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이 가장 시원한" 시대, 지속가능한 세계는 가능한가?

[초록發光] 평화를 빼고 지속가능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열네 살 딸이 있는 필자는 툭하면 '라떼는'을 입에 올린다. "엄마가 어렸을 때는 에어컨 없이 살았다!", "너 태어나기 전에는 엄마가 매달 평양에 갔어! 가서 병원도 짓고, 냉면도 먹고!" 에어컨 없이는 여름을 날 수 없고, 5.24조치가 있던 2010년에 태어나 사람들이 남북을 오가는 걸 본 적 없는 아이에겐 그야말로 공허한 옛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는 아이들이 먼 미래까지 인간다운 삶을 살기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다.

이러한 바람을 담아 어린이어깨동무는 지난 9월 6일 '지속가능한 세계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타이틀로 국제포럼을 개최했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다시 구체적인 두 가지 질문을 세션의 주제로 내걸었다. '국제분쟁지역 평화구축은 가능한가'와 '국제분쟁지역 기후변화 대응은 가능한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속가능'의 두 화두를 놓고, 해법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세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 가는 평화 프로세스

먼저 오래된 주제부터 만나본다. 익숙하지만 매 순간 낯선 얼굴로 나타나는 분쟁 그리고 분단. "세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는 북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를 두고 정치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던컨 모로우 교수가 한 말이다. 첫 번째 발표자인 던컨 교수가 이 말을 하자 참가자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북아일랜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한반도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화를 만드는 길이 쭉쭉 뻗은 탄탄대로는 아니어도 이렇게까지 뒷걸음질 칠 수 있는지 물음표를 품고 있던 한국의 시민들에게 던컨 교수의 이 말은 어쩌면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종의 동병상련.

한국의 시민은 평화 프로세스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안착한 북아일랜드의 정치학자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시민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평화 프로세스를 떠올리며 "끊임없이 화해와 평화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하고, 작은 실천이라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실천들이 더 많은 시민과 정치에 가 닿으면 평화가 앞당겨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미래가 지금과는 다를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평화를 위해서는 관계가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아일랜드에서도 과거 많은 이들이 '적과 대화하면 배신자'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만나서 대화를 거듭한 결과 평화협정 서명에 이를 수 있었다. 한국의 시민은 이미 역사적 경험을 통해 만남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어쩌면 너무 오래 만나지 못해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이프러스에서 온 카테리나 안토니우 교수는 공동체로 살 수 있는 준비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 또한 만남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사이프러스에서는 협력의집(Home for Cooperation)에서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는 활동을 통해 함께 살 준비를 해왔다. 이러한 성과가 일부 참여자의 경험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고 안토니우 교수는 강조했다. 협력의 경험과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더 많은 지역과 사람에게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지적은 한반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남북이 활발하게 교류협력 했던 경험이 보다 광범위하게 공유·공감되었다면 지금의 한반도는 조금 다른 모습일까?

▲지난 6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교육 국제포럼 '지속 가능한 세계는 가능한가'에 참석한 토론자들. ⓒ어린이어깨동무

평화없이 넷제로는 없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의 하늘길은 더 멀어졌다. 우린 분단 이래로 북녘의 하늘길을 가로지른 적이 없다. 전쟁과 분단은 서로의 교류를 막을 뿐아니라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한다. 뿐만이 아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온갖 최신 무기들과 전투기가 투입되는 대규모 군사훈련은 탄소배출의 1등 공신이다. 시민은 그 양조차 가늠할 수 없다. 안보 관련 정보이기 때문에. 국제분쟁은 이렇게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도록 하며, 기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쟁은 인간에게만 악당이 아니라 기후에도 악당이다.

분쟁과 기후는 닮은 점도 많다. 두 번째 세션의 첫 번째 발표자인 프란시스 플래너리 교수는 분쟁과 기후위기가 경제적으로 열악한 이들의 터전을 앗아가고 결국 수많은 난민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또한 분쟁과 기후에 악영향을 미치는 나라와 그 피해를 보는 나라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힘센 국가는 문제를 일으키고, 약한 국가는 그 피해를 입는다.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CBDR) 원칙이 필요한 이유다. 결국 평화와 국제적 연대 없이 기후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 평화와 기후의 문제는 전지구가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두 번째 발표자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남정호 선임연구위원은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로 이목을 끌었다.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고, 되돌리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남 연구위원은 경계가 없는 기후변화의 특성상 평화를 구축하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에 핵심적인 변수라고 거듭 강조했다. 평화를 구축하면 기후변화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과 북 사이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대응의 가능성이 있을까? 다행히 북한이 국제협력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할 의향이 있음을 다양한 경로로 국제사회에 밝혀왔기 때문에 가능성은 있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인류공동의 의제를 시작으로 남북의 대화와 협력을 재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희망도 가져본다.

지속가능한 세계는 가능한가

이 날 포럼에 참석한 해외 전문가들이 날아온 거리를 합치면 3만6,000km. 비행기로 이 거리를 날아올 가치가 있는 만남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한 이날의 포럼은 평화와 기후의 상관성, 그리고 전 지구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평화구축 활동과 기후위기 대응 활동의 연대, 국제사회와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 등 다양한 층위의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속가능한 세계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의 답은 결국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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