 청소년학대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고, 특목고, 자사고 등 서열화된 고등학교 체제의 배후에는 서열화된 대학 체제가 있고, 그 배후에는 서열화된 직업 세계가 있고, 이렇게 서열화된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있습니다. 지금 학원가에 초등 의대반이 생겨날 정도로 의대 쏠림 현상이 생기는 게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입시 문제가 독립 변수가 아니고, 사회경제적 의제와 맞물린 문제입니다.

한 방향만 보고 달리는 경쟁은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댄다면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고 봅니다. 한 방향만 향하는 극단 경쟁이 아닌, 다양한 방향으로 향하는 적정 경쟁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직업, 출신 학교, 학력 등에 따른 격차를 줄이는 게 우선입니다."

민주화 이후 시대의 교육 문제, '천사와 악마'의 싸움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교육을 포함한 모든 사회, 경제적 의제가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정치화, 정쟁화되는 상황에선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

"저는 이제 우리 사회가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민주화 이후 시대로 진입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시대에는 독재 권력, 독재의 유산과 싸우는 정의의 전쟁을 하는 시대였습니다. 반민주세력 대 민주세력의 대결은 거의 악마와 천사의 대결, 악과 선의 대결처럼 인식됐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도덕 전쟁의 성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인식에 기반한 민주화 시대를 넘어 민주화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하고 그것이 공존의 사회, 공존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편은 다 천사, 반대편은 다 악마이지 않습니다. 민주화 시대의 도덕 전쟁이 일종의 완전한 절대윤리를 상정했다고 하면, 이제는 그 절대성이 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70%는 여전히 정의의 전쟁을 치르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 불가피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30%는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의 주장과 입장을 인정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려는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시대에 우리가 전제하고 있었던 많은 대안들이 소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희연 교육감(가운데)과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강치원 공공선 거버넌스 원장(오른쪽)과 전홍기혜 프레시안 이사장(왼쪽). ⓒ서울시교육청

(대학 입시 등 현재의 경쟁 교육을 공존과 협력의 교육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서울시교육청의 정책과 관련된 논의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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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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