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KTX는 수서로 갈 수 없을까?

[기고] 모두의 삶을 지키는 공공성 파업 ⑥

매일 안전하게 출근해서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걱정 없이 병원에서 치료하고, 구석구석 편리하게 아름다운 한반도를 기차로 이동하는 상상을 합니다. 가능합니다. '공공성'과 '노동권'이 깊고 넓게 퍼진 한국 사회라면 우리의 미래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지하철, 의료, 철도 등 내 곁에 노동자들이 '모두의 삶을 지키는' 공동 파업을 합니다. 이들은 먹고 살기 어려운, 불안이 불안을 낳는 시대의 대안은 시장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성 확대라고 주장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를 싣습니다. 편집자주

"KTX는 수서에 안 가나요?"

등벽보에 붙은 '수서행 KTX 투입'이라는 글자를 보고 지인이 물었다. 답변은 가볍다. "응, KTX는 수서로 가지 않아"

왜, KTX는 수서로 갈 수 없었을까?

KTX가 수서로 못 들어가게 된 것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속철도 이용자가 지속해서 늘었지만, 서울역을 출발역으로 하는 열차 운행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국토부는 수도권에 새로운 고속철도 출발역을 수서에 신설하고, 수서에서 평택까지 새로운 고속철도 노선을 놓았다.

새로운 노선은 당연히 철도공사가 운행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국토부는 ㈜SR이라는 회사를 신설해서 고속철도의 운영을 맡겼다. 국토부는 ㈜SR의 이윤보장과 철도공사와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수서~평택 구간의 독점적 열차운영을 ㈜SR에 넘겼다. 고속철도가 KTX와 SRT로 나눠져서 서로 운행하지 못하는 배타적인 구간이 신설됐다.

▲서울 강남구 수서역 SRT 역사의 모습 ⓒ연합뉴스

나눠 운행하니, 불편과 피해가 생겼다

수서로 가는 고속열차는 부산과 목포에서만 출발했다. 여수, 진주, 포항 등 남부지역에서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신규노선이 생겼지만, 수서로 가기 위해서 환승하고, 별도로 표를 끊는 등의 새로운 불편이 발생했다.

철도는 고속선의 영업이익으로 교차 보조를 한다. 광역과 지방선의 적자를 보조해 지역의 공공교통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SR은 고속철도만을 운행하기 때문에 철도산업에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SR의 확대는 철도공사 영업이익 축소-> 교차보조 축소-> 광역과 지방선 운영 축소로 이어진다. 더불어 동일한 업무를 철도공사와 SR 두 기관으로 나눠 운영하다 보니 중복비용이 발생했다. 공공철도 확대에 쓰여야 할 비용이 중복비용으로 잠식되었고, 국토부가 인정한 비용만 해도 연간 400억이 넘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SR, 국토부 특혜로 살아남다

㈜SR은 신규사업자이기 때문에 매우 불안정한 조건이다. ㈜SR은 철도공사가 41% 지분을, 투자자가 59% 지분을 갖는 구조로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국토부가 이익을 보증한다고 해도 수익이 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국토부는 재무적 투자자(FI)에게 연복리 5.6%의 이윤을 보장하고, 철도공사가 투자원금과 이자를 지급할 것이라는 비공개 주주간 계약서를 쓰며 투자자를 모았다. 결국, ㈜SR은 스스로 어떤 자본도 투자하지 않고, 철도공사가 자본금과 이자를 100% 책임지면서, 철도공사와 경쟁하는 회사로 설립됐다.

▲국토교통부는 코레일·SR 통합 여부 결정을 유보한다는 판단이 담긴 철도 공기업 경쟁체제 평가 결과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19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 수서역 SRT 역사의 모습. ⓒ연합뉴스

㈜SR은 2020년부터 부채비율이 150%를 넘었다. 그리고 올해 투자자들의 자본금 회수로 부채가 1,600%를 넘게 되었다. SR은 신규노선 확대가 아니라 사업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SR은 국토부의 투자로 부채 비율을 150% 이하로 낮췄고, 신규 고속 차량 14편성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의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중복 기능을 축소하라는 정책을 펴는 것과 반대되는 일이 국토부의 특혜로 진행됐다.

부산발 SRT 좌석을 4,100석(11%) 줄였다

9월, 남부지역에서 고속열차가 나뉘어 발생하는 불편 해소를 위해 국토부는 여수, 진주, 포항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를 투입하겠다고 했다. 노선 확대 계획이 없던 SR은 추가 운행할 고속열차의 여유가 없었다. 국토부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SRT 2편성을 빼서 다른 노선에 투입했다. 남부지역 민원해소를 위해 추진한 정책에 SR을 무리하게 끌어들이면서 부산~수서 간 고속열차 좌석 4,100석(10%)이 줄어드는 피해가 발생했다.

국토부는 대책으로 KTX를 부산에 투입했다. 하지만 이 KTX는 부산에서 서울역으로 운행한다. 수서역로 가는 열차를 줄였는데, 서울역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다. KTX가 수서역으로 갈 수 없는 근거는 없다. 철도공사는 당연 사업자로 어떤 노선이든 운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SRT가 고장 또는 사고로 운행이 안 될 때 KTX를 수서까지 운행한 바가 있다. 고속차량이 부족한 SR은 신규노선이 가능한데, 왜 KTX는 수서로 못 가는 것일까?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첫 열차부터 준법투쟁을 시작한 24일 오전 서울역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노조는 국토부가 사회적 논의없이 9월부터 부산∼수서 고속열차를 축소해 전라선·동해선·경전선에 투입한다고 주장했다. 코레일은 철도노조의 태업에 따른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용 인력을 총동원하는 한편 태업 과정에서 사규·법령에 위배되는 경우 엄중히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연합뉴스

SR은 위탁업무를 하나, 둘 민영화 중이다

SR은 스스로 철도산업을 유지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SR이 고속열차 SRT 운영과 수서, 동탄, 지제역 운영을 제외한 대부분 업무를 철도공사에 위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SR은 올해 고객센터 업무를 민간으로 넘겼으며, 27년에 도입될 신규 고속차량의 정비업무를 민간업체 로템으로 이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SR은 독자노선 선언이라는 명목으로, 위탁업체 변경이라는 이름으로 철도노조가 민영화에 반대하면 지켜왔던 철도 업무들을 하나둘 민간으로 이관하고 있다.

고속철도 통합과 공공철도의 확대

철도노조는 수서행 KTX 투입과 고속철도의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통합으로 고속철도 좌석 3만석 증가, KTX 요금 10% 인하, 중복비용 연간 400억 절감, 환승 불편 해소 등 국민 편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공철도의 확대이다. 보다 많은 시민이 열차를 이용하고, 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공공철도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열차의 좌석을 늘리고, 운임을 내리면 굳이 자동차를 탈까? 철도산업 내의 소모적인 경쟁이 아니라, 도로와 철도의 경쟁에서 공공철도의 확대를 위한 고속철도 통합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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