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 금마면의 ‘서동 생가터’에서 국내 최초로 발굴된 중국 남북조 시대 동전은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중국에 백제 사신이 갔다 돌아올 때 가져온 것으로 추정됐다.
서동 생가터에서 백제시대의 저온저장고 발굴에 이어 중국 옛 동전까지 발굴됨에 따라 익산이 국제교류를 활발히 해온 ‘백제왕도’임을 뒷받침해준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북 익산시와 문화재청은 13일 오전 11시 고도보존육성사업인 금마면 서고도리 일원의 ‘서동 생가터 유적정비’과 관련한 발굴현장과 성과를 공개했다.
김규정 (재)전북문화재연구원 원장은 이날 현장공개 설명에서 “서동 생가터 유적에서 확인된 지진구는 당시의 이 건물이 일반인 거주건물이 아니라 왕이나 최고귀족 주거와 관련된 지역임을 말해준다”며 “익산이 백제 왕도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진구(地鎭具)’는 국가의 중요한 건물 등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빌기 위해 매납하는 물건이나 제기(祭器)를 말한다.
서동 생가터에서 확인된 지진구는 길이 104㎝에 너비 91㎝, 깊이 34㎝의 구덩이를 파고 비교적 안정적인 위치에 매납되었으며, 뚜껑이 덮인 상태로 의도적으로 묻은 토기가 확인되었다.
김 원장은 또 “토기 내부에서 중국 북주(北周) 시대에 발행한 ‘오행대포(五行大布)’ 동전 5점이 담겨 있었다”며 “이 동전은 북주 무제(재위 572~577년) 3년인 574년에 주조한 화폐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에 북주에 사신을 파견한 기록으로 볼 때 이 백제 사신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올 때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며 “익산이 국제교류가 활발했던 백제 왕도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완규 원광대 명예교수도 “백제 무왕(서동)과 관련한 탄생설화지인 서동 생가터의 유적정비 발굴과정에서 중국의 화폐인 ‘오행대포(五行大布)’가 발견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지난 1차 때 발굴한 백제시대 석축저온저장고와 함께 익산이 국제교류의 중심지로 백제왕도의 역사적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차 발굴조사에서는 백제 대형석축 저온저장고 2기, 굴립주건물지 3동, 구상유구(溝, 도랑) 1기, 조선시대 기와가마 5기 등 16기의 유구를 확인한 바 있다.
익산시와 문화재청은 지난 2021년부터 서동 생가터 발굴조사·정비, 서동 생가터(축실지) 재현, 역사경관 회복을 위한 마룡지 및 용샘 수변 정비, 탐방로 및 전통정원 조성 등 유적정비 과정을 추진 중이었으며 이번 발견이 두 번째 성과다.
지금까지 백제지역에서 중국과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었던 화폐로는 1971년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묘지석과 함께 출토되었던 중국 한대(漢代)의 ‘오수전(五銖錢)’이 대표적이었다.
전북문화재연구원은 또 이번 발굴에서는 2호건물지 하단부에서 집수정을 확인했으며, 규모가 비교적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인근 쌍릉 정비예정지역에서 조사된 2호 지상식 건물지 도구를 경사면 위에 두고 구 안쪽인 경사면 하단부에는 주공을 배치해 조성한 지상식 건물지인데, 건물지 남쪽 끝에 소형 집수정이 되어 있어 구조면에서는 매우 유사해 비교 검토할 만하다는 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익산시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진정성 있는 보존과 활용방안을 수립, 익산지역 백제왕도 핵심유적과 연계하여 고도의 정체성을 회복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