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국제공항은 욕망 아닌 50년의 열망…'이카루스의 추락' 재현 안 될말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22] 새만금 국제공항 예산 칼질에 대한 단상

잼버리 대회의 파행 이후 새만금 SOC 예산이 대거 삭감되면서 전북의 국제공항 꿈도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타 지역 일각에서는 “왜 수요도 없는 전북에서 국제공항을 욕심내느냐”고 강변하지만 전북 입장에서는 "도달하지 못할 욕망이 아니라 수요가 충분한 도민들의 간절한 열망"이라며 "한이 서린 50년 숙원이 ‘이카루스의 추락’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반발이 나온다.

국제공항이 없는 전북은 인천이나 무안, 청주로 원정 가야 하는 시간적·비용적 부담이 막대한 실정이다. 가뜩이나 낙후도 서러운데 SOC마저 부족해 돈과 시간을 더 써야 하는 '빈곤의 악순환'을 천형(天刑)처럼 감내하고 살아왔다는 푸념이다.

전북에서 30년 동안 중소기업을 경영해온 L씨(52)는 지난해 10월 일본 바이어를 초청했다가 망신 당한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전북 209개 단체들로 구성된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 건설추진연합'이 2021년 6월 21일 출범식을 갖고 조기 건설의 염원을 담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전주상공회의소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었던 바이어가 때마침 최근 퇴근 시간이 겹쳐 전북까지 승용차로 내려오는데 4시간가량 걸리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둑어둑한 밤에 전주에 도착한 일본 바이어는 "한·일간 거리가 1시간 30분인데 서울~전주 간이 이렇게 멀어서야…"라며 갑자기 싸늘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L씨는 정성껏 바이어에게 설명했고 다행히 계약은 그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대한민국 중심에 있음에도 공항이 없어 심리적 체감거리가 가장 먼 '외딴섬 전북'의 현실을 실감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조업체의 중간간부인 K부장(41)도 "중국 거래처만 해도 공항이 없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고개를 갸웃갸웃한다"며 "바이어 확보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푸념했다.

K부장은 "해외 시장에서는 상대 바이어들이 한국 현지에 공항이 있느냐, 없다면 공항과의 접근성이 얼마나 좋으냐를 굉장히 많이 따진다"며 "전북은 여러모로 기업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고 털어놓았다.

2개의 사례는 전북기업들이 국제공항을 주장해온 간단한 이유일 뿐이다. 일반인들의 불편과 불만은 훨씬 더 심하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와있지 않지만 국제공항이 없어 전북에서 발생하는 손실 비용만 해도 대략 연간 100여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다.

국내에는 현재 인천과 김포, 김해, 제주, 무안, 양양, 청주, 대구 등 8개의 국제공항과 울산과 여수, 사천, 원주, 포항, 진주, 군산 등 7개의 국내공항이 있다.

▲새만금 국제공항 조감도 ⓒ전북도

군산은 군공항인데다 접근성도 뛰어나지 않아 외국을 방문해야 한다면 공무원들조차 원거리의 인천이나 인근의 청주공항 또는 무안공항을 이용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항공산업에 몸담았던 S씨(61)는 “군산공항 수요 외에 국외로 가는 인천국제공항, 인군의 무안과 청주국제공항 수요까지 합치면 전북의 최종 항공수요는 이미 5년 전에 200만명을 상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북도의회는 지난 2017년 3월 지역 공직자들의 제주도 출장과 학생들의 수학여행 때 군산공항 이용률(18.3%)을 근거로 당시의 군산공항 탑승객(22만8000명)을 적용해 전북과 제주간 연간 공항수요를 추정한 결과 122만명에 육박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타 지역 공항을 이용하는 '숨어있는 전북의 제주 항공 수요'가 5년 전에만 100만명에 육박했다는 추정이니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특히 해외로 나가는 항공수요를 추가할 경우 전북인의 한 해 손실비용 100억원 이상은 전혀 무리가 아닐 것이라는 지적이다. 통상 국제공항 개항 요건이라 할 수 있는 한 해 300만명 수요도 근접거리에 있다는 지역민들의 주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북도민들에게 있어 국제공항은 개발연대기였던 1970년 이후 50여년의 최대 숙원으로 자리해왔다.

간절한 여론은 1991년 새만금사업이 착공되면서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됐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북에서는 김제공항 유치에 올인해왔다.

우여곡절을 거쳐 1998년에 개발계획이 확정된 김제공항은 이듬해에 건설교통부가 기본설계에 들어가 2002년에는 480억원을 들여 김제 지역에 부지까지 매입하고 착공하는 등 한때 전북의 희망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감사원이 김제공항의 수요가 과다하게 예측되는 등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진다며 2003년에 당시 건설교통부에 공사중단을 요구, ‘전북공항 수난사’의 첫 번째 추락으로 기록됐다.

당시 지역민들은 "경제성과 타당성만 따지면 전국의 모든 사업을 수도권에 몰아줘야 할 것"이라며 "공급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균형발전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지만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김제공항이 어려워지자 2006년 민선 4기 출범 이후 군산공항 확장을 새로운 전북권 공항으로 풀어가려 노력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새만금 신공항을 추진하기 전에 우선 당장 군산공항의 활주로를 확장해 국내선을 확충하고 국제선을 띄운다는 전략이었다.

전북도의 강력한 요청 아래 정부와 미군 측은 2010년 2월 22일 국제선 취항 합의각서 제정 문제를 소파(SOFA) 신규 과제로 채택했다. 김제공항을 대신해 군산공항이 전북권 신공항으로 등장하게 된 셈이다.

이 역시 미군 측이 안보상 문제를 들어 미군 비행장을 빌려쓰는 군산공항의 국제선 취항에 난색을 표시해 국제공항 문제는 다시 미궁에 빠지며 '두 번째 추락'의 쓴맛을 봐야 했다.

▲새만금 국제공항 조감도 ⓒ전북도

정부의 ‘제4차 공항개발 중장기종합계획안(2011∼2015년)’에도 군산공항 확장이 빠져 있어 전북의 국제공항 취항은 난제로 자리하게 되었다. 당시 호남권, 영남권, 제주권, 중부권 등 권역별로 공항 육성계획이 제시됐지만 호남권은 무안국제공항을 집중 육성하는 방안이 담겼을 뿐이었다.

꺼진 불씨는 2016년 국토교통부의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새만금국제공항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며 다시 타올랐다. 때마침 전북의 항공수요도 충분할 것이라는 관련 자료도 나와 힘을 실어주었다.

전북도는 되살린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지역민들도 “드디어 전북의 하늘길이 열리는 것 아니냐”며 크게 환영하며 정부의 조속 추진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동북아는 세계의 경제 축으로 가장 많은 항공기가 날아다니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새만금은 동북아 복합 물류허브로 최적지이며, 그 첫 단추가 바로 국제공항 건설이라는 주장이다.

새만금에 국제공항이 건설되면 다양한 노선의 국제선 취항을 통해 30억 인구의 아시아권 시장과의 교통채널로 연결할 수 있다는 논리도 가세했다.

▲전북도의원들의 삭발 투쟁 ⓒ전북도의회

덕분에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사업은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대상사업’에 선정돼 전례 없는 탄력적 추진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전주상공회의소와 전북관광협의회를 비롯한 전북지역 209개 단체는 2021년 6월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추진연합’을 발족하고 조기 건설 촉구로 맞불을 놓았다.

공항건설추진연합은 “새만금 국제공항은 50년 항공오지의 설움을 떨치고 전북도가 동북아 물류허브의 꿈을 꾸게 해준 필수 기반시설”이라며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은 2019년에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사업으로 선정됐지만 도민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국토교통부에서 사업을 너무 느슨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촉구했다.

굴곡과 곡절의 전북 50년 숙원은 정부가 지난 8월 29일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정부안)에 새만금 국제공항 관련 예산을 국토부 요구액(580억원)의 11.4%인 66억원으로 삭감 반영하면서 다시 추락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새만금 국제공항 등의 적정성과 경제성을 내년 6월까지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새만금개발청도 “(국제공항 등) 새만금 SOC사업 재검토 결과에 따라 필요한 사항을 반영할 것”이라고 확인해주는 등 국제공항사업이 당초 예상보다 축소되거나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은 “정부가 재정의 긴축 차원에서 새만금 SOC 예산을 축소했다고 하는데 왜 전북 현안만 긴축재정의 희생이 되어야 하느냐”며 “전북의 50년 숙원인 국제공항이 또다시 추락하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삭감예산은 부활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모든 것을 경제성과 효율성 논리로 따져선 안 된다"며 "불균형 성장의 그늘에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어온 지역민의 한을 풀어주는 균형발전과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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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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