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장 앞에 모인 수만 명 "화석 연료 사용 끝내라"

뉴욕 시위, 5년 만 최대 규모·15%가 첫 참석자…남유럽선 "환경 불안" 정신 건강 문제 대두

이번 주 유엔(UN)총회를 앞두고 미국 뉴욕에서 화석 연료 사용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올여름 북반구가 극단 기후에 시달리며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과 분노가 커지는 모양새다.

<로이터> 통신, <뉴욕타임스>(NYT),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을 보면 17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에서 세계 지도자들에게 화석 연료 사용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기후 활동가들을 포함해 주최 측 추산 5만~7만5000명이 참가한 이번 집회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포함한 지난 5년 동안 미국에서 열린 관련 집회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보인다.

18일부터 뉴욕에서 열릴 78회 유엔총회를 앞두고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화석 연료를 끝내라",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라", "젊은층은 화석 연료에 투표하지 않는다" 등의 팻말을 들고 총회가 열릴 유엔 본부 앞까지 행진했다.

이날 집회는 지구 온난화를 멈추기 위한 기후 행동을 촉구하는 비영리 단체 '기후 그룹(Climate Group)'이 매년 펼치는 '뉴욕 기후 주간'(9월17~24일)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이번 주 내내 미국, 한국, 독일, 영국, 인도 등 54곳 국가에서 500개가 넘는 집회가 예정돼 있어 주최 측은 전세계적으로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여름 폭염, 홍수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잦아지며 보다 많은 이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AP> 통신은 이번 집회 참가자를 연구한 미 아메리칸대 환경·공동체·평등 센터(CECE) 소장인 다나 피셔 교수를 인용해 15%의 참가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했다고 짚었다. 피셔 교수가 인터뷰한 참가자의 86%는 최근 극심한 더위를 겪었고 21%는 홍수 피해를, 18%는 극심한 가뭄을 경험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야외 작업이 많아 폭염 등 기후 변화에 취약한 멕시코 및 중미 이주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단체 소속인 라파엘 차베즈(37)는 집회에 참여해 "건설 및 농업 현장, 심지어 창고에서 일하는 이들이 폭염으로 쓰러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적으로 화석 연료 사용을 종식시킬 수 있는 독보적 위치에 있는 지도자"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행동을 촉구했다. 기후 활동가인 다프네 프리아스(25)는 "미국과 북반구가 행한 오염과 해악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할 때"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알래스카주 대형 유전 개발 사업 '윌로 프로젝트'를 승인하면서 환경운동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저명한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청소년 주도 기후 운동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이자 뉴욕의 고등학생인 에마 부레타(17)는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를 두려워 해야 한다"며 "만약 우리의 표를 원한다면, 당신 손에 우리 세대의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면 화석 연료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 연설에 나선 민주당 소속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뉴욕주 연방하원의원은 기후 행동이 "무시될 수 없는 유권자 및 대중의 힘"이라고 표현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달 초 알래스카 국가석유비축지의 40%에 해당하는 5만2000㎢에서 원유·가스 채굴 시추 및 부지 임대를 제한하기로 하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윌로 프로젝트 승인에 실망한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려 시도했지만 이번 유엔 총회에서 기후 변화 의제를 적극 선도할 의지까지 보이진 않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20일 열리는 유엔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구 곳곳의 이상 기후는 이어지고 있다. 여름 동안 폭염에 시달린 북반구를 가을을 향해 가고 있지만 봄을 맞은 남반구에선 벌써 이례적으로 높은 기온이 보고된다. <로이터>는 18일 호주 기상청이 시드니를 포함한 남동부 지역에 폭염이 닥쳐 예년 9월 평균 기온보다 최고 16도 이상 높은 기온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기상청은 18일 오후 남동부 포트 어거스타 등의 기온이 39도까지 치솟고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35도를 넘길 것으로 봤다.

올 여름 폭염, 산불, 홍수 등 다양한 기후 재난을 경험한 남유럽에선 "환경 불안(Eco-Anxiety)"으로 불리는 정신 건강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대 정신과 의사인 파올로 시안코니 등은 지난 6월 발표한 논문에서 환경 불안을 정신적 외상을 유발하는 기후 변화 현상을 겪은 이들이 갖게 되는 "환경 재앙에 대한 만성적 두려움"으로 넓게 정의했다. 이어 이로 인해 "좌절, 무력, 절망" 등이 경험될 수 있으며 "공황 발작, 수면 장애, 식욕 부진" 등의 증상이 결합될 수 있다고 봤다.

매체는 전문가들이 특히 지난 10년 간 금융 위기, 이민자 위기 코로나19,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 등을 차례로 겪은 그리스인의 경우 극단 기후로 인한 정신적 위기에 더욱 취약하다고 짚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스 리아피스는 매체에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단발성 급성 스트레스보다 정신 건강에 더 깊은 영향을 준다"며 "이미 높은 임대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집이 홍수로 물에 잠겼을 때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체는 최근 37도를 넘는 로마 거리에서 만난 16살 사라 마기올로가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시험이 다가오는데 기후 불안까지 갖게 됐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올여름 알프스 산맥을 방문했을 때 햇볕으로부터 빙하를 보호하기 위해 흰 방수포를 씌우는 작업자들을 보고 슬픔을 느꼈다는 그는 "TV에서 온 세상이 불타고 있는 걸 봤다"며 "세상이 없어질 텐데 세계의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는 것은 어렵다. 여름은 매년 더 더워질 것이고 항상 더 나빠질 것"이라고 비관했다.

▲1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거리에 모인 시위대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화석 연료 사용을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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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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