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육성만 주목한 '케이팝'의 여전한 '우공이산' 신화

[케이팝 다이어리]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담론 필요한 때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사자성어로,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라도 한 가지 일에 매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무슨 일이든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 못할 게 없다는 것을 말한다.

현재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우직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좀 더 특별한 사례들을 찾는다. 예컨대 텔레비전에서는 예술가들의 노력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해왔다. 연극, 대중음악, 뮤지컬 등 여러 분야 아티스트들의 노력의 과정과 고통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의 구성으로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이들 프로그램이 주목하는 건 대체로 개인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뤄진 예술가의 '미적 아름다움의 완성 과정'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족되어야 할 '경제적 주체되기'로부터 거리를 두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문화의 산업화가 발전하고 대중의 소비참여가 글로벌 시장 차원에서 이뤄짐에 따라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따라붙으면서 점차 방송이 주목하는 '예술가'는 '대중 예술가'로 이동하였다. 그에 맞춰 '개인의 노력과정과 성과·성취'는 점차 시스템화했다. 케이팝 산업에서 이런 경향은 특히 두드러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뤄진 가요계의 시스템 구축 과정은 음악장르의 세분화를 가져왔다. 디지털 음원시장이 디지털 미디어 기기 시장과 결합하면서 빠르게 자리 잡았고, 이런 경향에 적응하지 못한 기존의 레코드회사들은 점차 생존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렸다. 이 자리를 케이팝이 빠르게 차지했다. 기획사는 대중의 선망을 받는 아이돌을 내세워 해외 팝 음악을 통해 주로 즐길 수 있었던 힙합이나 레게 등의 장르에서부터 록,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한 곡 안에 담아내는 '세트'를 대중에게 제공했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으로 음악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방송사는 케이팝의 대두에 맞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제작해 여전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미디어가 선사하는 아이돌의 성공신화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했고, 팬덤이라 불리는 대중의 문화운동, 문화생산을 가능하게끔 했다. 인터넷 팬 커뮤니티도 빼놓을 수 없다.

미디어가 조명하는 케이팝 성공 신화의 노력 과정에는 아이돌 가수뿐 아니라 아이돌 가수를 육성하는 기획사도 포함됐다. SM의 이수만, JYP의 박진영, YG의 양현석 등 3대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대중음악 현장에서 가수활동을 하거나 댄서로서 주목을 받은 인물들이 기획사를 통해 한국의 대중음악시장을 주도하는 모습이 기획 업무에서부터 이들 프로듀서가 출연하는 예능 방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유포됐다.

기획사 대표들의 노력과 성과는 많이 조명됐다. 그들의 노력 역시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런 성공 신화 이면에 자리한 기획사 성장과정에서 계약관계와 수익분배 문제, 아이돌 가수들의 복지와 관련된 부분을 안정화하거나 이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여유도 갖지 못한 채 기획사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점이다.

기획사의 육성방식은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심사위원들을 통해 대중에게 중계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모든 분야에서 요구되는 자질이지만, 아이돌 되기를 위한 '노력'은 차원을 달리 한다. 타고난 달란트뿐 아니라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학습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극단적 노력에 기반한 성공담론 구성의 과정이다.

이 노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돌 후보생의 정체성과 개성이다. 이러한 정체성 형성에 기획사의 영향력이 크다. 아이돌 연습생이나 아이돌 가수들은 학교를 같이 다니는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부재하고, 기획사 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만 주로 이뤄진다. 기획사 관계자는 통상 아이돌의 '인성'을 강조한다. 기획사 관계자의 생각이 곧 아이돌의 개성으로 주입될 공산이 크다. 아이돌을 육성하는 주체들의 '관리방식', '계약방식'의 기준과 판단이 내부적 논의만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제안이 필요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케이팝 산업 시스템은 아이돌 가수뿐 아니라 육성 주체들, 그리고 팬들이 함께 만들어왔음을 재확인할 때다.

그간 한국 케이팝 산업은 시스템의 안정화보다 성장과 차세대 아이돌 육성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문제들이 불거졌다. 이에 관한 팬들의 문제의식이 공론화한 시작은 SM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불공정 계약이었다. 당시 팬들의 역할은 케이팝 산업구조의 변화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었던 이슈로 각인된 사건이기도 하다. 이후 여러 불공정 계약 이슈가 케이팝 산업 내에서 고발되면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제정되고 현장의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표준계약서 등 안전장치가 만들어졌다. 케이팝 산업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이뤄졌고, 아이돌 연습생 부속합의서,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록제도 등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공정 계약이나 정산 관련 이슈 등이 꾸준히 나타난다. 훈육을 가장한 물리적 폭행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멤버들 간의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 사고가 최근에도 발생했다. 합숙생활의 어려움, 또래 친구의 부재와 기획사 관계자들과의 소통만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다이어트나 대중적 시선이 주는 부담감 등 산업이 커진 만큼 아이돌의 부담과 희생도 커지고 있다. 연예기획사 역시 아이돌 육성에 점점 더 큰 투자금액을 필요로 한다. 그에 따라 아이돌 가수를 둘러싼 리스크 관리와 국내외 팬덤 관리, 콘서트 기획과 활동 방향 설정 등의 중요성도 더 커진다.

시장이 커진만큼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늘어나고 있다. SM의 아이돌 그룹 엑소 멤버 백현, 시우민, 첸의 정산 문제제기, 그룹 오메가 엑스의 전속계약해지 분쟁, 하이브엔터테인먼트 팬 사인회에서 팬들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신체수색 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가장 최근의 이슈로는 지난 8월 1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의혹 제기가 있다. 방송은 걸그룹 피프티피프티가 소속사 어트렉트에 제기한 전속계약효력가처분 신청 등의 문제를 보도했다. 편파 보도라는 대중의 비판이 잇따랐다. 방송 이후, 한국매니지먼트연합과 한국연예제작자협회가 반발하였고, 대중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민원을 통해 방송내용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케이팝 산업은 오랫동안 아이돌 가수의 빠른 육성에만 주목해 왔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케이팝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케이팝 생산주체 구성원도, 팬들의 구성도 달라졌고, 미디어 권력은 이동했다. 대중은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한 정보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정보생산자이자 정보소비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하지만, 몇몇 성공한 사례를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인지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케이팝의 밑거름이 될 이들을 케이팝 산업이 어떻게 끌어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케이팝 음악시장의 특징과 케이팝 문화의 독특함, 그리고 1990년대부터 시작된 육성 시스템이 2023년까지 지속되어오면서 어떤 변화를 모색해왔는지 그 성과와 진단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한국 문화의 날 행사에서 케이팝 커버댄스 팀이 공연하고 있다. 케이팝 팬덤은 아이돌 산업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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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임

이종임은 중앙대에서 언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리노이대학교 어버나 샴페인 캠퍼스 동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를, 한국방송학회 문화연구연구회 회장, KBS 시청자위원장, SBS 시청자위원을 지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출강 중이다. 문화연대 기술미디어문화위원회 위원으로 미디어기술과 대중정치, 사회구조변화에 관심이 많으며, 기술과 대중문화산업,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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