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우리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집단착각

[소형 영농형 햇빛발전 나비효과 ①] 최선의 기후대응은 행동

태어나보니 압축개발과 성장의 대한민국 국민

"기후재난이라는 범죄는 우리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업의 모든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석유농업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농민도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저도 물론 이런 표현을 가끔 씁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어쩔 수 없이 에어컨 바람을 쐽니다. 절반 이상이 화석연료인 전기에너지로 에어컨은 돌아갑니다. 화석연료 자동차를 타고 하루에도 수십킬로미터를 왔다갔다하며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저는 기후재난 가해자입니다.

폭우가 쏟아졌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면서 농업경영체 등록자인 저의 올해 호박 농사는 망했습니다. 호박뿐만 아니라 고추도 녹아버렸습니다. 저는 기후변화의 피해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분들 가운데는 대홍수 같은 기후재앙이 밀려오는데 모래주머니 한두 개를 내 집 대문 앞에 놓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무력감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한 우울감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기후재난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이 같은 생각은 일면 사실인 듯싶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착각'입니다. 그것도 세뇌당한 집단착각입니다.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서민들은 결코 기후위기의 가해자가 아닙니다.

저는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체제를 제가 직접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맺은 인연으로 선택 당했을 뿐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생활방식을 당연한 것으로 알면서 자랐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 보니 대한민국이라는 압축개발과 압축성장 국가의 국민이었습니다. 오직 근대화, 산업화만이 살 길이라고 교육받아야 했던 화석연료 자본주의 체제의 주민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습니다.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겨라! '미국을 아름답게'(KAB)의 전략

집단착각 전략을 만든 기후위기의 주범은 따로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자본주의 거대 기업들입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거의 90%를 100개 대기업이 내뿜고 있습니다. 포스코, 남동발전, 삼성전자 등 10개 기업이 거의 절반(2021년 46%)을 차지합니다. 포스코 한 개 기업만 12.8%나 됩니다. 국민 개개인이 아무리 플러그를 뽑고 BMW(자전거, 대중교통, 걷기)를 실천한다고 해도 기후악당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지가 않고 거꾸로 해마다 늘어나기만 합니다.

전세계 100대 글로벌 대기업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70% 이상을 내뿜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 125명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소득수준 하위 90%인 전세계 인민들의 평균 배출량보다 무려 100만 배가 넘습니다.(옥스팜, 탄소 억만장자 보고서, 2022.)

인민이란 말에 대해 거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민이란 용어는 대한민국 헌법 초안에서도 사용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도 대통령의 공식 담화문에서조차 버젓이 썼던 말이었습니다.

이들 대기업들이야말로 지금도 오직 돈벌이만을 위해 온실가스를 마구마구 공기 중으로 쏟아내 전세계 인민들의 숨통을 조이는 기후재난의 주범들입니다.

환경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기업의 교묘하고도 노회한 전략은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1953년 미국의 버몬트 주 의회는 일회용품 판매 금지를 의결했습니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운동 때문이 아니라 낙농업자들의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버몬트 주 의회 의원 3분의 1이 농민이었습니다. 당시 암소들이 마른 풀 위에 떨어져 있던 일회용기를 먹이와 함께 먹고 죽는 사례들이 급증하고 있었습니다.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신속하게 포장업계를 중심으로 코카콜라와 딕시 컵 등의 대기업, 전미생산자협회 등 거대 기업들이 풍부한 재정의 비영리단체 '미국을 아름답게'(KAB. Keep America Beautiful)를 만들었습니다.

KAB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최고의 광고 전문가들을 동원, 미국 전역에서 미디어를 이용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는 개개인의 나쁜 습관에서 비롯한다는 게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쓰레기 반대 캠페인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안 추진 운동까지 벌어졌습니다.

결국 1957년 버몬트 법은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산업국가에서는 일회용품과 쓰레기 관련 거대기업의 생산과 판매를 규제하는 법안 대신에 개인을 규제하는 법과 캠페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해더 로저스, 이수영 옮김, <사라진 내일>, 삼인)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이건과 인디언의 '아름다운 협력'?

KAB은 1963년에는 로널드 레이건이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교육영화, <아름다운 유산>까지 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전임 카터 대통령이 백악관 옥상에 설치했던 태양광 패널을 철거한 그 레이건입니다.

"숲과 광물같은 유형자원에 책임을 져야 할 우리가 이 중요한 자원을 여가에 어떻게 이용하는가?... 쓸모를 다한 물건은 쓰레기가 된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버리자마자 쓰레기가 된다."

KAB는 1971년 두 번째 ‘지구의 날’에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감동의 텔레비전 광고를 최초로 제작했습니다. 사슴가죽을 걸친 늙은 인디언이 카누를 타고 포장재와 캔으로 뒤범벅된 강물에서 노를 저어 갑니다. 저 멀리 연기를 내뿜는 공장이 아주 희미하게 잠깐 배경으로 보이긴 합니다. 인디언은 쓰레기가 흩어져 있는 강둑에 카누를 댑니다. 차들로 꽉 찬 고속도로 옆으로 걸어온 아메리카 원주민의 신발에 금발의 백인이 차창 밖으로 던진 패스트푸드 봉지가 떨어집니다. 그러자 원주민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눈물 한 방울을 흘립니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흐르고 엄숙한 목소리가 겹쳐집니다.

"한때 이 나라에 깃들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언제까지나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환경을 오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이 광고는 젊은이건 노인이건 여성이건 남성이건 미국인 개개인의 죄책감을 절묘하게 건드렸습니다. 일회용품과 포장재 생산업체들이 쓰레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쓰레기를 만든다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전략은 이렇게 대기업들이 만든 '회피와 혐오' 프레임의 본보기 사례입니다.

KAB는 지금도 미국에서 막강한 로비력을 자랑하는 조직입니다.

기후재난도 똑같습니다. 대기업들이 후원하는 요란한 에너지 절약 캠페인―플러그를 뽑자, 내복을 입자, 1년에 하루 1시간만이라도 전등을 끄자 등등―의 진짜 목적은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우리 모두 기후재난의 가해자라는 집단착각을 세뇌시키는 데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와 기후재난을 비롯한 숱한 환경문제의 해결책은 단순명쾌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생명체를 죽음으로 이끄는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규제 또는 금지하면 됩니다.

2017년 8월 케냐 정부는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사용자뿐만 아니라 제조회사, 수입업자, 판매자까지 최고 4년의 징역형 또는 4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발표했습니다. 지금 케냐에서는 비닐봉지를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케냐는 하고 있는데, 한국은 하지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31년 동안 되풀이되고 있는 '기후변화 중얼중얼 중얼중얼' 기후정상회의

기후위기 해결방안도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대기업을 규제하면 됩니다. 시간을 두고 기업이 실제 실행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집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그게 그렇게 잘 안됩니다.

벌써 31년이나 지났습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 185개국 정부 대표단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 국가 간 통행과 교류가 중단되고 사람들도 거의 집 안에만 갇혀 지낸 2020년을 제외하고 온실가스는 해마다 급증해 왔습니다.

31년 동안 전세계 기득권 엘리트 정치인들은 오직 '기후변화 중얼중얼 중얼중얼' 회의만 끝도 없이 되풀이 하고 사진을 찍고 선언을 발표해 왔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1992년생인 20살의 캐나다 대학생 안잘리 아파두라이는 2011년 11월 비정부기구를 대표해서 남아프리카 더반에 모인 유엔 기후정상회의 대표들에게 일갈했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협상만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엘리트 대의정 정치인들에게 기후정치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를 표방하건 더 이상 개발과 성장의 이 같은 온실가스 대량 배출 기후재난 체제가 계속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힘 당이건 민주당이건 여의도 기득권 엘리트 정치인들에게 기후정치를 기대하느니 차라리 나무에서 물고기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기후재난의 가해자가 누군지 명확히 알게 된 피해자 인민들이 직접 기후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레타 툰베리처럼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되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집단자살의 절벽을 향해 질주하는 설국열차를 정지시키고 내 삶도 청소년들의 미래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기후재난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 이웃 민주주의

물론 플러그를 뽑고 '아나바다'(아끼고 나누고 바꿔쓰고 다시 쓰자)와 자전거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걷기 등을 실천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개인 실천에만 머물러 자족하는 것은 재벌 대기업의 온실 독가스 살포를 묵인-방조하는 살인 공범 행위입니다. 엘리트 정치권력과 언론, 고위 관료 등 기득권 체제를 노예처럼 온몸으로 떠받들고 지켜주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웃과 손잡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기후위기 적응과 극복의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해 생태계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지속 불가능한 '집단자살 체제'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진실에 눈을 뜨면 지속가능한 새로운 체제를 선택하는 기후행동에는 나설 수 있습니다.

기후재난의 피난처는 어떤 부자가 어마무시한 돈을 들여 뉴질랜드 산 속 지하에 만든 벙커가 아닙니다. 화성으로 날아가 만든다는 인공 구조물은 헛소리입니다. 기후위기의 구명보트이자 가장 강력한 사회안전망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 이웃과 함께 만드는 이웃공동체입니다.

우리 모두는 유전자를 공유하는 자매 형제들입니다. 무생물까지도 더불어 함께 존재하고 살아가는 이웃들입니다. 이웃이 없으면 나도 없고 우리도 없습니다. 사회성 동물인 인류는 '홀로'는 생존 불가능합니다. 경쟁에서 협동으로, 사유에서 공유로 세계관의 전환이 생존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개발과 성장주의의 앞만 보던 시선을 마음을 바꿔 옆으로 돌리기만 하면 이웃이 보입니다.

민주주의는 본디 이웃 민주주의입니다. 나의 이웃인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경청하는 대화와 소통이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기후행동, 이웃 민주주의의 실천

이웃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자본이 만들어 놓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나홀로'의 칸막이 감옥을 부수고 광장으로 나와야 합니다. 마음을 바꿔 극단의 개인주의 골방에서 활짝 문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이웃 민주주의의 새로운 체제가 눈앞에 펼쳐질 수 있습니다. 오직 나 혼자만의 세상이 '나와 우리'의 세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2021년 2월 18일 24살 대학생 강은빈은 청년기후긴급행동 회원들과 함께 분당 두산타워 앞의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리는 행위미술 기후행동을 선보였습니다.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강행하는 생태학살 기업 두산을 규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두산은 강은빈·이은호에게 1840만 원의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고엽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강하고 더 넓게 더 오래오래 베트남과 한국민들, 전세계 인류와 생태계를 집단학살하는 온실가스 독가스를 뿌려서라도 돈벌이는 기어이 하고야 말겠다는 두산의 파렴치한 '소송질'이었습니다. 2023년 5월 3일 1심 재판부(김재연 판사)는 두산의 청구를 기각하고 강은빈‧이은호의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포스코는 핵발전소 2개와 맞먹는 삼척 블루파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월가의 금융자본도 석탄발전소는 좌초자산으로 규정하고 투자를 철회하고 있습니다. 중국조차 신규 석탄발전소는 짓지 않고 있습니다.

2023년 7월부터 동해 삼척 간 도로를 점거하다시피 한 25톤 트럭들이 일요일도 없이 하루에 190여회나 석탄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기후지옥도와 똑같은 석탄지옥도가 삼척에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 도로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천천히 걷기 자비명상'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독가스를 전 국민에게 살포하면서까지 돈을 벌겠다고 아예 발가벗고 나선 포스코 블루파워를 향해 차라리 25톤 트럭으로 국민들부터 깔아뭉개 먼저 죽이라고 국민들이 동해-삼척 도로를 점거할 수 있습니다. 손에 손을 맞잡은 수많은 이웃들과 주주들이 포스코 사옥을 포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기후행동은 체제 전환의 기후정치행동입니다.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을 기득권 엘리트 권력자들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게끔 국민발의권과 국민소환권 개헌을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직접 민주주의 정치행동입니다. 기득권들에게 빼앗긴 국민주권을 탈환해 오는 일곱 번째 '기후 민주공화국' 수립입니다.

기후행동에 나서는 국민들이 몇만 명에서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불어나 몇 십만 명으로, 이윽고 몇백만 명이 되면 체제가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체제 전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재생에너지 자립 100% 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소박한 의견을 적어보겠습니다. 특히 소형 영농형 태양광이 왜 한국 RE100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끝.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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