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묻지마 정신질환자 혐오', 극복할 방법은?

[복지국가SOCIETY] 정신건강 소사이어티를 위하여

묻지마, 묻지마, 묻지마

귀농하신 필자의 어머니가 지난주 치과치료를 받으러 부산에 오셨다. 늦은 시간 내려오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편의점을 들렀다가 뒤늦게 나오신 아버지를 차 앞에서 혼자 기다리는 것이 무서웠다고 하셨다. "요즘 묻지 마, 살인이 많잖아. 어두운데 차 앞에 혼자 서있으려니 누가 나한테 흉기 들고 올까봐 무섭더라." 그 순간 고속도로 휴게소는 많은 이들의 여행의 설렘을 담는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품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경찰은 2022년 1월부터 과거 언론이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부른 범죄유형을 '이상동기 범죄'로 신설 분류했다. 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의 동기는 과연 이해할 수 없는가? 온라인상 흉기난동과 살인예고 게시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급기야 지난 8월 서울 강남역 인근에 경찰특공대와 전술 장갑차가 배치되었다. 부산 서면 칼부림 예고 글에 지하철역 주변 경찰의 순찰이 강화된 것은 물론이다.

사건이 일어나거나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칼부림 예고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온라인 공간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분으로 들끓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정신장애인은 이미 지역사회와 분리되었다. 이를 의식한 탓일까, 정부는 최근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약물 치료를 중단한 중증 정신질환자의 범죄 예방을 위해 강제입원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입원과 재활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은 손 놓은 채 말이다. 이는 정부가 스스로 정신질환자에게 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다는 조치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자신에게 찍힐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 앞에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으려 하겠는가?

▲<클럽하우스 모델> 배은미 역. 박승현. 박승현은두꺼운 선과 주관적 표현이 강렬한 작가. '에곤 실레'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제작한다.

마녀사냥? 아니면 말고

어른들 말씀에 시골동네엔 한둘씩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살았다. 도시에서 살아 그런 경험이 만무한 나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 박광현)>을 보고 그 광경을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배경인 영화에서 배우 강혜정은 동막골 주민 '여일' 역을 맡아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닌다. 뱀에게 물리면 아프다는 말과 함께 연신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꼬아대던 여일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동막골 주민들 틈에서 자유롭게 지낸다. 이념 갈등과 대립으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군인들은 동막골에서 대립한다. 하지만 동막골 주민들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화해의 기회가 된다. 여일도 동막골 주민이었다. 뻔한 클리셰로 보일 수 있지만 내가 알던 어른들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면 과거 시골의 정경은 아마도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념은 미워해도 병은 미워하지 않는 공동체 말이다.

지난 8월 4일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과 관련해 상당수 언론이 "용의자가 현재 피해망상 등을 호소 중" 혹은 "조현병 등 정신 병력과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는 등 추측성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미 정신장애인당사자단체 침묵의소리에서 2021년 11월 <국제신문>을 통해 정신장애인미디어보도가이드라인 2.0을 발표한 바 있으나 법적 강제력이 없어 전국적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 중세 마녀 사냥 희생자의 절반 이상이 정신질환자였다는 문헌자료를 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포털의 조회수를 염두에 둔 것 같은 지금의 보도 행태를 바라보는 수많은 정신장애 당사자들과 가족의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2017년 대검찰청 범죄 분석 자료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강력범죄율은 0.065%이며 정신질환자 강력범죄율은 0.014%였다. 일반인보다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훨씬 적게 일으킨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시 조현병과 같은 특정 질환을 언급하는 추측성 기사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낙인을 조장할 뿐이다.

▲그림 고장훈: 송국에서 만화작가 활동에 참여하며 어릴적 만화가의 꿈을 다시 꾸는 중이다.

지역사회 정신건강서비스 가이던스

"정신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강제입원을 하여 3개월 동안 페쇄병동에서 지낸 적이 있다. 한 달 정도 입원하니 헛것이 눈에 보이는 증상이 사라졌다. 환청 등의 증상이 사라졌음에도 퇴원을 시켜주지 않아 많이 갑갑했고 미칠 것만 같았고 잠을 잘 수 없어서 무척 고생스러웠다. 나의 치료 경험에 비추어보면 환청이 심하게 들리거나 조증이 심하거나 우울이 심해지는 등의 증상이 지속되어 현실감각이 떨어질 때 정신과 약물 복용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멍하니 생각할 수가 없는 등의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에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힘들었다. 5분이 되지 않은 짧은 외래진료로 심리적인 도움을 크게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한두 차례 약물교육으로는 병식을 깊게 가지기 어려웠다. 무기력감과 같은 음성증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약 중단 이후 6개월 만에 병이 재발해서 1개월 동안 재입원을 해야만 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정신질환자를 입원강화, 치료, 격리 등을 통해 사회와 분리해야만 안전하다는 비상식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며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공포감을 느꼈다."

현재 송국클럽하우스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 2월부터 해운대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근무하고 있는 안경아 씨와 언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솔직하게 나눈 이야기이다. 안경아 씨는 회복과정에서 정영환 동료지원가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했다. 정 동료지원가는 ‘가정방문을 통해 나와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경험전문가로서 나의 회복경험을 나누며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더 많은 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 모범사례 5가지(인권 및 회복 범주론/2021)로 법적 역량의 존중, 비 강압적 실천, 참여, 지역사회 포용, 그리고 사회보장·고용·교육·주거를 포함한 회복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퇴원 이후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정신건강 서비스 체계를 확대해야 비로소 정신질환자의 효과적인 회복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입원하고 싶은 환경과 치료시스템 개선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복지서비스 확대와 재활 인프라 확충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국격이 높아진 대한민국의 정신건강서비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힙(Hip)하게' 이웃 만나기

정부가 국내 최초로 실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2023.4.13. 국무조정실 발표)에 따르면 19~34세 청년의 우울증상 유병률은 6.1%(남 4.9%, 여 7.5%)였고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경험은 2.4%(남 1.8%, 여 3.1%)였다. 1인 가구 청년의 경우 우울증상 유병률은 7.3%로 일반에 비해 1.2%p 더 높았다.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는 청년은 남자(1.8%)보다는 여자(3.1%)가, 비수도권(1.9%) 보다는 수도권(2.8%) 거주 청년이, 그리고 고졸 이하(3.2%)의 학력을 가진 청년이었다. 정신건강 문제 해결이 미충족된 경험 비율은 여자(8.3%), 30~34세(6.3%), 수도권 거주자(6.7%), 고졸 이하(6.3%) 등의 집단에서 컸다. 미충족 의료 발생 이유는 '상담비용이 부담되어서'(27.5%),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20%), '정신의료기관에 대한 심리적 거부담 때문에'(18.9%),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15.6%) 순으로 나타났다.

필자가 거주하는 부산은 이웃의 일상을 돌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돌봄 필요 중장년, 이른 돌봄으로 인해 과도한 부담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가족돌봄청년에게 상담서비스를 제공하여 우울감 등 부정적 심리상태를 개선하고 생활의 전반적인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일상돌봄 사업 ‘중장년, 청년 심리지원’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부산 영도구, 남구, 북구, 해운대구, 수영구 5개구에서 이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돌봄 필요 중장년(만40~64세), 가족돌봄청년(만13~34세)이 대상이며 정신질환의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서비스는 대상자에게 식사영양관리, 병원동행, 심리지원, 휴식지원, 건강생활지원, 소셜다이닝 등을 제공한다.

동료지원가들이 청년 정신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해운대구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전문요원들과 함께 발 벗고 길을 나서기도 했다. 2020년 청년층 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에 따르면 청년 건강문제에서 가구유형별, 소득수준별, 학력별 격차가 관찰되었다. 제대로 된 식사 보다는 배달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섭취함으로 인해 청년층에서 영향불균형이 관찰되고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 환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조사에서 저소득 1인 청년의 경우 '양질의 식사를 하지 못하였다'는 응답 비율이 70%에 육박하였다. 청년정신장애인은 이 같은 위험에 더욱 취약한 집단이다. 이들은 일자리, 주거, 경제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다 독립을 위한 사회기술이 부족하여 양질의 식사를 챙기거나 건강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나는 가정방문을 갈 때 한 손에는 영양소가 균형 잡힌 밀키트를, 한 손에는 따뜻한 온기를 품고 청년 정신장애인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이들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혐오를 만든 미디어에 맞서 변화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우리 모두 '힙(Hip)하게' 이웃 만나는 방법을 찾고 오늘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면 좀 더 살만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유숙 소장은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의 사람살이를 돕기 위해 송국클럽하우스에서 24년째 근무 중이다.

*침묵의소리는 2008년 정신재활시설 이용자들의 자조모임으로 시작, 2020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였다. 현재 부산지역 정신재활시설 네트워크와 연대하여 운영하고 있다. 당사자 리더양성, 동료지원가 양성, 정신장애 인식개선 사업, 조례개정 운동과 절차보조사업에 참여하였다.

▲황유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일러스트부터 웹디자인 등 다재다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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