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기각, 돌아온 이재명의 민주당…李 "진정한 정치로 되돌아가자"

최대 위기 탈출한 李, 당 장악력 높일 듯…"통합적 당 운영" 약속은 유효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2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결과, 법원은 이 대표에 대해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대표는 정치적 최대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일선으로 복귀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7일 새벽 2시를 넘긴 시각, 검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하며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과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불구속 수사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날 새벽 3시 50분께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서울구치소 정문을 나섰다. 전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선출된 홍익표 신임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와 주요 당직자들은 구치소 앞에서 이 대표를 기다렸다 맞이했고, 지지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를 맞이했다.

이 대표는 3시 57분께 구치소 앞에서 다음과 같은 심경을 밝혔다. 그의 석방 일성 전문(全文)이다.

"늦은 시간에 함께해 주신 많은 분들, 그리고 아직 잠 못 이루고 이 장면을 지켜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 먼저 감사드린다. 역시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아도 국민이 하는 것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해 주신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정치는 언제나 국민의 삶을 챙기고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야, 정부·여당 모두 잊지 말고,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 이제 모레면 즐거워해 마땅한 추석이지만 우리 국민들의 삶은, 우리의 경제·민생의 현황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없다.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 나라 미래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정부·여당에도 정치권 모두에도 부탁드리면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굳건하게 지켜 주시고 현명한 판단을 해주신 사법부에 깊이 감사드린다."

인사말을 마친 이 대표는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고 녹색병원으로 돌아가는 차량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새벽,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李 기사회생, 전화위복?…"통합적 당 운영" 약속은 유효할까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 대표는 정치 입문 이후 자신이 맞은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게 됐다.

먼저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8.17 검찰 소환시)라고 해왔던 그간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검찰 독재정권'이라는 대정부 공세를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 때부터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체포동의안 가결 이전의 상황에 비해서도 당내 입지가 더 나아진 측면마저 있다.

그간 당내 비명(非이재명)계에서 이 대표에 대해 제기한 비판의 가장 큰 논거가 그의 '사법 리스크'였고, 이들은 '당당히 제 발로 법원에 나가 영장심사를 받아 결백을 증명하고 돌아오라'는 주장으로 이 대표를 압박해 왔다. 그런데 체포동의안 가결로 인해, '제 발로 당당히'는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는 이 대표가 '결백을 증명하고 돌아온' 모양새가 됐다. 비명계가 그간 이 대표를 비판하며 내세운 가장 큰 명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본회의 체포동의안 가결로 당내 리더십이 다소 흔들리는 국면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역작용으로 인해 지도부 내 비명계 입지가 축소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당내 서열 2위인 비명계 박광온 전 원내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 당일 밤 의원총회에서 본회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이 대표가 '탕평'의 의미를 담아 지명한 비명계 송갑석 최고위원도 사퇴했다.

반면 기존의 선출직 최고위원들은 자리를 유지하기로 했고, 조정식 사무총장 이하 정무직 당직자들은 박광온 원내지도부와 함께 사표를 제출했으나 이 대표가 이를 사실상 반려하면서 지도부 내 비명 인사는 친문계 고민정 최고위원이 유일한 상황이 됐다.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39표에 이르는 대규모 당내 반란표 사태가 오히려 이 대표의 입지와 친명계의 당 장악력을 강화해 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최후의 변수는 이 대표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였지만, 이날 법원 판단에 따라 그 변수도 사라졌다.

이에 따라 당무에 복귀할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명계는 국정감사와 예산심사 등 정기국회에서 강한 대정부 공세를 이어가면서 당내 주도권을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정기국회가 끝나는 연말까지, 나아가서는 총선 때까지도 이 대표의 리더십이 확고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대표 앞에 당장 남겨진 숙제는 '통합'이 될 전망이다. 체포동의안 표결 및 이후 국면에서 친명계가 가결투표를 '해당(害黨) 행위'로 규정하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벼르면서 당내 갈등은 위험수위로 올라온 상태다.

이 대표 앞에 놓인 1차적 선택지는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비명계를 포용할 것이냐, 해당행위로 규정하고 징계 처분까지 추진하는 등 보복·숙청 작업에 나설 것이냐다. 단식농성으로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인 상태이기에, 직접적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사실상 후자와 다르지 않다. 정청래 최고위원, 김민석 정책위의장 등 기존 친명 지도부 인사들은 물론 홍 신임 원내대표까지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지만 그에 따라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때도 있다"고 징계 추진에 힘을 싣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눈여겨볼 부분은,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인 지난 21일 녹색병원에서 박광온 당시 원내대표를 만나 "향후 당 운영과 관련해서 통합적 당 운영에 대한 의지"가 명확하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 대표는 당시 "현재의 당 대표나 지도부의 당 운영에 대해서 우려하는 의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런 편향적인 당 운영을 할 의사나 계획이 전혀 없고, 지난 총선TF 구성에 있어서도 다양한 의견들과 의원들로 구성되도록 노력한 바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당 운영에 있어서도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의원 통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당 대표와 지도부가 다 함께 마음을 모아 노력하겠다. 통합적 당 운영에 도움되는 기구가 필요하면 만드는 것도 할 수 있다"고 했다고 박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전했다.

이 대표가 '통합적 당 운영'이라는 자신의 말을 그간의 곡절에도 불구하고 지키겠다는 입장을 표명한다면 당내 갈등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 사그러들 가능성이 높다. 반면 체포동의안 표결 이전이었던 당시와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음을 들어 입장을 바꾸거나 침묵한다면, 친명계의 축출 시도와 비명계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vs 검찰, 9시간 20분간 치열한 법리 다툼…李측 판정승

정치적 측면이 아닌 사법적 측면에서 보면, 이 대표의 이날 영장 기각은 향후 예상되는 재판에서 검찰 측에 대해 기선을 제압한 정도의 의미가 있다.

앞서 검찰과 이 대표 측은 전날 오전 10시경부터 오후 7시 24분께까지 9시간17분 동안 진행된 영장심사에서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였다. 오전 심사에서는 백현동 사건이, 오후 심사에서는 대북송금과 위증교사 의혹이 다뤄졌다. 이 대표는 판사의 질문에 직접 답변하거나 검찰 측 주장을 반박하는 등 적극적 태도로 심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제기한 이 대표의 혐의는 △백현동 개발사업 비리 △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등 의혹 등 3가지. 검찰은 심문에서 이같은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 노력과 함께 증거인멸 우려를 집중 부각했다고 한다. 이 대표 측근 인사가 지난 7월 수감 중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접견해 이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번복해 달라고 요구한 녹음파일 등을 공개하며, 이 대표가 현직 제1야당 대표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증인을 회유하려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 측은 '터무니없는 소설'이라며 범죄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증거인멸 우려 주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검찰이 관련자들을 회유하거나 압박하고 있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영장심사에 임하며 전직 판사 출신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보강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결국 영장심사 결과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양측의 정면승부는 이 대표 측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법원은 각 부분의 범죄 소명 여부에 대해, 먼저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피의자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하나 직접증거 자체는 부족한 현 시점에서 사실관계 내지 법리적 측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피의자 방어권이 배철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또한 대북송금 의혹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 부분에 대해서는 "위증교사 및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물적 자료에 비추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서도 "이화영의 진술과 관련해 피의자의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한 점,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로서는 범죄혐의 소명과 관련해 법원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본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연루 의혹 외에, 증거인멸 사건에 대해 "혐의가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백현동 사건에 대해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든다"는 판단을 받아낸 것으로 수사를 이어갈 최소한의 명분과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민주당은 이같은 법원 결정에 대해 즉각 권칠승 수석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고 "구속영장 기각은 당연하다. 사필귀정"이라며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과 정치검찰의 무도한 왜곡·조작 수사는 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며 "이제 이 대표를 겨냥한 비열한 검찰권 행사를 멈춰야 할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반면 "개딸에 굴복한 법원"이라고 법원 결정을 비난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추상같이 엄중해야 할 법원의 판단이, 고작 한 정치인을 맹종하는 극렬 지지층에 의해 휘둘렸다"며 "오늘 결정은 두고두고 오점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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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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