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제안 '선관위 원포인트 개헌', 최소 '투 포인트'여야

[장석준 칼럼] 세대마다 자신의 제헌 토론을 경험해야 한다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집회의 성격이 지방선거 개표 직후와 상당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참정권 보장'을 외치는 젊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중심을 이뤘지만, 지금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동시에 든 이들이 '부정선거', '재선거 실시'를 주로 외친다. 부실선거에 항의하는 정당한 목소리가 음모론에 휩싸인 문제적 정파에 의해 가려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송파구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문제제기가 흐지부지돼선 안 된다. 민주주의의 가장 원초적인 토대인 선거의 운영과 관련해 대개혁이 필요하다. 요즘 선거관리위원회의 실태를 뒤늦게 폭로하는 기사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선관위는, 막중한 권한을 지니면서도 아무런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 국가기관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무능과 나태, 무책임과 부실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G7 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이재명 대통령의 19일 기자 브리핑에서도 올림픽공원 시위와 선관위 문제가 뜨거운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은 선관위에 대해 '해체 후 재구성' 수준의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럼에도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 개혁을 어떻게 추진할지 고민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필요하다면, ... 대통령이 발의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선관위에 관한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李대통령 '선관위 개혁, 대통령 발의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프레시안> 2026. 6. 19).

동의한다. 선관위를 제대로 개혁하려면 대통령 발의로 '원 포인트 개헌'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 전에 국민의힘 홀로 반대하는 탓에 물꼬를 트지 못했던,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헌법 개정을 선관위 문제를 계기로 다시 의제에 올려야 한다. 그리고 이런 헌법 개정 토론은 올림픽공원 시위를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 소통의 단절을 해소하고 정치의 극단화-과격화를 완화하는 데에도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다.

선관위 개혁을 위한 '부분 개헌'을 지지한다

선관위를 개혁하려면, 엄정한 조사도 필요하고, 선거 관리 방식을 넘어 선거제도 전반에 관한 토론도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접근법은 결국 개헌을 향해야 한다.

헌법에 규정된 국가기관 중 거의 유일하게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곳이 선관위다. 집권 세력이나 특정 정파에 휘둘리지 않는 선거 운영을 위해 현 헌법이 보장하는 선관위만의 특징이며,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군사정권의 관권선거를 겪으면서 다져진 국민적 합의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의 중립성 유지라는 기본 원칙을 훼손해서는 절대 안 된다.

하지만 선관위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 여겼던 헌법상의 위상과 특징이 지금 선관위가 보이는 무능과 무책임의 토대가 되고 만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선관위를 둘러싼 역사적 합의를 존중하면서도 이 기관이 다른 국가기관에 의해, 더 근본적으로는 시민에 의해 일상적인 감시를 받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장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방안은 선관위 역시 감사원의 감사와 감찰을 받게 하는 것이다. 타당한 대안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한 5인 이상 11인 이하의 감사위원으로 구성"하는데, 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감사위원 역시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헌법 제98조). 감사원장의 경우 비록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다. 현 헌법에서 이런 구조(대통령이 임명하는) 탓에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상호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사원 역시 대통령의 감사원장 임명권으로 인해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해석된다.

감사원이 이런 위상과 구조를 유지하는 한,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감찰은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게 된다. 집권한 특정 정파가 선거 관리에 개입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현 헌법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마치 헌법재판소처럼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하게 한다. 또한 현 현법상의 국가기관 중 유일하게 위원장을 "위원 중에서 호선"하게 한다(제114조). 물론 이런 구조가 오늘날 선관위의 문제점들을 낳았지만, 그렇다고 이 기본 정신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단지 '논리적 가능성'에 그치더라도 대통령이 선관위에 간섭할 제도적 통로를 열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감사원이 선관위를 감사, 감찰하게 하려면, 감사원의 헌법상 위상과 편제 역시 바꿔야 한다. 사실 개헌을 논의할 때마다 현 헌법의 감사원 관련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이미 활발히 제출됐다. 다수 의견은 감사원을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 '산하'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원장을 국회가 임명하며, 감사원이 국회에 보고하고 그 감독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바람직한 개헌 방향이다.

결국 선관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면, 현 헌법에서 최소한 두 군데를 개정해야 한다. 하나는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감찰 대상임을 명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원이 국회에 책임지는 기관이 되도록 위상과 구성을 바꾸는 것이다. 말하자면, '투 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

아니, 이참에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처럼 투명하고 민주적인 선거 관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광범하게 제출된 김에 더 전향적인 접근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선관위의 지휘와 감시에 시민이 참여할 통로를 열어두는 것이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와 별도로 선거관리'시민평의회'를 둘 수 있다. 선거관리시민평의회는 선거관리 업무에 한해 대의기구 역할을 한다. 시민평의원의 절반은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로 구성하고 나머지 절반은 국회가 추천한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한다. 이렇게 구성된 선거관리시민평의회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를 일상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선거 관리 기본계획을 인준하며 주요 사안(예를 들어, 이번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 관해 감사, 감찰한다.

아마 다른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21세기의 급변하는 현실에 부응하는 처방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토대인 선거의 관리를 놓고 지속적으로 음모론이 대두하고 이로 인해 민주주의 전체가 흔들리는 현재의 위기적 양상(미국이든 한국이든)을 해소하려면 이 정도 처방이 필요하지 않을까. 국가기관 간 감시와 견제라는 오래된 해법에 더해, 시민 참여라는 새로운 해법을 배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 역시 당연히 헌법을 개정해야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이다. 감사원을 통한 선관위 견제, 감시보다 더 근본적인 개혁 방향인 만큼 더 진지하고 광범위한 개헌 토론을 거쳐야 한다. 그러고 보면 선관위 개혁을 위해 개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선관위를 개혁하려면 개헌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한 세대에 한 번씩 제헌의회를

사실 부실선거에 대한 집단적 항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선관위 문제만이 아니다. 분명히, 세대 문제가 있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시민의 '참정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가장 먼저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발언과 행동에 나섰다. 곧바로 극우 세력이 올림픽공원 집회와 온라인 여론에 개입하는 바람에 청년층의 광범한 여론과 극우파의 주장이 뒤섞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후자를 이유로 전자의 외침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6공화국 체제, 즉 1987년 헌정 체제에 대해 세대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점이다. 나이 든 세대는 이 질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부심을 갖는다. 특히 50대 후반 이상 세대는 이 질서가 1980년대 민주화 국면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빛나는 성과라 여긴다. 이보다 연배가 좀 낮은 세대도 제6공화국 내내 주기적으로 반복된 민주주의의 퇴행에 맞서 이 질서를 지키는 데 함께 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이 세대들은 12. 3 친위쿠데타 같은 명백한 도발에 맞서 현 헌정 체제를 지켜내는 데는 기민하지만, 일상에서 이 오래된 질서가 급변하는 시대와 충돌하며 내는 경고음은 잘 듣지 못한다.

반면에 좀 더 젊은 세대일수록 현 헌정 체제를 과거 세대가 물려준 유산으로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제6공화국이 등장하고 존속한 지가 그만큼 오래 됐기 때문이다. 1987년으로부터 벌써 40여 년이 흘렀다. 지금의 20대-30대에게 1987년은 그 무렵에 젊은 세대(이른바 86세대)가 일제 말과 해방공간에 대해 느꼈던 것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러니 현 헌정 체제에 대한 감각 자체가 나이 많은 세대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청년층도 민주주의의 후퇴야 물론 반대하겠지만, 그렇다고 현 헌정 체제를 마치 최선의 질서인 양 자랑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자기 세대의 집단적 성과가 아니기에 제6공화국 질서를 훨씬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런 젊은 세대에게 민주주의의 가장 원초적인 토대인 선거에서 돌출한 불미스러운 사태는 현 체제가 실은 모래 위에 서 있는 불안한 건축물은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이미 많이 알려진 토머스 제퍼슨의 단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제퍼슨은 1789년 3월에 혁명과 건국의 동지 제임스 매디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민주주의와 세대, 헌법과 혁명의 관계에 관해 흥미로운 사유를 전개했다.

1789년 3월은 미국 연방헌법이 이제 막 발효된 시점이었다. 그런데 제퍼슨은 벌써부터 헌정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의 출발점은 "지구가 본질적으로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자의 것"이라는 명제였다. 지구가 그렇다면 그 지구 위에 건립된 인간의 질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퍼슨과 매디슨의 세대가 연방헌법을 만들었지만, 이 세대가 사라지고 새 세대가 합중국의 주역이 되면? 과연 그 세대가 이 헌법을 그대로 자기 질서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그때 이 헌법은 이미 "죽은 자의 것"이지 "살아 있는 자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제퍼슨은 사뭇 충격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19년이 지나면, 현 헌법과 법률은 모두 무효화하고 새로운 헌법과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19년'이란, 수명이 지금보다 짧았던 시기에 제퍼슨이 생각해낸 한 세대의 시간적 주기다. 즉, 제퍼슨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헌법을 새롭게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각 세대는 저마다 자신의 '필라델피아 제헌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그래서 이전 세대의 헌법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더 발전시킬지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이 논리를 더 밀어붙이면, 각 세대는 자기만의 혁명을 반복해야 한다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퍼슨의 제안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세대마다 자신이 살아갈 헌정 체제를 토론하여 만들어가는 경험을 거듭해야 한다는 주장은 귀담아 들을만하다. 19년을 한 세대로 잡는 제퍼슨의 셈법에 따르면, 제6공화국 헌법은 제정되고 나서 벌써 두 세대가 지난 셈이다. 그런데도 1987년 이후 헌정 체제를 둘러싼 사회적 토론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신자유주의-금융자본주의 국면이 도래했다 쇠퇴했고 이제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는 테크노자본주의 국면에 있다. 시대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낡은 헌정 질서는 더욱더 낡아지고만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어떤 식으로든 개헌 토론 과정을 열어야 한다. 국민의힘의 완강한 반대로 소강 상태에 놓인 개헌 논의를 선관위 개혁을 위한 '원 포인트' 혹은 '투 포인트' 개헌을 계기로 다시 불붙여야 한다. 이런 '부분 개헌'이 성과를 내게 되면, 이를 동력 삼아 더 광범한 개헌 의제를 다루는 두 번째 단계 토론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젊은 세대도 자신들이 살아갈 민주공화국의 기본 질서를 스스로 재확인, 재구성하는 경험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개헌 토론은 각자의 밀실에 갇혀 자기 목소리의 메아리와만 대화하는 한국 사회의 여러 집단들에게 다시금 진짜 '대화'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헌법의 제정, 개정을 위한 토론은 민주공화국의 구체적인 제도를 의제로 삼으며, 이 토론에서는 누구든 최대한 다수를 설득해야만 자기 주장을 관철할 수 있다. '부족'들이 시끄러운 메아리 속에서 펼치는 정치의 극단화-과격화는 이 무대에서는 무력해질 것이다.

강력한 부정적 감정의 정치는 더 강력한 긍정적 참여의 정치를 통해서만 압도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정치의 기회는 선관위의 철저한 개혁을 둘러싸고 부상한 뜻밖의 '개헌' 필요성에 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지난 2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문 앞에서 경찰이 교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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