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에 대한 존경"? '군사부일체'는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books] "문제는 젠더·노동"…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스승을 향한 존경은 우리 역사 이래로 시작됐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어느 특정 단체로 인해 교육 현장과 교실이 정치투쟁으로 변했다."

지난 4일,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서이초 사태'로 촉발된 9.4 공교육 멈춤의 날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현대사회에 들어 '스승을 향한 존경심'이라는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교권붕괴'가 시작됐고,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노동자를 자처하는" 특정 단체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교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문제가 된 사태에 대해 교사의 노동권을 부정하는 듯한 해당 주장에는 이미 여러 반론이 제기된 바 있다. (관련기사 ☞ 교사들 분노에도 '색깔론' 적용? "아예 우리 목소리 안 듣는구나…") 다만 이 글에선 조금 다른 관점의 질문으로 해당 주장에 대한 반론을 펼쳐보고자 한다.

강 대변인이 언급한 "성직자만큼 신성한" 교육자, 즉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되는', '군사부일체'의 교육자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임금이나 아버지의 얼굴이 그렇듯, 군사부일체의 '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아마도 남성의 얼굴을 한 호랑이 선생님 정도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 옛날 임금과 아버지만큼이나 중요했던 '스승님'들은 대부분 남성인데, 지금 시대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은 왜 대부분 여성일까? 2022년 기준 여교사의 비율이 77%에 이르는 초·중등학교의 교사 성비를 반영하듯 9.4 공교육 멈춤의 날 현장에서도 검은 옷의 여교사들을 남교사들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강 대변인은 왜 저 수많은 여성의 얼굴에 대고 남성의 얼굴을 한 '신성한 교육자'를 부르짖었을까?

'이런 비극에서까지 남녀대결을 부추기느냐'고 화내기 전에 읽어볼 책이 있다. 탁월한 저널리스트이자 젠더, 노동, 불평등, 사회변화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프리랜서 기자 세라 자페의 책,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이다.

▲세라 자페의 책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현암사

"다시 말해 교사들은 아마도 최고의 사랑 노동자들인 듯하다."

저자는 LA의 12년차 여성교사이자 ‘교육노동자’로서 지역사회 노조투쟁에 매진하고 있는 로사 히메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노동'이란 일면 단순한 개념이다. 사랑해서 하는 일, 즉 노동자 본인의 사랑, 보람, 사명감 혹은 자기실현 욕구를 통해 작동하는 노동을 말한다.

"미국 내 로사 같은 교사들은 비슷한 교육 수준의 다른 분야 노동자들보다 급여가 21퍼센트 정도 적다." 그들은 "많은 희생을 하고 자신들의 일을 사랑하지만" 본인이 지도하는 학생들이 환경을 뛰어넘지 못하면 그 지도자의 책임을 지고 비난 받기 일쑤다. 교실당 학생 수가 늘어나고 학교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어도 참고 일해야 한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거나 단체행동을 하면, 욕심이 많다고 하거나 오직 돈만 보고 저런다는 소리를 듣는다."

서이초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한국의 교육현장과 대동소이한 환경이다. 저자는 공교육 도입 이래 교사들은 이 같은 노동조건들을 일종의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으며, "이 모두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아왔다"고 지적하며 "다시 말해 교사들은 아마도 최고의 사랑 노동자"라고 꼬집는다.

이 사랑의 노동은 사랑을 명목으로 개인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존경이나 사명과 차이점을 갖는다. 가령 교사를 예로 들면, 교사의 사랑노동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은 "교사의 능력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보상'해야 할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은 사랑"에 뿌리를 둔다. 마치 집에서 남자들을 돌보는, 가부장제 아래 '엄마'의 가사노동처럼 말이다.

"(교사는) 계층 간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의사나 변호사만큼 존경받지도 못하면서, 딱히 노동자층으로도 인식되지도 못한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전문직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이자, 비난하기도 쉬운 지금의 복잡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127쪽)

저자는 교사들이 처한 이 같은 "복잡한 지위"가 젠더, 인종, 계급 등이 결정짓는 신자유주의의 노동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공교육이 확대되면서 "여성의 미덕은 유지하면서도 영향력, 사회적 지위, 자립을 얻을 수 있는" 지위가 바로 교사라는 인식이 확장됐고(저자는 물론 이 인식이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인식이었음을 확실히 한다. 필자 주.), 여기에 '비쌌던' 교사들을의 보수를 낮추고 싶어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욕망이 맞물렸다. 결과는 지금의 한국과 다르지 않다. '가르치는 일'이 '여성화'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여성화된 교사'의 지위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이다. 누군가의 여성형제가 서울의 4년제 대학교를 포기하고 지역의 교육대학교에 진학했다는 일화 정도는 한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들어봄직한 이야기다. "교사는 여성에게 최고의 직장"이라는 격언과 같은 말이 사회에 퍼져나가면서, '군사부일체'의 호랑이 선생님들은 어느새 '최고의 며느리감' 정도로 호명되는 여성 교사들로 대체됐다.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서 지난 7월 숨진 서이초 교사의 대학원 동기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겪는 폭력적인 상황들은 좀 더 직관적으로도 '젠더'와 관련이 있다. 가령 서이초 사태 이전, 지난해 12월 논란이 됐던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이 보여줬듯 교육현장의 여성교사들은 학생, 학부모 심지어 동료 교사들에게까지 젠더폭력에 노출돼 있다. 남성 학생이 신체적 차이를 이용해 여성 교사를 폭행했다는 소식은 최근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쉽게 발생하는 상황에, 대부분의 교사들이 여성일 만큼 교사 성비가 치우쳐져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의 노동'이란 개념은 그 근본에 물음을 던진다. 젠더를 떠나 자본과 국가에 의해 노동의 가치가 쉽게 침탈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사랑 노동자"인 교사들은 왜 하필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교사는 최고의 사랑 노동자일지언정 사랑 노동의 시작도 끝도 아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부터 포섭된 '가족주의 내의 여성', 즉 "엄마의 헌신적 사랑"부터 사랑의 노동이 시작됐으며 그것이 (여성의) 사랑을 요구하는 수많은 노동들, 이를테면 돌봄, 가사, 교사, 판매직, 비영리단체, 예술가, 시간강사 등으로까지 확장돼 있다고 지적한다.

"요즘 노동자 계층은 더 이상 모두 남자이거나 백인이거나 제조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가 가브리엘 위난트가 지적했던 것처럼, '돌봄노동, 이민자들이 하는 일, 저임금 노동과 임시직 경제와 같은 여성화, 인종적 다양성, 블안정함'으로 다양하게 정의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29쪽)

이 같이 확장돼 있는 사랑의 노동들이 코로나19 시기엔 대부분 '필수' 혹은 '핵심' 직종이라고 불렸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저자는 "이들은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계속 일해야 한다는 기대를 고스란히 떠안았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같은 일들을 "사랑해서 열심히 한다는 것은, 가면 뒤에 숨은 착취의 최신판일 뿐이다."

가면을 벗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결국은 "노동자로서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하며 파업"하는, 사랑이라는 오명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저자는 총 10명의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랑'을 매개로 착취당해온 그들이 어떻게 진정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게 됐는지를 조명한다.

사명감을 벗어나 '노동'을 외쳐온 "특정 교사단체들"처럼, 그리고 그 단체와 아무 관계가 없더라도 '교사의 노동을 재정의 한다'는 목적 하나는 닿아있는, 국회에 모여 "교사로 살고 싶다" 외치고 있는 다른 수많은 교사들처럼, 바다 건너 미국에도 사랑을 위해 사랑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사랑의 노동' 신화를 깨부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나의 이야기이자 너의 이야기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우리사회가 간과해온 그 목소리들을 생생히 들려주는 일종의 수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될 노동자들은 일을 사랑해서 열심히 일한다는 개념에 도전해왔고, 흔히 간과되고 악용되는 착취라는 중요한 개념을 일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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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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