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도 설치되는데, 우리라고 안 될 거 없다?

[함께 사는 길] 모두를 위한 국립공원, 무장애 숲길 7선 ①

2024년 1월부터 궤도(모노레일, 경전철), 삭도(케이블카, 곤돌라)에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시설이 의무화됩니다. 케이블카 설치 논란 때마다 장애인과 노약자도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케이블카에 탑승할 때 휠체어에서 내려서 케이블카에 탑승하거나, 케이블카 탑승 장소가 계단으로만 되어있어 장애인과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케이블카에 탑승조차 못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케이블카는 기본적으로 비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장애인도 오를 권리가 있다고 외쳤던 케이블카 찬성 측의 말이 하염없이 가볍게만 느껴집니다.

케이블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국립공원이 속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장애인과 교통약자를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며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발표된 바에 따르면, 지리산국립공원 2개 노선을 비롯해 소백산국립공원, 속리산국립공원, 가야산국립공원, 무등산국립공원, 치악산국립공원, 북한산국립공원 등에 18개 노선의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 계획들은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서 조건부 협의가 신호탄이 되어 우후죽순 수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환경부의 '자연공원법'에 의해 지정된 국가 최상위 보호지역으로 문화재청 지정 천연보호구역, 산림청 지정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 등으로 보호지역이 중첩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설악산은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의 보호지역 카테고리 II(National Park, 국립공원)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보호지역 카테고리 II는 자연상태 또는 자연과 가까운 상태의 큰 지역으로, 생태계와 생태계서비스 보전을 위해 관리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더불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관리를 하는 보호지역'으로 인증하는 IUCN 녹색목록(Green List)에도 등재되어있습니다.

아마도 국내에 지정된 보호구역 중 다양한 부처의 보호지역 제도로 중첩 지정된 곳은 설악산이 유일할 것입니다. 이토록 강력하게 중첩된 보호지역에 오색케이블카가 들어서게 되자 다른 지자체들도 '설악산도 케이블카가 설치되는데, 우리 지역이 안 될 거 없다'는 마음으로 케이블카 설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후죽순 설치되는 케이블카 속에 과연 장애인과 교통약자의 이동권과 국립공원 향유권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는 곳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아마 진실로 이들의 국립공원 탐방에 대해 고민하는 곳은 한 곳도 없을 것 같습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우리는 국립공원에 왜 가는 걸까

산 정상에 올라가는 것만이 국립공원 탐방의 전부일까요? 꼭 주봉(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의 해발고도가 적힌 정상 표지석에서 찍은 기념사진만이 국립공원 탐방 인증의 전부일까요?

10여 년 전부터 정상으로 오르는 수직 탐방 대신, 저지대를 둘러보는 수평 탐방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다양한 국립공원 둘레길, 숲길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와 인식이 정착되고 있는 시점에, 이와는 반대로 케이블카 사업 등 시설물의 설치는 탐방객들을 계속 정상부에 가도록 유도합니다. 땀 흘리며 고생하지 않고 정상 인근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탐방객들을 유혹합니다.

우리는 국립공원에 왜 가는 걸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회복하기 위함이 가장 공통적인 이유가 아닐까요. 우리는 단순히 국립공원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 국립공원에 방문하지 않습니다. 케이블카를 통한 탐방은 높은 곳에 쉽게 가게 하는 것 이외에는 국립공원 향유와 탐방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국립공원 지역의 체류시간을 더욱 짧게 하는 기능을 하고 국립공원을 가벼운 관광지로 인식하게 할 뿐입니다.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자연을 갈라놓기만 할 것입니다. 국립공원을 차분히 알아가고, 교감할 기회를 앗아가고, 굳건한 케이블카 지주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갈라놓고, 케이블카 전선이 국립공원의 빼어난 경관을 찢어놓을 것입니다.

국립공원 곳곳에 설치 예정인 케이블카의 운명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을 느끼기 위해 국립공원에 방문한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자주 이용할 리 만무합니다. 케이블카는 설치 후 1년간 반짝 이익을 볼 것이고, 이후에는 여느 케이블카와 시설물처럼 경제성이 떨어져 적자로 가득 메워질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새 국립공원의 흉물로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국립공원은 모든 국민을 위한 공간

국립공원은 모든 국민을 위한 공간입니다. 한반도의 독특한 자연생태계를 보전하는 곳이자, 국민의 휴식과 여가를 위해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든 국민이 언제라도 방문할 수 있어야 하고, 국립공원이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와 생태적 가치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무장애탐방로는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이들이 걸을 수 있는 탐방로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문턱과 경계 없는 시설물), 또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범용 디자인)이 적용된 공간입니다. 배리어 프리나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공간의 경우 장애인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유아, 노인과 비장애인까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장애탐방로도 장애인과 더불어 모든 사람들을 위한 탐방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장애탐방로는 일부 국립공원에 설치되어 있으며, 무장애탐방로 입구에는 보호자 동행 여부, 경사도, 소요시간 등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검색사이트에서 ‘국립공원 무장애탐방로’ 검색하여 접속 가능).

현재 홈페이지에 공개된 국립공원 무장애탐방로는 13개소로 가야산, 계룡산, 내장산, 다도해해상, 덕유산, 변산반도, 북한산, 오대산, 월악산, 주왕산, 치악산, 태안해안, 한려해상국립공원에 무장애탐방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국립공원에 설치된 무장애탐방로이지만, 현재 공개된 무장애탐방로에 대해서 장애인들이 모른다는 한계, 국립공원 주차장~국립공원 저지대 초입까지의 평지만을 지정해놓았다는 한계, 그리고 장애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비장애인 관점의 설계가 적용되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현재 공개된 무장애탐방로의 정보가 오래되고, 일부 장애인이 확인해야 하는 정보가 부족하여 실제 탐방에 적용되기는 요원해 보이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립공원이 제공하는 무장애탐방로

이런 한계에도 다른 공간과는 다르게 장애인들이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국립공원은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국립공원이 제공하는 무장애탐방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한 공간임은 확실합니다.

아직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국립공원 무장애탐방로이지만, 그중에서도 휠체어 이용자, 오래 걷기 힘든 사람, 노약자가 국립공원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국립공원의 생태를 느낄 수 있는 7개의 길을 소개합니다. 케이블카와 같은 거치적거리는 인공시설물을 이용하지 않아도 저지대에서 올려다보는 국립공원의 새로운 생태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곳들입니다.

많은 장애인과 노약자, 교통약자들이 국립공원에 방문하여 국립공원의 무장애탐방로가 모든 이들을 위한 탐방로로 발전하길 기대합니다. 언젠가는 케이블카 없이, 장애인도 산악용 휠체어를 타고 국립공원을 자유롭게 탐방할 수 있는 날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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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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