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산불 사망 100명 넘겨…피해 주민에 '땅 팔라' 투기꾼 기승

주정부 "피해 지역 땅 외부인 구매 막기 위해 노력"…'떠나달라' 요청에도 일부 관광객 남아 주민들 '참담'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서부에서 발생한 산불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비극을 틈타 피해 지역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투기꾼들이 주민들에 접촉하며 주정부가 경고에 나섰다.

마우이 카운티는 15일(현지시각) 보도자료를 내 지난 8일 마우이 서부에서 발생한 산불 사망자가 106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실종자가 1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아직 피해 지역의 3분의 1 가량 밖에 수색이 진행되지 않아 희생자가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확인된 사망자 수가 99명이었던 14일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방송에 향후 열흘 간 사망자 수가 2배로 늘 수 있다고 말했다.

카운티는 이날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2명의 신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공개된 사망자 2명은 70대 고령자로 모두 라하이나 주민이다. 발견된 사망자 중 신원이 밝혀진 이는 5명에 불과하다. 15일 기준 산불은 서부 해안 라하이나 지역에서 85%, 중부 내륙 업컨트리·쿨라 지역에서 75% 진압된 상황이다.

불이 민가를 태우며 주민들이 집을 잃고 대피한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꾼들이 주민들에게 부동산 매매를 권유하며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공분을 사고 있다. 미 NBC 방송은 산불 피해 생존 주민들에게 그들의 집이며 땅을 사겠다는 부동산 업자들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마우이 주민 티아레 로런스는 미 MSNBC 방송에 이런 행태가 "역겹다"며 "라하이나는 매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주말 한 하와이 토지 및 토착종 보호 단체도 다수의 지역 주민들이 개발업자로부터 매매 제안을 받았다며 소셜미디어(SNS)에 "집을 잃은 가족들에게 전화해 땅을 사겠다고 제안하는 투자자들과 부동산 업자들 탓에 절망스럽다. 어떻게 감히 지금 우리 공동체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나"라고 비난했다. 피해가 극심한 라하이나를 비롯해 마우이 카운티에서 산불로 2207개 건물이 손상됐고 그중 86%가 주거용 건물로 4500명의 주민이 집을 잃고 대피 중인 상황이다.

CNN은 비극을 틈 타 외부인들이 마우이 토지를 대량으로 사들일 것이라는 주민들의 우려가 "매우 현실적"이라고 짚었다. 하와이 경제의 관광 의존도가 높아진 뒤 많은 토지 및 주택이 호텔 개발업자나 단기 임대업자에게 넘어갔고 백만장자들이 앞다퉈 별장을 사들이며 이 지역 집값이 치솟아 이미 주민들이 일해서 살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7월 기준 라하이나에 매물로 나온 주택 중간값은 150만달러(약 20억원)에 이른다.

방송은 고층 건물 위주로 재편된 하와이 오아후섬의 대표적 관광지 와이키키와는 달리 라하이나는 관광 산업에 집중하면서도 본래의 문화 유산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으며 여전히 단층 건물이 즐비한 거리에서 소규모 지역 상점들도 살아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자 15일 하와이 주지사실은 보도자료를 내 "이 위기를 극복하고 라하이나가 향후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결정하기 전에 우리 주 외부에서 (피해 지역) 땅을 사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주지사실은 또 "부동산 업체를 사칭한 이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주민들에게 화재 피해 주택 부지를 판매하라며 접근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린 주지사는 피해 지역의 "성장이나 주택이 복구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우리 주민의 땅을 훔쳐서 이 곳에 건물을 지으려 한다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민들의 고통에 무심한 관광객들의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호텔 및 리조트 업체 포시즌스 직원인 브리타니 파운더는 영국 BBC 방송에 산불 직후 관광객들이 라하이나에서 예정된 승마 등의 체험이 취소된 것에 대해 불만을 늘어놨다고 전했다. 그는 산불이 난 바로 다음날 캘리포니아주에서 온 한 관광객이 라하이나에서도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에 위치한 한 식당 예약이 유효한지 묻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이 "우리 주민들이 3일 전 빠져 죽은 물에서 관광객들이 스노클링을 하고 있다"고 BBC에 비난한 뒤 11일 라하이나에서 불과 17km 떨어진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강행한 업체는 사과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그린 주지사는 8월 한 달 간 피해 지역인 마우이 서부로의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촉구한 상태다. 연방 및 주정부는 물론이고 여행업계까지 동참해 피해 주민 지원 및 복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다. 그린 주지사가 이재민을 위한 호텔 객실 500개를 마련했다고 밝히는 등 주는 숙박 시설을 총동원해 피해 주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와이 관광청은 다만 오아후섬, 하와이섬 등 하와이 다른 섬들은 여전히 관광객들에 열려 있으며 마우이섬의 경우도 서부를 제외하고 와이루쿠, 카훌루이, 와일레아, 키헤이, 마케나 등 중부 및 동부 관광을 여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피해 지역에서 떠나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따라 4만6000명 가량의 관광객이 마우이를 떠났지만 일부 관광객들은 남았고 일부는 화재 뒤에도 이 지역을 찾아 일부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하와이 사업·경제개발·관광부의 방문자 통계를 보면 8일 화재 발생 뒤에도 하루 1500~3400명 가량이 마우이에 도착했다. 산불 직전 일일 도착 7000~8000명보다는 크게 줄어든 규모다. 산불 직전 하와이 전체 방문객 규모는 하루 3만5000명 수준이었고 14일엔 2만7000명 가량으로 줄었다.

다만 마우이 노동자의 거의 5분의 1이 음식 및 숙박업에 종사하는 등 관광 산업의 비중이 큰 이 지역에서 반관광 정서가 표출되는 데 대한 걱정도 나온다. 와이루쿠 지역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대니얼 칼라히키는 "사람들이 '마우이에 오지 말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 남아 있는 사업장조차 문을 닫게 될까 두렵다"며 "그렇게 되면 이 섬은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라하이나 주민인 릭 아빌라는 "이 시점에서 관광객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며 "하와이 땅과 주민을 존중해주면 좋겠다"고 CNN에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이 정상화되면 우린 다시 관광객을 환영할 것"이라며 "다만 우선 우리에게 상황을 해결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CNN을 보면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일 기자들에게 "가능한 빨리" 하와이에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 방문이 복구 노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피해 현장에 즉각 방문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마우이 주민들은 산불 피해 뒤 정부 지원 미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상태다.

▲15일(현지시각) 대형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서부 라하이나에서 새까맣게 탄 자동차가 방치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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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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